인간의 결함인가 아니면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인가
조현병과 트라우마, 신경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참 주체적이지 못한 동물이 아닐까. 의지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환경에 너무 쉽게 흔들린다. 안정적인 조건에서는 이성적이던 사람도, 불안정한 환경에 놓이면 전혀 다른 판단을 한다. 이건 인간의 결함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일까.
우리는 흔히 주체성을 이렇게 상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환경을 뛰어넘는 강한 의지, 외부 조건과 무관한 ‘나 자신’. 하지만 신경과학과 발달심리학이 보여주는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사고와 감정, 선택은 항상 신경계 상태 위에서만 작동한다. 그리고 신경계는 환경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즉, 인간은 환경과 분리된 채로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에 최적화된 진화의 결과다.
위협적인 환경에서는 빠르게 경계하도록
안전한 환경에서는 탐색하고 사고하도록
신뢰 가능한 관계에서는 감정을 열도록
인간은 환경 신호를 무시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경을 과잉 학습하도록 설계된 종이다. 그래서 외상도 깊게 남고, 안정도 깊게 남는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하나 있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의 인간은 선택하지 않는다. 반응한다. 위협을 감지하고, 의미를 과잉 해석하고, 당장의 안전을 우선시한다. 이때의 판단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의 자동 반응이다. 반대로 안정적인 상태의 인간은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그제서야 비로소 선택할 수 있다. 주체성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유의 문제다.
인간은 항상 주체적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조건이 갖춰질 때,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다. 이 말은 인간을 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현실적으로 존중한다.
실패를 도덕적 결함으로 만들지 않아도 되고
고통을 개인의 무능으로 환원하지 않아도 되고
회복을 기적처럼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회복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회복이 된다.
인간이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존엄해진다. 왜냐하면 그 순간, 책임이 개인에게서 구조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주체적이지 못했을 때 “왜 더 노력하지 않았냐”고 묻는 대신, “왜 주체성이 작동할 조건을 박탈했냐”고 묻게 된다.
인간은 혼자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다. 환경, 관계, 안정 속에서 천천히 주체가 된다. 그래서 진짜 잔인한 사회는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말하면서 선택할 조건을 제공하지 않는 사회다. 인간은 약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환경을 필요로 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만이 비로소 인간에게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생각번호202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