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은 예외적인 질병이 아니다

조현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회는 늘 같은 방식으로 선을 긋는다.

by 민진성 mola mola

“그건 특별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병이다.”,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다.”,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이 선 긋기는 안심을 준다. 질병을 멀리 밀어내고, 나와 상관없는 영역으로 격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안심은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정확하지 않은 안심은, 예방을 가로막는다.


신경계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조현병을 설명하는 현대적 모델은 더 이상 단순한 유전 결정론이 아니다. 신경과학은 오히려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의 신경계는

반복되는 위협

만성적인 불안

예측 불가능한 환경

안전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구조적으로 변화한다. 이 변화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의 적응이다. 살아남기 위해 과민해지고, 경계하고, 의미를 과잉 해석하도록 학습하는 것이다.



CPTSD가 보여주는 것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PTSD)를 떠올려보자. CPTSD 환자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인다.

끊임없는 위협 감지

현실 해석의 왜곡

타인의 의도에 대한 과잉 추론

감정과 사고의 분리

자기와 타자의 경계 불안정

이 특성들은 낯설지 않다. 조현병의 전구 증상, 혹은 정신병적 경험과 구조적으로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CPTSD 환자 집단은 실제로 정신병적 증상의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위험은 누구의 것인가

조현병이 특정 유전자를 가진 소수의 문제라면 사회는 안심해도 된다. 관리와 격리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조현병이 만성 외상 환경에 노출된 신경계가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극단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유전적으로 특별히 취약하지 않더라도,

폭력적인 성장 환경

지속적인 정서적 방임

사회적 고립

장기적인 불안정 노동

끝없는 경쟁과 위협

에 노출된다면 누구라도 정신병적 붕괴의 위험권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공포를 조장하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의 방향을 바로잡는 말이다.



조현병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조현병을 예외적인 질병으로 만들면 문제는 개인에게 고정된다.

그 사람의 유전자

그 사람의 약물 순응도

그 사람의 취약성

하지만 조현병을 연속선상의 위험으로 보면 문제는 이동한다.

왜 이런 환경이 지속되었는가

왜 외상에 대한 조기 개입이 없었는가

왜 안전한 관계가 부재했는가

질병은 개인의 내부가 아니라 환경과 구조의 누적 결과가 된다.



환경 개선은 복지가 아니라 예방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동 보호, 정서적 안전, 주거 안정, 노동 환경 개선은 도덕적 선의가 아니다. 그것은

CPTSD 예방 정책이며

정신병적 붕괴 예방 인프라이며

조현병 발생률을 낮추는 구조적 개입이다.

환경을 바꾸는 일은 누군가를 특별히 배려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무너질 수 있는 지점을 뒤로 미루는 일이다.



예외로 만들수록, 더 많은 사람이 위험해진다

조현병을 “나와 다른 사람의 병”으로 만들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안전하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신경계는 계급도, 도덕성도 가리지 않는다. 오직 노출된 환경에 반응할 뿐이다. 그래서 조현병은 예외적인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환경을 방치해왔는지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신경계의 대답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생각번호20251212

이전 17화조현병은 유전되지만, 반드시 발현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