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정의가 아니다

신의 정의와 인간의 질서 사이에서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법을 ‘정의’라고 착각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렇게 말한다. “법이 정한 대로 하면 된다.”, “법이 있으니까 정의가 실현된다.” 하지만 이 문장은 언제나 ‘질서’와 ‘정의’를 같은 것으로 만든다. 법은 질서를 만든다. 그러나 정의를 완성하지는 못한다. 국가의 법은 완전한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오기 전까지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두는 구조물에 가깝다.



성경이 말하는 국가는 ‘정의의 주체’가 아니다

성경에서 국가는 ‘정의를 집행하는 존재’로 불리지 않는다. 혼돈을 막기 위해 허락된 도구로 불린다. 처벌은 심판이 아니고, 판결은 종결이 아니다. 국가가 하는 일은 정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무한 증식되지 않도록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공적 처벌은 ‘복수’가 아니라 ‘폭력 최소화 장치’다

사적 복수는 폭력을 낳는다. 국가의 처벌은 폭력을 끝내기 위한 폭력의 제어 장치다. 그래서 성경은 사적 복수는 금지하지만, 공적 처벌은 허용한다. 이것은 도덕적 우월성의 문제가 아니라, 붕괴 방지의 문제다.



법은 정의가 아니라,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다

국가의 법은 억울함을 전부 해결하지 못한다. 무죄가 처벌받고, 유죄가 풀려나는 일도 일어난다. 그럼에도 법이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다. 이 세계가 아직 ‘정리 중’이기 때문이다. 법은 정의를 완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오기 전까지 세계가 붕괴되지 않도록 버텨주는 장치다.



그래서 신앙은 법을 이렇게 대한다

신앙은 법을 숭배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시하지도 않는다. 법을 ‘정의’로 믿지 않되, ‘질서’로 존중한다. 믿지 않되, 사용한다. 구원의 기준으로 삼지 않되, 붕괴 방지 장치로 인정한다.



이 세계의 법이 가진 한계

이 세계의 법은 정의의 이름을 쓰지만, 사실은 불완전한 질서 시스템이다. 그래서 법은 종종 억울한 사람을 만들고, 정의롭지 않은 판결을 남긴다. 그럼에도 이 법이 유지되는 이유는, 이 구조가 무너지면 피해자는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생각번호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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