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3] 예정된 종말 앞 사랑

예정된 종말 앞에서 던지는 가장 뜨거운 대답

by 민진성 mola mola

언젠가 나에게 이별이 예정된 관계를 지속하는 일의 무용함에 대해 물었던 사람이 있었다. "어차피 끝이 보이는데, 계속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질문은 마치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엔트로피와 삶의 역설

물리학적으로 우주는 결국 열역학적 죽음(Heat Death)을 향해 달려간다. 모든 에너지는 흩어지고, 질서는 무너진다. 사랑 또한 그 우주의 법칙 아래에 있다. 설령 지금의 사랑이 생의 마지막 사랑이 아닐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열정은 식고 관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서 오늘 하루를 포기하거나, 삶을 자살로 서둘러 마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유한함 때문에 우리는 오늘 마시는 커피 한 잔의 향기를 더 선명하게 감각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를 더 간절하게 붙잡는다. 죽음이 삶을 완성하듯, 끝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이라는 순간을 대체 불가능한 절대적 실체로 만든다.



가중치가 사라진 후에도 남는 흔적

앞서 우리가 논의했듯, 추상의 세계에 공집합이란 없다. 사랑이 끝난다고 해서 그 시간이 통째로 증발하여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관계가 종료된 자리에도 함께 나눈 대화의 변인, 서로를 통해 발견한 나의 새로운 모습, 그리고 슬픔을 견뎌낸 굳은살의 가중치가 빼곡히 남는다.

"끝이 보이는데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효율성의 논리다. 하지만 삶은 효율이 아니라 '경험의 밀도'로 기록된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 기억은 결과가 이별일지라도 내 삶의 데이터베이스에 가장 강력한 긍정의 원소로 저장된다. 그 원소들은 훗날 내가 또 다른 삶을 항해할 때, 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반이 된다.



운명에 대항하는 주체적 선언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미련함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내 감정의 주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상대방의 변심이나 환경의 변화 같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 때문에 나의 진심이라는 '통제 가능한 상수'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설령 이 사랑이 끝사랑이 아닐지언정, 나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이 순간에 모든 가중치를 쏟아부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내 삶에 부여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의미이며, 세련된 냉소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비어 있지 않은 마지막 장

이별은 공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관계의 형식이 바뀐 또 다른 형태의 집합일 뿐이다. 나는 이제 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 끝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치열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처럼, 이별의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포옹은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나는 눈앞의 종말을 회피하지 않겠다. 대신 그 끝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내 삶의 모든 원소를 동원해 가장 또렷한 사랑의 궤적을 남길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게 다가온 인연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예우다.




#생각번호20260114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관련 기록과 개인 아카이브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

https://molamola.live/product-category/korean-essays/

이전 22화[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2] 영원을 연기하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