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욕망이라는 가설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욕망을 무한한 것으로 설정한다. 그래야만 '효율적 배분'이라는 경제학적 과제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인간이 적당히 만족하고 욕망을 멈춘다면, 자원을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바퀴는 멈춰버릴 것이다. 결국 '무한한 욕망'이라는 대전제는 현실의 투영이라기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에게 덧씌운 가상의 데이터에 가깝다.
욕망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심지어 한 개인 안에서도 시시각각 변한다. 누군가는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고요를 원하고, 누군가는 타인과의 연대에서 더 큰 만족을 얻는다. 경제학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효용(Utility)'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지만, 이 역시 모든 가치를 '숫자'로 환원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우리가 앞서 말한 '주체적인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상수(Constant)로 두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관찰하고, 필요하다면 그 가중치를 스스로 조절한다. 욕망을 관리한다는 것은 시스템이 설정한 '무한궤도'에서 내려와 자신만의 고유한 집합을 만드는 행위다.
경제학에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이는 소비의 효율성을 따질 때만 쓰인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충분함(Enough)'이라는 지점을 감각할 줄 안다.
이 '충분함'의 감각은 경제학적 대전제를 위협한다. 욕망이 끝이 없다면 인간은 영원히 결핍 상태여야 하지만, 우리는 욕망을 관리함으로써 결핍을 풍요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학의 대전제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의지'와 '성찰'이라는 변수를 모델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현대 경제 시스템은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계속 결핍을 느끼도록 인위적으로 욕망을 자극해서 돌아간다. 마케팅과 광고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부족한 것'으로 재정의하고, 새로운 욕망의 편향을 주입한다.
'욕망의 관리'는 이 정교한 조작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내 욕망의 크기를 내가 결정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경제학이라는 매트릭스 안의 소모품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과 풍요를 스스로 정의하는 주권자가 된다.
경제학의 대전제는 지도와 같다. 지도는 길을 찾기 위해 지형을 단순화하지만, 그것이 실제 숲의 향기나 흙의 감촉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는 가정은 자원을 분배하는 수식을 풀기 위한 도구일 뿐, 우리 삶의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경제학적 인간보다 훨씬 복잡하고 고결하다. 우리는 욕망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절제할 수 있고, 채울 수 있지만 동시에 비워낼 수 있다. 그 불규칙하고도 주체적인 '욕망의 관리력'이야말로, 차가운 경제 논리가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인간만의 가장 뜨거운 영토일 것이다.
#생각번호20260114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관련 기록과 개인 아카이브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
https://molamola.live/product-category/korean-ess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