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적은 반복되지 않는가

침묵이라는 이름의 시험

by 민진성 mola mola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인간의 선택과 구원이 중요하다면, 왜 신은 현대에도 예수를 보내지 않는가. 화려한 기적을 행하는 대리인을 매 세대 파견해서 눈앞에 증거를 들이밀면 될 일이 아닌가. 보이지 않으니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신은 왜 이토록 지독한 '불친절'을 유지하는 걸까.



기적의 유효기간

그리스도교의 논리에 따르면, 기적은 역설적으로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압도적인 기적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바다가 갈라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굴복'에 가깝다. 2+2=4라는 사실을 믿는 데 신념이 필요 없듯, 기적이 일상이 되는 순간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지는 사라진다. 신이 원하는 것이 공포나 증거에 압도된 순종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의 자발적인 반응이라면, 기적은 오히려 그 반응을 방해하는 노이즈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표적'에서 '메시지'로의 전환

예수가 행했다는 기적들을 신학에서는 '표적(Sign)'이라고 부른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언가를 가리키는 이정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단 한 번의 사건(성육신과 부활)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메시지를 이미 다 던졌다고 본다. 이제는 시각적인 퍼포먼스가 아니라, 남겨진 기록과 그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통해 증명되어야 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기적을 행하는 초인이 다시 오지 않는 이유는, 이제 그 역할을 살아있는 신자들이 삶으로 대신해야 하는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것

성경 속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예수가 기적을 행할 때조차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결국 그를 죽음에 내몰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인간 심리의 본질적인 부분이 드러난다. 기적은 일시적인 경탄을 자아내지만,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금세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가듯, 시각적인 자극은 익숙해지면 더 큰 자극을 요구할 뿐이다. 신이 기적의 대리인을 계속 보내지 않는 건, 증거가 부족해서 안 믿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주권을 내놓기 싫어서' 믿지 않는 인간의 속성을 알기 때문이라는 냉소적인 해석도 존재한다.



부재(不在)라는 방식의 현존

결국 지금의 침묵은 신이 인간에게 넘겨준 '자율성'의 공간이다.

기적이 없는 시대에 신을 찾는 행위는 온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겨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 자체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신은 기적이라는 '치트키'를 써서 게임을 끝내는 대신, 인간이 안개 속을 헤매며 스스로 길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생각번호20260116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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