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연 상태'는 죄가 되어야 했나
무교의 시선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은 참으로 고집스럽다.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정작 인간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방식(본능, 이기심, 생존 욕구)을 '죄'라고 규정해버렸다. 그리고는 그 죄에서 구원하겠다며 자기 아들을 보낸다. "병 주고 약 주느냐"는 비판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설계자가 시스템의 기본값을 '죄'가 아닌 '정상'으로 설정했다면 애초에 비극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스도교는 이 세상을 설계할 때, 물리 법칙(중력 등)만큼이나 견고한 '영적/도덕적 질서'가 함께 설계되었다고 본다. 중력이 있는 세상에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다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이듯, 신이라는 완전한 선(善)의 궤도에서 벗어난 상태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파괴를 수반한다고 보는 것이다. 신이 "이제부터 중력은 없어!"라고 선언할 수 없듯, '선(신)과 분리된 상태'가 '행복(생명)'일 수는 없다는 논리다. 즉, 신은 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신이 없는 상태의 결핍을 죄라고 '정의'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우리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상태'는 사실 생존을 위한 이기심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상태다. 하지만 신이 설계한 원래의 인간은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존재, 즉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절대적인 평화를 누리는 존재였다. 그리스도교의 시각에서 지금 우리가 겪는 '자연스러운 본능'은 사실 설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설계도가 '훼손된 상태'다. 예수는 이 훼손된 자연 상태를 '정상'으로 인정해주는 대신, 원래의 완벽한 설계도로 인간을 '복구'시키는 쪽을 택했다.
"그냥 좀 봐주면 안 돼?"라는 질문에 신학은 '신의 완벽함'을 근거로 든다. 빛 앞에 어둠이 공존할 수 없듯, 완벽한 정의 앞에 티끌만 한 불의도 함께할 수 없다는 논리다. 만약 신이 기준을 낮춰서 적당한 악을 허용한다면, 그는 더 이상 '절대적인 선'이 아니게 된다. 신은 자신의 속성(거룩함)을 포기할 수 없기에 기준을 낮추는 대신, 인간이 그 높은 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대속'이라는 가장 비싼 비용을 치른 것이다.
결국 예수가 자연 상태를 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자연스러운 파멸'의 길을 막기 위해 법 자체를 뜯어고치는 대신, 법이 요구하는 형벌을 자신이 직접 감당했다는 것이 이 종교의 핵심이다.
설계자로서 시스템의 기본값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을 '도덕적 책임을 지는 인격체'가 아닌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짐승'으로 격하시키는 일이라고 신은 판단한 모양이다.
#생각번호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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