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알면서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는가
자산 시장의 폭등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목격하며 우리는 직감한다. 지금처럼 성실하게 일만 해서는 결코 내가 원하는 삶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대다수의 개인은 오늘도 어김없이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무엇이 우리를 이 '출구 없는 성실'에 묶어두는 것일까.
인간의 뇌는 새로운 길에서 얻을 10억보다, 지금 당장 손에 쥔 300만 원의 월급을 잃는 것을 훨씬 더 공포스럽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이라 부른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기존의 성실을 버리는 행위는 '확실한 생존 수단'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도박'에 뛰어드는 일이다. 뇌는 생존을 위해 변화보다는 차라리 '예측 가능한 불행'을 선택하도록 우리를 유도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실의 공식을 따르기 위해 수십 년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왔다. 학업, 스펙 쌓기, 조직에서의 경력은 모두 내가 지불한 **매몰 비용(Sunk Cost)**이다. 지금 이 궤도를 이탈한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쌓아온 모든 시간과 정체성을 '실패'나 '무의미'로 규정하는 고통을 수반한다. 내 과거가 틀렸음을 인정하기보다, 차라리 가망 없는 길일지언정 계속 걸어가는 것이 심리적으로는 덜 괴롭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그 이후의 구체적인 삶의 모델은 공유되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두고 투자를 해라" 혹은 "창업을 해라"는 조언은 넘쳐나지만, 그것이 실패했을 때의 안전망은 전무하다. 사회는 성실을 버린 개인에게 매우 가혹하다.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 사회적 지위와 관계망이 단절되는 구조 속에서, 개인은 '운명을 바꾸지 못하는 성실'이 차라리 '운명이 파괴되는 도전'보다 안전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실은 강력한 정신적 마취제 역할을 한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에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내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꿀 고민(리스크가 큰 고민)을 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며 실존적인 불안을 야기한다. 반면,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그 고민을 뒤로 미루게 해준다. 즉, 바쁘게 사는 것은 내 비참한 운명을 직면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드는 가장 합리적인 도피처인 셈이다.
#생각번호202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