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聖座) 위의 야수

교황은 왜 아들을 위해 전쟁을 선택했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1496년의 이탈리아는 신앙의 성지가 아니라, 거대한 야심들이 충돌하는 체스판이었다. 그 중심에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최고 수장이라는 성스러운 이름 뒤에 숨겨진 그의 본 모습은, 보르자 가문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신의 이름조차 전략적 도구로 쓸 준비가 된 노련한 정치가였다. 우리는 묻게 된다. 신의 대리인이라는 자가 어떻게 아들의 영토를 위해 피의 전쟁에 뛰어들 수 있었는가.



교황청이라는 이름의 '가족 기업'

당시의 교황은 단순히 영적인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교황령'이라는 국가를 통치하는 세속적 군주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에게 교황직은 신이 내린 소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문을 일으킬 단 한 번의 '권력적 기회'이기도 했다.

알렉산데르 6세에게 아들 체사레 보르자는 자신의 권력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해 줄 '칼'이었다. 교황의 자리는 세습되지 않지만, 교황이 확보한 영토는 가문의 재산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보르자 가문이 이탈리아의 강자로 남길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 체사레에게 번듯한 영토와 군대가 필요했다. 신앙보다 '가문의 생존과 번영'이라는 본능이 앞선 셈이다.



거룩한 야합: 영혼과 영토의 거래

루이 12세와의 동맹은 그 추악한 욕망의 정점이었다. 루이 12세는 사적인 이혼 문제(정치적 필요에 의한 이혼)를 해결해야 했고, 교황은 이를 승인해 주는 대가로 프랑스의 군사력을 빌려 아들 체사레의 영토인 '로마냐 지방'을 정복하려 했다.

성스러운 결합(결혼)을 해소해 주는 권한을 팔아, 땅을 얻으려 한 이 거래는 종교적 가치가 권력의 하부 구조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교황에게 십자가는 신앙의 상징이기 이전에, 외국 군대를 불러들이고 정적을 파문할 수 있는 '법적 치트키'였다.



전쟁은 신의 뜻인가, 가문의 뜻인가

전쟁에서 죽어 나가는 수많은 목숨은 교황의 계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에게 전쟁은 리스크 관리의 수단이었고, 승리는 가문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배당금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오고 가는 전쟁에 왜 끼어드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나의 아들이 무너지면, 교황의 권위도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종교적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적 현실주의자'였다. 교황이라는 직위는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소프트웨어였고, 아들의 군대는 그 소프트웨어를 돌릴 하드웨어였다.



4. 르네상스가 남긴 질문

알렉산데르 6세의 행보는 훗날 종교개혁의 불씨가 된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현대인들에게도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역시 내가 가진 '직함'이나 '사회적 지위'라는 성스러운 명분을 내세워, 사실은 나만의 사적인 욕망이나 내 자식의 안위를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지는 않은가.

거룩한 옷을 입고 추악한 전쟁을 기획했던 500년 전의 교황은, 어쩌면 인간이 권력이라는 취기에 취했을 때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거울일지도 모른다.





#생각번호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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