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인의 배신

설계자가 오염시킨 지도를 믿어야 하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기괴한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교황이 자신의 사생아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정치적 야합을 위해 성스러운 교리를 화폐처럼 거래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는 근원적인 회의에 빠진다. 본인들조차 실리를 위해 종교를 도구로 이용했으면서, 어떻게 그 매개체를 통해 신을 믿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설계자가 오염시킨 시스템

우리는 흔히 '메시지'와 '메신저'를 분리해서 보라고 배운다. 하지만 메신저가 메시지를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사용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렉산데르 6세와 같은 인물들은 종교라는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운영자였다. 그들이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사익을 취했다는 사실은, 그 시스템이 지향하는 '신성함'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비웃으며 뒷거래를 하는 판사가 "법은 신성하니 지키라"고 호통치는 꼴이다. 사람들은 묻게 된다. "당신들도 믿지 않는 그 신을, 왜 내가 당신들을 거쳐서 믿어야 하는가?"



매개의 권력: 독점적 대리권의 비극

그리스도교 역사가 가진 가장 큰 모순은 '매개(Mediation)'의 독점에 있었다. 당시 교황청은 신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통로를 자처했다. 천국으로 가는 티켓(면죄부)을 발행하고, 죄의 유무를 판결하는 권한을 독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간적인 욕망에 찌들어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오히려 더 '절대적 권위'를 강조했다. 자신들의 실수가 신의 실수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교황 불오류설' 같은 장치들을 덧댄 것이다. 이는 신앙의 수호라기보다, 권력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한 마케팅에 가까웠다.



이용하는 자와 믿는 자의 비대칭

역설적인 것은, 상층부의 권력자들이 종교를 철저히 '이용'하는 동안 밑바닥의 민중들은 그 종교를 '진심'으로 믿었다는 점이다. 권력자들에게 종교는 통치 공학(Software)이었지만, 민중들에게는 생존의 의미(Hardware)였다.

이 지독한 비대칭 속에서 종교는 유지되었다. 이용하는 자들은 민중의 진심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영토를 넓혔고, 민중은 권력자의 타락을 보면서도 '신은 저들과 다를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스도교가 이토록 끔찍한 흑역사를 가지고도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이용당한 가치'가 가진 힘이 너무나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제된 역사인가, 반복되는 현실인가

500년 전 교황의 야합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불쾌함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집단이 '거룩한 가치'나 '공공의 이익'을 내세워 사익을 챙긴다.

본인들조차 믿지 않는 가치를 남들에게 강요하는 행태는 여전히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는 알렉산데르 6세의 파렴치함을 통해 질문해야 한다. 지금 내게 가치를 강요하는 저 메신저는, 그 가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가치를 등에 업고 칼을 휘두르고 있는가.





#생각번호20260123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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