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聖戰)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오해

누가 그들을 사지로 몰았나

by 민진성 mola mola

교황과 영주들이 체스판 위에서 영토와 권력을 계산할 때, 체스판의 '말'이 되어 피를 흘린 이들은 이름 없는 평신도들이었다. 우리는 묻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권력자의 욕망을 위한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왜 그들은 남의 사적인 전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을까?



명령과 신앙이 하나였던 시대

15세기의 평민들에게 '국가'나 '자아'라는 개념은 희박했다. 그들의 세계는 자신을 다스리는 영주, 그리고 그 영주에게 권위를 부여한 교회라는 두 기둥으로 지탱되었다.

영주의 명령: 거부할 수 없는 생존의 조건이었다.

신의 뜻: 거부해서는 안 되는 영혼의 조건이었다. 교황이 축복하고 영주가 깃발을 든 전쟁에서, 평민들은 "이것은 영주의 사욕이다"라고 의심할 인지적 틈새가 없었다. 그들에게 영주의 부름은 곧 신이 부여한 질서에 순응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게 한 '천국의 약속'

당시의 삶은 지독히도 고달팠다. 질병, 굶주림, 끊임없는 노동 속에서 유일한 위안은 '사후세계'였다. 지도자들은 이 간절함을 이용했다. "이 전쟁에서 싸우다 죽으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 이 달콤하고도 무서운 선동은 평신도들에게 전쟁터를 사지가 아닌 '구원의 통로'로 보이게 만들었다. 영주들은 금화를 챙겼지만, 평신도들은 보이지 않는 천국의 지분을 챙기기 위해 칼을 들었다. 이 지독한 가치 교환이 전쟁을 지탱하는 동력이었다.



정보의 암흑이 빚어낸 비극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교황의 사생활이나 영주들의 뒷거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평민들은 신부의 강론 외에는 세상을 이해할 창구가 없었다. 교황이 프랑스 왕과 야합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달된 정보는 오직 하나, "이교도나 적들로부터 성스러운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편집된 진실뿐이었다. 정보의 비대칭이 낳은 거대한 눈가림이었다.



안타까움 너머의 교훈

자신을 사지로 모는 이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평신도들의 역사는 눈물겹도록 안타깝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500년 전의 먼 이야기일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거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정의'나 '신의 뜻'으로 착각하며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지도자들은 여전히 실리를 챙기고, 평범한 이들은 여전히 신념을 위해 희생한다.





#생각번호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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