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라는 신앙

우리는 왜 '반복'이라는 교리를 숭배하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종교의 시대가 가고 이성의 시대가 왔다고 믿는다. 보이지 않는 신의 섭리 대신 눈에 보이는 데이터와 법칙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확신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보면, 그곳엔 가장 완고하고도 정교한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과학'이라는 이름의 종교다.



반복가능성, 증명할 수 없는 제1교리

과학의 핵심은 '반복가능성'이다. 어제 성공한 실험이 오늘과 내일도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냉정하게 묻자. 과거의 반복이 미래의 재현을 보장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놀랍게도 과학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내일도 법칙이 반복될 것"이라는 확신은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 그렇게 믿기로 선택한 '교리'에 가깝다. 우리는 확률을 이야기하며 과학의 객관성을 주장하지만, 그 확률조차 "과거의 빈도가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결국 과학적 사고의 출발선은 이성이 아니라, 증명 불가능한 대상을 참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영역이다.



과학자라는 사제, 논문이라는 경전

현대인들에게 과학은 고대인이 가졌던 종교적 권위를 그대로 승계했다. 우리는 우주론과 양자역학의 복잡한 수식을 직접 계산하지 않는다. 단지 가운을 입은 '과학자'라는 사제 집단이 검증했다는 사실을 믿고, 학술지라는 경전에 기록된 수치를 진리로 수용한다.

만약 내일 아침 중력의 상숫값이 변해 지구가 공중분해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과학적 오류라 부를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믿던 신(법칙)의 변심이라 부를 것인가? 수천 년간 쌓아온 법칙이 하루아침에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은 겸허히 수용하는 척하지만, 실상 우리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맹신'하며 하루를 버틴다. 이 지독한 안도감이야말로 과학이 가진 형이상학적 본질이다.



진리가 아닌 '유용성'의 도박

그렇다면 과학은 단지 세련된 미신일 뿐인가? 여기서 과학은 종교와 다른 교묘한 생존 전략을 취한다. 과학은 자신이 '절대 진리'라고 주장하는 대신, '가장 쓸모 있는 가설'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과학을 믿는 이유는 그것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혼돈 가득한 우주에서 그나마 우리를 가장 덜 속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켜지고, 비행기가 뜨는 그 '실용적 결과'들이 우리의 신앙을 매일 강화한다. 즉, 과학은 진실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진실을 모른다는 공포를 가장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정교한 지도를 들고 있지만, 그 지도가 그려낸 '질서'가 실제 우주의 모습(땅)과 일치하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가장 구조화된 형이상학을 살아가며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과학을 '아는' 것이 아니라 '믿고' 있다는 것을.

과학은 세상의 신비를 완전히 벗겨낸 것이 아니라, 그 신비를 '법칙'이라는 예쁜 포장지로 감싸 안았을 뿐이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가장 구조화된 형이상학 속에서, 내일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도박에 기꺼이 전 재산을 걸고 산다.

우리의 이성은 사실 믿음의 다른 이름이며,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우주라는 거대한 침묵 앞에서 인류가 함께 부르는 질서의 찬송가일지도 모른다.





#생각번호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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