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흄을 밀어냈는가
세상은 언제나 명확한 답을 주는 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이 구원의 길이다"라고 외치는 권위 앞에서 대중은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비드 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환영받지 못할 손님이었다. 그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던 모든 지팡이를 꺾어버리고는, "사실 너는 맨몸으로 허공에 떠 있는 거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흄이 선사한 '권위로부터의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형벌에 가까웠다.
"내가 믿는 과학적 법칙이 사실은 습관일 뿐이라고?"
"내가 지켜온 도덕이 단지 감정의 산물이라고?"
"심지어 '나'라는 존재조차 지각의 쪼가리들이 모인 다발일 뿐이라고?"
이런 주장은 삶의 근간을 뒤흔든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지탱해 줄 '단단한 바닥'을 원하지만, 흄은 그 바닥이 사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임을 폭로했다.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서 홀로 서기보다는, 차라리 시스템이 짜놓은 정교한 인과율의 감옥 안에서 보호받기를 택한다. 흄의 철학이 주류가 되기에 그는 너무나 정직했고, 대중은 너무나 유약했다.
실제로 흄의 회의론이 세상을 뒤흔들자, 철학사에는 이를 '수습'하려는 거인이 등장했다. 바로 임마누엘 칸트다. 칸트는 흄의 철학을 읽고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했지만, 동시에 흄이 열어버린 불확실성의 지옥문을 닫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 안에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고정된 '틀(범주)'이 있다고 주장하며, 과학과 도덕의 권위를 다시 세우려 노력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다시 "확실한 정답"을 이야기하는 철학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주류 철학의 왕좌는 흄이 아닌 칸트의 차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흄이 던진 날카로운 질문을 품기보다, 칸트가 설계한 견고한 성벽 안으로 숨어드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주류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흄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흄의 회의론은 주류 철학의 빈틈을 끊임없이 공격하며 지하에서 흐르는 거대한 강물이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양자역학이 결정론적 세계관을 깨부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절대 권위의 허구를 폭로하며, AI가 인간 지능의 실체가 '확률적 연산'임을 증명해낼 때마다, 우리는 다시 흄을 소환한다. 비록 주류는 아닐지언정, 흄은 인류가 오만함에 빠질 때마다 나타나 그 뒷덜미를 낚아채는 가장 서늘한 경고음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흄의 철학은 태생적으로 '소수의 전유물'일지도 모른다. 확실함이라는 마약을 끊어내고, 내일이 오늘과 다를 수 있다는 불안을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 자들만이 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무한한 욕망'의 굴레에 갇혀 괴로워하는 이유도, 사실은 흄이 말한 그 막막한 자유를 견디지 못해 시스템이 준 가짜 목적지에 매달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흄의 주장은 결코 주류가 될 수 없겠지만, 우리가 '거짓된 확실성'에 숨이 막힐 때마다 꺼내 마셔야 할 단 한 모금의 차가운 진실임은 분명하다.
#생각번호20260114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관련 기록과 개인 아카이브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