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파산 선언

흄이 허문 세 개의 성벽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권위를 먹고 산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진리, 도덕이라는 이름의 당위, 그리고 '나'라는 이름의 연속성. 이 견고한 성벽들은 우리 삶에 질서와 안정을 부여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흄은 이 성벽들이 사실은 아무런 기초도 없는 모래 위에 세워졌음을 폭로한다. 그의 철학은 지독할 정도로 철저한 '권위 해체서'다.



과학의 권위 : '법칙'에서 '기대'로

흄은 과학을 '절대 법칙'의 지위에서 끌어내려 '심리적 습관'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는 과학적 권위는 흄의 손을 거치며 "우리는 물이 끓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버릇이 있다"는 고백으로 변한다. 아무리 정교한 수식과 모델링도 미래를 구속할 권리는 없다. 과학적 권위가 해체된 자리에는 '절대적 진리' 대신 '잠정적인 확률'만이 남는다.



도덕의 권위 : '이성'에서 '감정'으로

당대 철학자들은 도덕이 이성적인 법칙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흄은 선포한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일 뿐이며, 또한 그러해야만 한다."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믿는 행동들은 하늘이 내린 법칙(권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거나 공동체의 이익에 기뻐하는 우리의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살인은 나쁘다"는 명제는 논리적 결론이 아니라 우리의 거부감이라는 감정의 표현일 뿐이다. 이로써 도덕을 앞세워 타인을 심판하던 이성적 권위는 해체된다.



자아의 권위 : '실체'에서 '다발'로

가장 파괴적인 해체는 바로 '나'라는 권위다. 우리는 평생 변하지 않는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흄은 내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라는 고정된 실체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곳에는 오직 매 순간 변하는 지각, 감정, 기억의 파편들만 떠돌고 있을 뿐이다. 자아는 그저 '지각의 다발(bundle of perceptions)'에 불과하다. '나'라는 권위가 해체되는 순간, 소유와 집착의 근거 역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해체가 남긴 자유, 혹은 혼란

흄의 논리는 무섭다. 과학도, 도덕도, 심지어 '나'조차 권위를 잃고 해체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

하지만 흄은 우리에게 허무주의자가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한 회의주의자'가 되라고 권한다. 권위가 해체된 자리에는 타인을 정죄하거나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오만이 사라진다. 대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유연함과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들어선다.

권위의 해체는 곧 '해방'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인과율의 사슬, 시스템이 주입한 무한한 욕망의 굴레, 그리고 '나'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흄의 철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거창한 권위의 비호 없이도, 당신은 이 불확실한 세계를 긍정하며 걸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생각번호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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