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채울 수 없는 마지막 0.1%
나는 오늘 데이비드 흄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의 데이터 센터에 발을 들이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는 수천 대의 서버가 윙윙거리며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미소 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능'이라 부르는 거대한 AI 시스템이 사실은 이성이 아닌, 수조 개의 데이터를 비빈 '확률과 습관의 통계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현대의 AI는 흄이 정의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복제한 거울과 같다. AI는 "사과는 맛있다"라는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수만 번의 텍스트 속에서 '사과'와 '맛있다'가 나란히 놓였던 경험을 학습한다. 흄은 일찍이 인간의 지식이란 이성이 아니라 이런 '관념의 연합'에 불과하다고 설파했다. AI가 내놓는 답변은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일도 그럴 것이라 기대하는 '가장 세련된 습관'인 셈이다.
흄이 양자역학을 접했다면 그는 아마 "드디어 인간이 독단에서 깨어났군"이라며 박수를 쳤을 것이다. 고전 과학이 원인과 결과의 단단한 사슬에 집착할 때, 흄은 홀로 그 사슬이 환상일 수 있다고 외쳤다. 그리고 현대의 양자물리학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자의 위치는 확률로 존재하며, 관측이라는 사건이 개입하기 전까지 원인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양자컴퓨터가 연산을 수행하는 방식, 즉 '중첩'과 '확률'은 흄이 그토록 강조했던 "미래는 알 수 없으며 필연적이지 않다"는 불확실성의 철학을 기술로 구현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흄은 AI의 화려한 예측력에 경고를 잊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양자컴퓨터가 계산하고 AI가 데이터를 들이밀어도, 그것은 결국 '과거의 그림자'일 뿐이다. 17세기의 흄이 보기에, 21세기의 우리는 여전히 데이터라는 새로운 신을 믿으며 "내일도 해가 뜰 것"이라는 습관적인 믿음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기술은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우주와 심해로 뻗어 나가지만, 그 모든 것을 해석하는 인간의 뇌는 여전히 흄이 지적한 '경험의 감옥' 안에 있다. AI가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내일을 맞힐 수는 있어도, '왜 내일이 오늘과 같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답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흄이 예견한 확률의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다. AI라는 돛을 달고 양자역학이라는 파도를 넘으며, 여전히 확실한 정답이 없는 미지의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생각번호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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