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논리와 열린 현실

흄이 수학적 과학에 던진 질문

by 민진성 mola mola

과학은 숫자로 쓰인 언어다.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모으는(귀납) 과정은 결국 하나의 아름다운 수식이나 공리(연역)로 수렴하기 마련이다. 과학자들은 말한다. "표집은 시작일 뿐, 결국 우리는 논리적으로 닫힌 완벽한 모델링을 완성했다"라고. 하지만 흄은 이 지점에서 차갑게 미소 지으며 묻는다. "그 완벽한 수식이 왜 내일의 현실에서도 작동할 것이라고 믿는가?"



연역법은 '사전 속의 정의'일 뿐이다

흄은 연역법(수학, 논리학)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수학적 진리를 '관념의 관계(Relations of Ideas)'라고 부르며 찬사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라는 문장은 관찰이 필요 없는 절대적 진리다. 삼각형의 정의 안에 이미 그 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흄의 비판은 여기서 시작된다. 수학적 모델이 아무리 완벽하게 닫혀 있어도, 그것은 '머릿속 논리'일 뿐이다. "1+1=2"라는 수식은 완벽하지만, 현실의 사과 하나와 또 다른 하나를 더했을 때 여전히 두 개가 남아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흄은 연역법이 현실의 '사실의 문제(Matters of Fact)'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고 보았다.



모델링이라는 이름의 세련된 기대

질문자님이 지적하신 대로, 과학은 귀납으로 시작해 연역적 모델링으로 완성된다. 특정 수식을 찾아내어 논리를 닫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흄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정교한 수식으로 모델링을 해도 그 기저에는 여전히 '자연의 일률성(Uniformity of Nature)'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중력 가속도는 g=9.8m/s2이다"라는 수식은 논리적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이 수식이 내일도, 혹은 우주 반대편에서도 작동할 것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결국 다시 귀납의 문제로 돌아온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흄에게 과학적 모델링이란, 과거의 경험을 가장 그럴듯한 수학적 언어로 번역해 놓은 '세련된 기대치'일 뿐, 현실 그 자체를 구속하는 절대 법칙은 아닌 셈이다.



논리는 닫혀도 세상은 열려 있다

흄이 보기에 과학의 위대함은 '정답을 맞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모델'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는 경고한다. 모델은 닫혀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수식으로 세상을 다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다시 '독단'에 빠진다. 흄은 우리에게 논리라는 안경을 벗고 생생한 현실의 불확실성을 마주하라고 권한다. 아무리 완벽한 공리와 정리로 무장하더라도, 내일 아침 해가 뜨지 않을 가능성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적인 겸손이 만드는 과학

결국 흄은 연역적 논리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논리의 완벽함을 현실의 필연성으로 착각하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과학에서 모델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진리'여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가장 논리적인 '습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델링을 통해 세상을 예측하지만, 흄의 목소리를 빌려 늘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나의 모델은 닫혀 있지만, 세상은 내일 나를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지적인 겸손이야말로, 흄이 우리에게 물려준 가장 위대한 과학적 태도일지도 모른다.




#생각번호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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