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조립해가는 과정, 그 담담한 기록
병원 진료실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의사는 내게 묻는다. "어린 시절, 혹시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떠셨나요?"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신체적, 정서적 충격이 있었나요?" 많은 이들이 이 지점에서 당황하거나 입을 굳게 다문다고 한다. 누군가는 화를 내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 기제'라고 설명한다. 수치심, 재경험에 대한 공포, 혹은 타인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그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나는 CPTSD(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기인한 양극성 장애 2형과 이름 모를 신체화 증상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병원을 찾았다. 나에게 과거의 내력을 묻는 질문들은 나를 공격하는 '취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이 지독한 통증과 감정의 널뛰기를 설명해 줄 결정적인 '단서'였다. 나는 내 삶에 무언가 단단히 고장 났음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 원인을 찾지 못해 매일 밤을 지옥 속에서 보냈기에 방어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트라우마는 아프다. 다시 꺼내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올 때가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 '방어 기제'라는 방패는, 사실 그들이 무너지지 않게 지켜준 고마운 도구였을 것이다. 학대의 기억을 묻는 질문에 당황하는 마음 뒤에는 '내가 못나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수치심이 숨어 있거나, '그건 그냥 흔한 훈육이었어'라고 믿으며 자신의 세계를 붕괴로부터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깔려 있을지 모른다. 그들에게 질문은 치유의 시작이 아니라, 간신히 버티고 있는 세계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졌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방패를 내려놓기로 했다. 내 몸이 이유 없이 아프고, 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요동치는 이유가 내 성격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사건들이 남긴 '흉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내게 수치심이 아니라 오히려 해방감에 가까웠다. 내가 방어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던 건, 아마도 내 고통의 근원을 직면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인지는 나를 깎아내리는 자학이 아니라, 비로소 나를 고쳐 쓸 수 있다는 희망의 시작이었다.
오늘도 나는 진료실에서 나의 아픈 기억들을 가감 없이 꺼내 놓는다. 이것은 나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구조 신호를 해독하여, 더 나은 내일의 나를 조립해가는 과정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싶은 상처일지 모르나, 나에게 이 질문들은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매뉴얼을 완성해가는 소중한 문장들이다.
#생각번호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