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이라는 이름의 도박
현대 생물학은 이제 '치료'를 넘어 '예방'의 영역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데이터가 방대해지고 정밀해지면서, 우리는 아직 발현되지 않은 미래의 질병을 예측하고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고개를 든다. 우리가 생명의 메커니즘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느 정도 선까지 미래에 개입할 권리가 있는가?
법적 혹은 도덕적 책임은 대개 결과가 실현되었을 때 발생한다.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 처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사전 조치는 기묘한 '책임의 비대칭성'을 가진다. 내가 오늘 내린 결정—예를 들어 유전적 형질을 교정하거나 특정 생물학적 경로를 차단하는 행위—의 결과는 10년 뒤, 혹은 다음 세대에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과가 실현되는 그 시점에 정작 조치를 결정한 '주체'는 사라지고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린 결정의 대가를 미래 세대가 오롯이 짊어져야 한다면, 현재의 우리가 휘두르는 '예방'의 칼날은 무책임한 도박에 가깝다.
생물학적 데이터가 아무리 포괄적이라 해도, 그것은 언제나 '확률'의 언어로 말한다.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병에 걸릴 확률이 80%입니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20%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그 80%의 확률에 베팅하여 사전 조치를 취했다면,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20%의 가능성을 완전히 말살한 셈이 된다. '다 알 수 없다'는 겸손함이 결여된 사전 조치는, 통계적 수치 뒤에 숨어 생명의 다양성과 변수라는 실재를 부정한다. 이것이 내가 현대 생물학의 사전 조치가 '한계선'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선택이다. 다만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가역성(Reversibility)'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취하는 조치는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한 번 수정하면 영구적으로 대물림되는 유전적 개입이나, 생태계의 복잡성을 무시한 전면적인 차단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의 범위를 넘어선다.
나는 과학이 "이제 다 알았으니 미리 조치하겠다"는 확신보다는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는 신중함을 회복하길 바란다. 생물학적 데이터의 양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기술적 자부심이 아니라, 생명의 깊이에 대한 경외심이어야 한다.
진정한 사전 조치는 발생할지 모를 위험을 제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틀렸을 때를 대비한 '여백'을 남겨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임질 수 없는 미래를 미리 설계하려는 욕망, 그 오만함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할 결과는 과연 우리가 의도한 '완전함'일까?
#생각번호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