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의 환상과 집행의 실재

운명을 바꾼다는 것에 대하여

by 민진성 mola mola

운명을 바꾼다는 말은 매혹적이다. 하지만 이 문장 앞에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자신이 운명을 바꾸고 있다고 믿으며 취해 있는 자들과, 묵묵히 자신의 궤도를 수정하며 실제로 운명을 비틀고 있는 자들이다. 전자가 '선택'의 짜릿함에 집중한다면, 후자는 '구축'의 고통에 집중한다.



선택의 오만 vs 시스템의 구축

착각에 빠진 이들은 주로 시장이 차려놓은 밥상 위에서 '무엇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자신이 운명을 주도한다고 믿는다. 주식 종목을 고르고 부동산 급지를 따지는 행위는 분명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타인이 설계한 게임 안에서 베팅하는 '플레이어'에 불과하다.

반면 실제로 운명을 바꾸는 자들은 게임의 규칙 자체를 의심한다. 그들은 임금이라는 확정된 수익 구조 안에서 재테크 기술을 부리는 대신, 나만의 상품, 나만의 서비스, 혹은 나만의 사업체라는 '새로운 엔진'을 설계하는 데 시간을 쓴다. 그들에게 운명이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굴릴 수 있는 바퀴를 만드는 일이다.



정보의 소비 vs 가치의 생산

운명을 바꾼다고 착각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정보에 목마르다는 것이다. 커뮤니티를 유영하고 유력한 투자자의 입을 살피며 얻은 정보가 곧 자신의 실력이라 믿는다. 그들은 정보를 '소비'하며 앞서가고 있다는 스탠스를 취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의 시간은 갖지 못한다.

진짜 운명을 바꾸는 자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고립을 자처한다. 그들은 남의 성공 방정식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 시장에서 어떻게 자본으로 변환될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실험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가 오를까?"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지적 허영의 스탠스 vs 실행의 비루함

착각하는 이들은 종종 우월감에 젖어 있다. 월급만 믿고 사는 동료들을 보며 '나는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느끼지만, 정작 그들의 삶도 월급이라는 안전벨트가 풀리는 순간 무너지는 구조임은 매한가지다. 그들의 스탠스는 화려하지만 실체는 위태롭다.

반면 실제로 궤도를 바꾸는 자들의 과정은 비루하다. 자기 일을 시작하고 확장하는 과정은 재테크처럼 깔끔한 숫자로 보상받지 못할 때가 많으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거절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이 비루한 과정을 통과하며 쌓인 '회복탄력성'과 '문제해결 능력'이야말로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진짜 동력이 된다.



안락한 감옥의 인테리어인가, 탈출인가

재테크에 몰두하며 앞서 있다고 믿는 임금노동자는 사실 감옥 안에서 가장 좋은 침대와 가구를 배치하며 즐거워하는 것과 같다. 그 인테리어가 화려해질수록 감옥 밖으로 나갈 동기는 희미해진다.

운명을 바꾸는 자들은 침대를 포기하고 창살을 깎는 자들이다. 당장의 안락함은 포기했을지언정, 그들은 언젠가 감옥 문을 열고 나가 스스로 지도를 그려나갈 자유를 얻는다. 결국 차이는 명확하다. 당신은 지금 삶의 관객인가, 아니면 당신이라는 세계의 설계자인가.





#생각번호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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