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피동성과 기도의 역설

왜 갚지 않고 또 구하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부모에 의해 ‘태어남을 당한’ 존재임에도 부양의 의무와 효도를 요구받는다. 일방적인 은혜를 입었다면 마땅히 보답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왜 종교는 보답이 아닌 ‘또 다른 간구(기도)’를 강조하는가?



부채 의식으로서의 효도, 생존으로서의 기도

인간 사회의 효도는 대개 ‘부채 의식’에 기반한다. 받은 것이 있으니 갚아야 한다는 상호 호혜적 거래의 성격이 강하다. 갚지 못하면 불효라는 도덕적 부채가 발생한다. 만약 신과 인간의 관계도 이와 같다면, 기도는 염치없는 행위가 맞다. 받은 은혜도 다 못 갚았는데 또 무언가를 달라고 손을 내미는 꼴이니 말이다.

하지만 기독교적 논리에서 기도는 은혜에 대한 ‘보답(Payment)’이 아니다. 오히려 은혜라는 에너지가 계속 흐르게 만드는 ‘파이프(Channel)’에 가깝다. 식물이 태양 빛을 받아야만 살 수 있듯, 피조물은 창조주의 에너지가 없으면 소멸한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여기서 기도는 보답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살기 위한 ‘호흡’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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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우울과 27년의 트라우마 속에서, 회복을 기록합니다. 많이 애썼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애쓰지 않고 읽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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