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살인을 보고 왔다

변호사의 외상은 누가 돌보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살인자와 나, 그리고 그날의 진술

형사변호사 김 변호사는 오늘도 한 살인자의 진술을 읽었다. 현장은 끔찍했고, 피해자의 얼굴이 너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었다. ‘저건 내 가족이었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 생각이 머리를 파고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데 오늘 저녁엔 아이와 밥을 먹어야 한다.



비밀유지의 벽 —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형사변호사에게는 엄격한 비밀유지 의무가 있다. 의뢰인이 실제로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와 나눈 모든 대화는 보호받는다. 그러나 그 보호는 아이러니하게도, 변호사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사건을 객관화할 수도 없으며 트라우마를 해소할 방법도 없다. 변호사는 침묵 속에서 무너진다.



치료의 윤리 — 무엇까지 말해도 되는가?

대리 외상을 경험한 법률가가 상담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그들은 묻는다. "이걸 말해도 될까?", "의뢰인의 정보를 말하지 않고 내가 얼마나 외상받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곧 심리치료 윤리 vs 법조윤리라는 두 윤리체계의 충돌이다. 사건을 최대한 추상화하거나, 상담사에게 법적 비밀유지 의무(예: 전문심리상담사법상 직무상 비밀 누설 금지 조항)를 안내해 협약을 체결하는 등의 보완책이 일부 존재하지만, 제도적 가이드라인은 거의 전무하다.



기술의 역할 — AI와 DTx가 윤리의 안전지대를 만들 수 있을까

만약 다음과 같은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사건 내용 없이도 감정 구조만 기록하는 디지털 저널링 시스템, 의뢰인 정보를 추상화하는 AI 필터링 프로토콜, 법률가 전용의 폐쇄형 커뮤니티 기반 멘탈헬스 DTx 솔루션. 이는 법률가가 의뢰인 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은 충분히 토로할 수 있는 윤리적 안전지대를 만들 수 있다. ‘치료는 하고 싶지만, 말할 수는 없다’는 구조를 ‘말하지 않아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구조로 바꾸는 기술적 전환. 이것이 AI 기반 법률가 멘탈헬스 솔루션의 핵심 가치다.



외상을 설명할 권리 — 변호사의 존엄을 위하여

‘범죄자를 변호하니까 당연히 힘들지’, ‘그건 네가 선택한 일이잖아’, 이런 말은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는다. 직업윤리로 감정을 정당화하는 순간, 그 직업은 인간을 삼킨다. 변호사도, 경찰도, 기자도 ‘타인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보고 기록하고 해석하는 이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묵묵한 인내가 아니다. 비밀을 지켜주는 구조 속에서 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는 권리, 그것이 진짜 ‘전문직의 윤리’이자 ‘지속 가능한 정의’다.



형사변호사는 법정에서 타인의 죄를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고통은 법정 밖 어디에도 말할 수 없다. 이 침묵을 깨는 것은 기술의 역할이자 사회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날 나는, 너무 힘들었다.”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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