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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amola Mar 10. 2020

런던을 떠나는 D-day

런던과 이별하는 일 D-day

 아침 10시 20분 비행기여서 택시를 6시 15분에 불렀다. 이렇게 까지 일찍 갈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늦는 것보다는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게 낫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바지런을 떨었다.


 공항에 갈 때마다 애용해온 애디슨 리 택시 기사 아저씨는 집 앞에 도착하지도 않고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 마음을 쿵쾅거리게 하고, 집 근처에 도착해서는 단지 내 게이트가 안 열려 건물 앞까지는 못 오겠다고 전화를 걸어와 난감했다. 차가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 빈 공간에 주차하고 짐 싣는걸 먼저 도와주겠다던 아저씨는 전화한 지 3분도 안돼 차와 함께 건물 앞으로 나타났다. 알고 보니 게이트 옆에 컨시어지 호출 벨이 있는데 벨을 못 보고 나한테 먼저 전화했던 거였다.. 초행길일 테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이해했다.


 아저씨는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내 이민가방 두 개와 작은 기내용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어줬다. 매번 이민가방을 들고 갈 때마다 듣는 조크지만, 이번에도 '이 안(이민가방 안)에 사람 몇 명이 들었냐'는 얘기를 들었다. 똑같은 조크를 최소 5번은 들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명이요'라고 되받아쳤다.  아저씨는 당황하지 않고 대꾸하는 나를 보며 피식하며 웃다가, 차에 타서는 비행기 놓칠까 봐 잠을 못 잤다는 내 말에 한숨 자면서 가라고 했다.


 택시비는 52파운드였는데, 현금으로 뽑아 놓은 돈이 20파운드짜리 3개밖에 없었다. 60파운드를 내밀면서 잔돈은 팁이니 가져가시라 했는데 아저씨가 내 얘기를 못 들었는지 트렁크로 가서 지갑을 가지고 나왔다. 어차피  5파운드를 팁으로 드리면 60파운드에서 남는 돈이 3파운드뿐이라, 아저씨가 애써 지갑을 들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잔돈을 거슬러 받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 와서 3파운드 코인을 쓸데도 없었고, 아저씨가 무거운 짐 들고 내리는 걸 도와줬으니 8파운드를 다 팁으로 드린다 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매번 음식점에서 내는 팁은  그렇게 아까웠는데, 마지막 날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얘기를 못 듣고 지갑을 휘적이는 아저씨한테 다시 한번 더 잔돈은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다. 아저씨는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면서, 악수를 청했고, 우린 악수를 하고 다시는 각자를 만나지 않을 길로 떠났다.


 택시기사 아저씨와 인사를 하고 이민가방을 실은 트롤리를 끌고 공항 입구로 다가가는데 웬 아저씨가 나보고 'Do you speak English?'라고 물어왔다.  공항에서 혼자 이민가방 두 개를 끌고 가는 사람한테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묻는 게 살짝 짜증이 났다. 누가 봐도 여기서 살다가 어딘가로 가는 사람 행색 아닌가?  홍콩과 런던을 번갈아가면서 산 친구 한 명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데, 길거리에서 행인이  영어를 할 수 있냐고 질문할 때마다 불쾌하다고 했었다. 나한텐 여태 그런 일이 없어서 공감을 못했었는데, 잘 지내다가 마지막 날에 '당하다니'.  


 아저씨는 방금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봐놓고, 카드 머신이 본인 카드를 먹었다며 20파운드를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고 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20파운드를 어떻게 빌려 줄 수 있는지, 돈 달라고 할 요령이었으면 애초에 영어를 할 수 있냐는 어이없는 질문은 하질 말던지 싶었다. 보통 같았으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을 텐데, 이 아저씨한텐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가지고 있는 현금이 없다고 했다. 아저씨는 돈을 달라고 할 때는 나를 붙잡고 구구절절 얘기하더니, 현금이 없다는 말에 한마디도 더 하지 않고 다른 표적을 향해 쌩하고 걸어갔다.


 마지막 날까지 버라이어티한 이 도시, 온갖 종류의 인간 군상을 다 경험할 수 있는 런던이었다. 체크인을 하러 공항 안으로 들어갔을 때도 수화물을 부쳐야 하는데 오버사이즈 백 데스크 직원과 항공사 직원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해서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나라 꽤 고생을 했다. 그뿐만이랴. 수화물의 산을 넘으니 그 뒤에는 불친절하고 깐깐한 시큐리티 데스크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태 런던에서 떠나는 여정 이렇게 험난하고 불쾌한 적이 없었는데, 마지막 가는 날이라고 안 해도 될 고생까지 하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공항으로 가는 그 짧은 여정 동안 만난 여러 명의 사람들, 그들에 대한 각각의 다른 감상들이 모두 우연이었을지 인연이었을지 판가름하는 새에 탑승 시각은 빠르게 다가왔다.


이미지 출처:  Suganth on Unsplash


 탑승 줄에 서있는데 그때 막 출근을 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조심히 가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지금은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던 친구들이 곧 언제 볼지 모르는 사이가 되겠지 싶어 씁쓸했다. 해외 생활은 끝없는 새로운 만남과 작별의 연속이지만, 그 과정은 아무리 많이 해도 어딘가 익숙해지지 않는 허전함, 어색함이 함께했다.


 경유지였던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에는 히드로 공항에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히드로에선 거의 내가 유일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마음이 훨씬 놓였다. 이놈의 코로나가 뭐길래, 코로나에 걸릴 까 봐 걱정, 날뛰는 레이시스트 눈에 표적이 될까 걱정이 됐다. 떠날 때쯤 싱가포르 출신 유학생이 코로나 때문에 강남역만큼 인파가 몰리는 옥스퍼드 서커스에서 묻지 마 폭행을 당한 뉴스를 봐서 두려움이 더 커졌다.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바르샤바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는 텅텅 비었고, 마스크는 계속 착용해야 했지만 발만큼은 쭉 뻗으면서 올 수 있었다. LOT 폴란드 에어에서 신라면을 제공하는 탓에 비행 내내 컵라면 냄새를 맡으면서 와야 했지만, 그것 빼고는 흠잡을 데 없는 비행이었다.


 솔직히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면 울컥하고, 눈물이 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냥 덤덤했다. 창가 쪽을 예매해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창가 쪽에 앉는 낭만을 잊은 지 오래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의외에는 다른 때와 똑같은 여정이었다. 12시간의 비행이 지루하고, 허리가 아프고, 피부가 건조해질까 봐 걱정이 되는 그런 비행. 4년간의 해외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담백하게 끝나는 게 좋았다. 이건 딱 내가 원하는 그대로의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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