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이별하는 일 D-1
런던을 떠나기 하루 전에 나는, 앞으로 런던이 그리울까 봐 약간은 두려운 마음이 든다. 살만큼 살았다며 큰 소리를 치고 귀국을 결심했지만, 돌아갔는데 런던이 그리워지면 그땐 어쩌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런던에 거주하면서 한국에 향수를 느꼈던 지난 몇 달처럼,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런던에 향수를 느끼게 될까 봐 두렵다. 그런 어쭙잖은 감정이 또 올라오면 이 우유부단한 맘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이제 더는 런던에 돌아올 생각도, 구실도 없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에 돌아가서는 싫든 좋든 정을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이 혼란스러운 마음에 무게를 더한다.
졸업 후에 한국에 잠시 돌아갔지만, 그땐 한국에 머무르는 기간 내내 마음이 런던에 가있었다. 미래는 온통 런던을 향해 있었고, 한국에서의 삶은 런던에 다시 돌아가기 위한 휴식기 내지는 충전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나에게는 이번 귀국이 처음으로 '돌아간다'라고 느끼는 귀국인 셈이다.
한국으로의 귀국은 심사숙고를 통해 내가 내린 결정이다. 워홀을 결심했을 때, 굳이 런던으로 돌아가야 하냐고 하시던 부모님도 막상 내가 워홀 9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하니 조금 더 지내다가 1년을 채우고 오는 게 어떻겠냐며 몇 번 회유하셨다. 아마 내가 경제적인 이유와 조급해진 마음 때문에 귀국을 결정했다고 짐작하셔서 안쓰러워하신 것 같다. 하지만 나 자신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번 귀국을 결정하는 데는 외부적인 요인보다 내부적인 요인이 컸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든 건 4년 내내 런던에 거주하면서 처음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4년이 대학교 학부 생활 정도의 길지 않은 기간일 수 있지만, 내게는 지난 4년이 꽤 긴 시간이었다. 4년 동안 내 정체성에는 큰 변화가 생겼으며, 세상과 인류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국적과 인종에 차이를 두는 게 의미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으며, 한국 사회 문제뿐 아니라 세계 이슈도 동일하게 걱정하고 마음 쓰는 사람이 됐다. 그런 내가 되었으면서 한국에 돌아가는 결정을 했다는 게 어찌 보면 아이러니지만, 이제는 내 사고방식과 정체성이 세계 어디에 살더라도 확립될 만큼 확립되었기에 오히려 돌아가는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효용 가치가 가장 높아질 수 있는 건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엔 내 모국인 한국이지만, 아마 영국에서 느꼈던 자유로움이나 나만 생각하면 되는 1인용의 인생이 그리워질 것 같기도 하다.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귀국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의 내가 또 열심히 살아줘야 될 것이다. 다시 돌아가는 법, 다시 한국에 정착하는 법을 차차 배워가면 되겠지. 혼란스럽지만, 차분한, 떠나기 하루 전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