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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amola Feb 08. 2020

20대초반 아시안 여자로 런던에 4년간 살았던 이야기

런던과 이별하는 일 D-29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D-29라는 숫자를 보면 모델 겸 싱어송라이터 장윤주의 노래 29만 떠오른다. 영국에 오기 전, 포트폴리오 학원을 같이 다니던 언니가 스물아홉 살이 됐을 때 언니 옆에 붙어 이 노래를 연신 불렀던 기억이 난다.


 "I'm 29 getting old, I'm not a girl anymore."


언니 나도 이제 스물보다 스물아홉에 가까운 나이가 됐어요 라고 말해야 될 듯하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영원히 빨간 이층 버스의 위층 맨 앞자리에 앉아 스캐폴딩(Scaffolding)에 갇힌 빅벤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포송포송한 스콘의 반을 쪼개서 클로티드 크림과 잼을 반반씩 바르고 얼그레이에 우유를 타서 매일 마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시간은 성실하게 하루하루 가고 있다. 시간만큼 성실한 게 또 있을까.




이 포스트의 소제목에는 '20대 초반, 아시안, 여자, 런던 4년 거주'라는 네 가지 정체성이 담겨있다. 정체성을 나열한 이유는 내 이야기가 사회 안에서는 어떤 범주 안에서 볼 수 있는지 정의하고,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분들께 이 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런던과 이별하는 일'을 쓰기로 마음먹은 데는 분명 내 낭만을 기억하고, 사는 곳을 바꾸는데 드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한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일기장이 아닌 브런치에 쓰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런던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와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들이 (20대 초반or아시안or여자or해외 경험 없음) 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너무 궁금했으나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물론 한국에서도 유튜브가 많이 활성화돼 영국 유학 얘기, 워킹 홀리데이 얘기 등을 전해주는 좋은 채널들이 많이 생겼지만, 2015년만 해도 '여기 애들은 유튜브를 되게 많이 보네. 저게 재밌나.'라고 혼자 생각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완전한 대중화를 이루기 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유학 초기에 유튜브보다는 런던이나 해외 거주하시는 분들의 블로그를 더 많이 보곤 했었다. 나와 똑같은 상황에 계신 분은 없었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얻고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아쉬움은 있었다. 당시 구독했던 블로거 분들 대부분은 20대 초반이었던 나 보다는 나이가 있었고, 이미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런던에서 석사를 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부모님이나 본인이 해외에서 살아보지 않고, 한국에서 수능을 보거나 대학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후 20대 초반에 해외 생활을 시작하는 이야기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 연유로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를, 여전히 궁금해할 누군가를 위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었다. 새로운 자극과 영감이 넘치더라도, 마음 한구석이 퍽퍽한 것이 타지 생활이고 그런 타지 생활에 '나 같은 사람' 한 명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까.



부모님이나 본인이 해외에서 살아보지 않고,
한국에서 수능을 보거나 대학을 가지 않고,
20대 초반 여자가 해외 생활을 시작하는 이야기


'꿈꾸는 별'님이 석사과정 하실 때부터 자주 들락날락했던 블로그, 이젠 시간이 지나 예쁜 아가도 생기셨다!


 이 포스트를 런던에 이미 100% 적응한 상태에서 읽으시는 분도 계실 거고, 런던에 오기 전 리서치 차원으로 읽고 계신 분도 있을 거라 믿는다. 혹은 런던과 크게 관련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읽고 계신 분도 있으리라. 모두 감사하다.


이 시리즈의 모든 이야기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할 것이나 개인적인 경험 뒤에는 앞서 소개한 네 가지 정체성이 녹아있을 것이다. 어떤 편은 한 가지 정체성에 포커스를 맞춰 진행되는 포스트도 있을 것이고, 어떤 편은 여러 정체성이 한데 모여 앙상블을 이루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편도, 개인의 한 가지 경험이 해당 정체성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을 거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예를 들어,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을 얘기할 때 영국 내 인종차별에 대한 경험을 서술하게 될 텐데 모든 아시안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실제로 내가 겪은 일을 친구들은 겪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마지막으로, 매일의 토픽은 그 날 하루를 보내고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와 들려드리겠다. 머릿속에 대략적인 구조는 그려 놓고 있지만 하루하루 이 도시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더 주의 깊게 듣고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So, please stay t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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