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lamola Feb 08. 2020

집순이에게 집은 모든 것

 런던과 이별하는 일 D-28

 생리통 때문에 집 밖으로 한 발 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오늘만큼은 런던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는 곳에서만 존재한 것처럼 느껴진다. 문득 이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른 게 오늘이 처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는 데는 어폐가 있어 그랬을 것이다. 이 집에는 우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같이 살지 않는다. 플랏 메이트가 한 명 있지만, 이름과 학교, 얼굴만 겨우 안다. 게다가 서로 집안에서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덕분에 일주일 동안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을 때도 있다.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닌데,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귀가할 때쯤이면 타인과의 접촉을 감당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그래, 플랏 메이트의 마음까지야 모를 일이지만, 최소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혼자 사는 게 마음은 제일 편하겠지만 부동산 가격이 높은 런던에서는 플랏 셰어가 거의 불가피하다. 깔끔한 원 베드룸 플랏이나 스튜디오에 살기 위해서는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해도 1200파운드 정도는 들어간다(2020.02.07 현재 환율 기준* 185만 원 정도). 물론, 각종 유틸리티 빌은 별도다. 한국에서는 자취를 하면 보증금 마련이 가장 어려운데, 런던에서는 보통 한 달치나 5주 치 렌트를 보증금으로 낸다. 보증금 마련의 부담은 없지만, 월세 자체가 비싸다. 그래서 런더너들은 플랏 메이트를 최소 한 명씩은 안고 산다. 운이 좋다면 라이프 스타일이 맞는 플랏 메이트와 살게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미혼인데도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이 공감될 정도로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과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건 끝없는 타협과 조정을 필요로 한다.




 내게도 지난 4년간 여러 플랏 메이트들이 있었다. 런던에 거주하는 4년간 여섯 번 이사를 했고, 여섯 번 모두 다른 지역에서 살았다. 그중 기숙사가 세 곳, 플랏 두 곳, 현재 살고 있는 런던에서의 마지막 집은 신설 아파트다.  

 

 보통 기숙사의 경우를 제외하고, 런던에서 집을 구할 때 주플라(Zoopla), 라잇 무브(Rightmove), 스페어 룸(Spare Room), 검트리(Gumtree) 같은 웹사이트나 부동산 에이전시를 통해 구한다. 처음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은 영사 유케이(04uk)라는 영국 거주 한인 커뮤니티나, 페이스북 그룹 '영국 장터' 같은 곳에서 많이 구하기도 한다. 내 첫 집도 04uk에서 구한 집이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구했기 때문에 플랏 메이트 2명도 모두 한국인이었고, 가장 큰 방에 사는 분이 본인의 친구가 사는 한 방과 나머지 한 방을  서브렛(Sublet)을 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Two is company, three is a crowd, four is a party'라고 했던가. 친구 두 명과 객식구 한 명이었기 때문에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누명을 쓸 때도 있었고, 둘이 같이 밥을 해 먹는 날이면 나는 방에서 부엌이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식사 때가 늦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서브렛이긴 했어도 임대인이었기 때문에 집주인과 같이 사는 것과 다름없었는데, 집주인이 옆방에서 사는 건 끝없는 간섭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Two is company, three is a crowd, four is a party
둘은 동행이고, 셋은 군중이며, 넷은 파티다.


런던에서의 첫 내 방 ©molamolaj




 이런 크고 작은 애로사항은 이사를 할 때마다 생겼다. 그래도 여섯 번 정도 이사를 다니니 나만의 '이사 룰'이 생겨 지금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 플랏 메이트를 만났고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혹시나 그 룰이 궁금한, 런던에서 집을 구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까 해서 여기에 나만의 집구하기 룰을 공유해본다.


 Rule 1. 본인이 소수가 되는 플랏에는 들어가지 말 것


 앞서 말했듯, 플랏의 구성원이 홀수일 때 (친구 두 명)-(나), (커플)-(나)의 구성으로 살게 되면 부당한 일을 당하기 쉽다. 나는 첫 번째의 경험에서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작년에 친구 커플과 플랏을 빌려서 살기도 했는데 들어가서 사는 순간부터 후회했다. 일단 커플은 친구 두 명의 케이스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이 있는데, 둘이 한 방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한 방을 쉐어하면 영국에서 내야 하는 주민세인 카운실 택스(Council Tax)나, 집 렌트 비용 등을 나누기가 복잡해진다. 분명 커플은 한 방을 쓰지만, 공용 공간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집세를 반으로 나누기도, 1/3 하기에도 애매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한쪽은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쉽다. 또, 같이 살면서 갈등을 최대한  원만히 해결하는 게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생기는데, 그럴 때는 2:1인 대치 상황에서 놓이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도 이 2:1 대치 상황에서 굉장히 힘들어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해외 생활 중 집에서 오는 스트레스만큼 큰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Rule 2. 같이 사는 집주인 (Live-in Landlord)의 경우 신중하게 결정하기


 영국에는 리브 인 랜드로드 (Live-in Landlord)라는 거주 형태가 있다. 말 그대로 같이 사는 집주인이라는 뜻이다. 물론, 세상에는 좋은 집주인 분들도 많이 있고, 최고의 케이스일 경우 정말 가족처럼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집주인의 성격이나 성향을 잘 모른 채로 같이 사는 건, 안 맞는 플랏 메이트와 사는 것 이상으로 힘들 수 있다. 집주인은 집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임차인보다 집의 유지에 더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고, 그럴 경우에 임차인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도 거주하는 공간에서 눈치를 보게 된다. 나는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집순이인 데다가, 집에서 오는 안정이 중요한 타입이기 때문에 이런 케이스들은 피해서 집을 구했다.  


뷰만큼은 예뻤던 세 번째 기숙사 ©molamolaj

Rule 3.  범죄 지도(Crime Map)를 참고해서 집을 구할 것


런던은 유럽 도시 중에서 안전한 편에 속하고, 비교적 소매치기 범죄가 적은 편이긴 하지만, 런던에도 분명히 상대적으로 위험한 지역이 있고, 범죄율이 높은 지역이 있다. 내가 세 번째로 살았던 기숙사의 경우, 런던 남부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데 범죄율이 높은 지역과 맞닿아 있었다. 그 기숙사에 24시 상주하는 시큐리티가 없던 탓도 크지만,  유독 그곳에서만 외부인이 침입하거나 도둑이 드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또, 같은 층을 사용하는 플랏 메이트 모두가 우리 기숙사에 사는 줄 알았던 한 남자가 사실은 모두를 속여가며 계속 기숙사에 침입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적도 있고, 꽤 체격이 좋았던 남자 플랏 메이트가 기숙사 바로 앞에서 칼을 소지한 강도에게 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이사 갈 지역에 범죄 지도를 보면서  혐오 범죄나 절도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은 아닌지 항상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Rule 4. 정기적으로 클리너가 오는 기숙사를 우선으로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의 경우, 방에 부엌과 화장실이 같이 달린 스튜디오(Studio)의 형태가 있고, 방과 화장실이 같이 있는 엔 스윗(En-suite), 개인방이 있지만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형태가 있다. 런던에는 공용 공간에 정기적으로 클리너를 불러 학생들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기숙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숙사들도 많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공용 공간, 특히 부엌은 관리가 안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클리너가 관리해주는 기숙사를 우선순위에 두고 알아보는 게 좋다.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위생관념이 다르기도 하고, 모두가 과제나 시험공부로 시간이 없어 대부분 청소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Rule 5. 기숙사에서 여는 Get together party에 웬만하면 참석하기


이건 이사하기 전보다 후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기숙사에 들어가면 학기 초에 기숙사에서 겟 투게더 파티를 연다. 같이 사는 학생들끼리 친목도모를 하고, 기숙사 스태프들과도 알아가는 시간인데 이때 바쁘지 않다면 웬만하면 참석하는 게 좋다. 기숙사에서 오며 가며 스태프와 플랏 메이트들과 계속 마주치게 되는데, 안면을 트고 안 트고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큰 차이가 있다. 또, 이때 기숙사 학생들끼리 그룹 채팅방을 만들어 기숙사 뉴스 등을 공유하기도 하니 여러 모로 참석하는 게 미래에 유리하다. 나도 지금 가장 친한 친구들을 기숙사 바비큐 파티에서 만났는데, 이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기숙사 커먼 룸(Common Room)에 모여 티타임을 가지면서 1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2020.02.07 1파운드 = 1543.08원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이 지겹다면 인생이 지겨운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