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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amola Feb 09. 2020

런던이 지겹다면 인생이 지겨운 것이다

런던과 이별하는 일 D-27 


영국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이자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When a man is tired of London,

he is tired of life;
for there is in London all that life can afford.

런던이 지겹다면 인생이 지겨운 것이다.
런던에는 인생에 향유할 만한 모든 것들이 있다.




 18세기에 살았던 닥터  존슨의 이 말은 21세기 런던에 사는 20대 초반 아시안 여자에게도 과연 유효할까? 런던은 정말 인생에 향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는 곳일까? 내 대답은 그렇다 49% 와 아니다 51% 로 나뉜다. 애매한 대답은 종종 무응답 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한 가지 입장으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런던이 문화 도시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관심사가 무엇이든지 간에 99%의 확률로 런던 안에서 관련 이벤트나 장소를 찾을 수 있다. 책, 연극, 공연, 운동, 맛집, 카페, 여행, 언어... 이름만 대면 무엇이든 이벤트 트라이브(event tribe)나 밋업(meet up)에서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는다.


 고백하자면 나는 졸업 학년이 돼서야 런던의 무궁무진함을 깨달았다. 1학년 때부터 과제에 치여 작업에 몰두해 시간을 보내다가, 크리틱이 끝나면 하루 정도 쉬고, 또다시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새내기들은 자기 관심사에 대한 고찰보다는 대부분 소셜라이징이나 술을 마시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내가 학교 외 문화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건, 졸업 학년 때 알게 된 기숙사 친구들 덕분이었다. 기숙사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 셋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다른 배경과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A는 태국에서 온 전직 PR 출신 푸드 인스타 그래머였고, B는 미국 출신으로 전직 뷰티 테라피스트, 현직 셰프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C는 홍콩 출신 근육질의 뇌과학 전공자였다. 똑같이 학생 신분이었는데도 친구들은 나와 다르게 학교 외에 자기 삶이 있었다. 세 명 모두 런던이 홈랜드가 아닌데도 자기만의 루틴을 꾸려 나갈 줄 알았다.



해외 생활은 끝없는 타협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삶은 타협 선 밖에 있어야 했다.



  해외 생활은 끝없는 타협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삶은 타협 선 밖에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런던에 온 이유는 인생에 내가 원하는 퀄리티를 더하고 싶어서였는데 그때까지 내 인생은 학교-집-학교뿐이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가장 친한 친구들로부터 원하는 라이프 모델을 보게 되니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던 것들을 직접 실천하게 됐다. 알게 되는 전시가 아니라, 관심 있는 갤러리들의 뉴스레터를 구독해 새로운 전시가 생길 때마다 찾아갔다.  북클럽에 나가 공원에서  사람들이랑 둘러앉아 같이 책을 읽고, 옆사람과 친구가 됐다. 트라이얼 클라스를 해보며 마음에 드는 요가 스튜디오를 찾고, 하타요가, 포레스트 요가, 인 요가 등 새로운 요가들을 도전했다. 관심사가 생기면 런던에 있는 리소스들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기준 런던에 2년 반을 넘게 살고도, '로컬이 아닌데 그걸 어떻게 해'라고 생각해 무의식적으로 기피했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사 오기 전에 다녔던 요가 스튜디오, 이미지 출처: @yogahouse_london

 



 그러니까 런던이 새로 보였다. 이렇게 갈 곳이 많고, 이렇게 할 거리가 많다니 싶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런 활동들에 참여하는데 이면도 있었다. 밋업이나 요가 스튜디오에 가도 누가 먼저 내게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지인이 되고, 안면을 텄다면 런던에서는 그 자연스러움이 내가 노력하기 전까지는 결코 생기지 않았다. 아무리 이민자가 많은 런던이라도, 나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외부에서는 더욱 선명해졌다.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말이 새삼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노력을 수반하는지 아시안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던 요가 스튜디오에서 수련을 하며 느꼈다.


 그러나, 런던 사람들이 나를 배척하는 건 아니었다. 한국처럼 먼저 챙겨주는 문화는 없지만, 내가 참여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었다. 다만, 참여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과 동류가 되기 위한 노력은 온전히 내 몫일뿐이었다.


 런던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사실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로컬 행사나 장소가 아니라면  런던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나 해프닝은 베를린에서도, 파리에서도, 뉴욕에서도, 서울에서도 찾을 수 있다. 21세기의 인류는 이미  세계 곳곳 여러 도시에 모여 다양한 관심사를 나누고, 모임을 형성하고, 인생을 함께 향유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 닥터 존슨의 말처럼 런던이 지겹다고 해서 세상이 지겨운 건 아닐 것이다. 세상은 런던보다 넓고, 런던은 잉글랜드에 속한 한 도시일 뿐이니까. 다만, 런던에 살면서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내 인생이 지루하다면 런던도 지루하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지겨운 삶이 런던에 온다고 즐거워지지는 않는다. 런던은 지상낙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익숙한 문화의 알을 깨고 나오는 수고로움을 수반한다. 그래서 런던에서의 삶이 즐거우려면 내 즐거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정의하고, 그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내 몫의 숙제를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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