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이별하는 일 D-26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핸드폰 액정을 두드려 실눈으로 카톡이나 인스타그램 알람을 확인하는 건 나뿐만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이 행위에 별 가치판단을 두지는 않는다. 옛날엔 부재중 전화나 문자 메시지 확인이었다면 지금은 인스타그램이 된 것뿐.
그래도 내가 인스타그램을 자주 한다고 느꼈던 순간은 있다. 친구들의 연락이 카톡이나 페메가 아니라 인스타그램 DM으로 오기 시작했을 때다. 아마 카톡 답장은 안 해도 인스타그램은 보고 있다는 걸 들켰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은 포스팅의 캡션을 다는 일이다. 사진은 이미 정해졌는데, 도대체 캡션을 뭐라고 써야 오버스럽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위트 있어 보일까 늘 고민이 많다. 캡션의 언어를 뭘로 해야 될지도 해외생활을 애매하게 오래 한 나 같은 사람에겐 큰 난제다.
이걸 고민하고 있는 나도 내 자신이 한심하다. 그럼에도 유치하게 고민이 된다. 영어로 쓰면 왠지 한국인 친구들에게 허세처럼 보일 것 같고, 한국어로 쓰면 영어권 친구들을 소외시키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둘 다 쓰자니 너무 신경 쓴 것 같고, 어떤 언어를 먼저 쓸지도 고민이 된다. 한국어를 위에 쓰면 영어권 친구들이 밑에 영어가 있는지 모르고 그냥 내리면 어떡하지? 영어를 먼저 쓰면 사대주의처럼 보이려나?
팔로워의 국적 비율로 언어를 정하기에도 애매하다. 영어권 친구가 반, 한국인 친구가 반..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영어를 쓰는데, 인스타그램에서 소통량이 많은 친구들은 한국어를 사용한다. 아주 사소한 고민인데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인스타그램이 어느 순간부터 개인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말해주는 공간이 되다 보니 대충 아무거나 고르고 싶진 않다. 사람 만나기 전에 인스타그램부터 찾아보는 시대인데.
그래서 해외에 사는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캡션 유형을 밑의 8가지로 분류해봤다.
1. 한국어만 쓴다.
2. 영어만 쓴다.
3. 한국어, 영어 같이 쓴다.
4. 캡션은 한국어로 해쉬태그는 영어로 쓴다.
5. 캡션은 영어로 해쉬태그는 한국어로 쓴다.
6. 디지털 유니버셜 랭귀지, 이모지만 쓴다.
7. 포스팅마다 영어, 한국어를 번갈아가며 쓴다.
8. 한국어+영어를 문장에 섞어 쓴다.
나는 4,5번을 제외한 모든 옵션을 거치다가 현재는 2번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1번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다. 시도해보지 않은 4-5번이 현재까지로는 가장 현명한 방법처럼 보이나 해쉬태그는 조금 올드해 보이는 것도 같다. 이모지만 쓰는 건 무성의 해보일 것 같고, 언어를 번갈아 쓰는 건 우유부단 해보일 것 같고, 한 문장에 두 언어를 같이 쓰는 건 소재의 고갈이 빠를 것 같다.
한 마디로 그냥 노답이다. 사실, 문제는 언어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쿨 해 보이고 싶은 내 마음에 있다. 가진 것보다 더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 남의 사소한 평가도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아마 런던에 40년을 더 살아도 내가 나로 사는 한 이 문제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