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이별하는 일 D-25
한국에 돌아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건 내가 영국 취업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좋은 결과가 없어 아쉽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취업 컨설팅 유튜버 '인싸 담당자'님의 말씀이 가장 힘이 됐다. 그분의 영상 중에 실패와 극복 경험을 어떻게 자소서에 작성해야 하는지 설명한 영상이 있는데, 거기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열심히 한 것을 쓰는 게 실패&극복 경험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잖아요? 그러면 실패 경험이 아니라 실수가 됩니다. 그래서 실패는 내가 정말 열정을 다해 헌신해서 했느냐가 포인트입니다. 여러분들 기억하세요, 실수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열심히 했냐 안했냐가 포인트입니다... 극복의 핵심은 그 실패한 이유를 밝혔는가에요. 실패한 이유를 알고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 찾아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잖아요? 그러면 실패 경험이 아니라 실수가 됩니다.
실패한 이유를 알고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말은 내게 큰 귀감이 됐다. 누구나 살면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지만 내가 영국에서 취업을 하지 못한 건 실수가 아니었다. 졸업 후 영국에 돌아오기 위해서, 또 영국 내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능력이 되는 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시도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 포스팅을 통해 내가 왜 영국 취업에 실패했는지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면서 내 실패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졸업 후 영국에 돌아가기까지
우선, 나는 2018년 6월에 런던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두 달 뒤 8월에 귀국했다. 지금은 다시 비자 법이 바뀌어 현 재학생들은 졸업 후 2년을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나오지만, 그 당시에는 졸업 후 3-4개월 이내에 비자가 만기 됐다. 영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에 귀국 직후 2018년 하반기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러나 다행히 이듬해 2019년 상반기 워홀 비자를 받았고, 최종으로 비자와 여권을 수령할 때까지 공공기관 인턴 및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런던에 돌아올 자금을 마련했다.
개인적으로는 자금을 모으는 게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영어강사로 일하면서는 월급 갑질도 당했지만 어쨌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돌아오기 3주 전까지 계속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워홀 자금을 모았는지 정리해보자면 총 9개월 정도 두 곳에서 일하면서 적금을 세 개 들었다. 영국에 올 때는 비행기 값(핀에어 50만 원 대)과 집 보증급(£635)을 제외하고 500만 원을 들고 왔다. 이전에 적금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가장 접근성이 좋았던 카카오 뱅크 증액 적금 두 개와, 쏠 작심 3일 적금을 이용했다. 월급이 들어오면 적금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카카오 뱅크 세이프 박스에 보관해서 세이프 박스 이자를 추가로 받기도 했다.
이전에 런던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영국에 가기 전에 언어나 생활면에 있어 더 준비했겠지만, 이미 런던에서의 삶에 익숙했던 터라 돌아가는 데는 자금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자금에 두고, 일을 하면서 영국에 돌아올 준비를 했다.
영국에 돌아와서
내 능력으로 런던에 돌아오니 여러모로 뿌듯했다. 그래도 500만 원이 넉넉한 자금 사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돈도 아낄 겸 첫 두 달은 거의 집 바깥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포트폴리오만 만들며 보냈다. 취업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돌아와서도 좋은 마음보단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이때부터 매일 같이 운세 어플에 들어가서 취업운을 보는 습관이 생기기도 할 정도로 눈앞이 캄캄하고 두려운 맘이 커지기도 했다.
집에 은신(?) 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완성한 후에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여러 회사에 CV와 커버레터를 돌렸다. 영국에서 여러 구직 사이트가 있는데 내가 보통 사용한 웹사이트는 The dots, If you could, Magnet.me, Indeed.com, Linked in 정도였다. 나는 소속 단체를 대표해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브랜드 가이드라인 안에서 일할 때 효율성을 느끼는 편이라 인하우스 디자이너 쪽으로 주로 지원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온 지 3개월쯤 됐을 때 일주일 간격으로 두 곳에서 인터뷰가 잡혔다. 한 곳은 유명 출판사, 다른 한 곳은 대학교 내 인하우스 그래픽 디자인 팀이었다. 영국에서는 인터뷰 보기 전에 꽤 텀이 길어서, 인터뷰 오퍼를 받고 직접 보러 가기 전까지 3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매일 같이 인터뷰 연습을 하고, 포트폴리오도 재정비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에 인터뷰에서 솔직한 나를 보여주지 못했고, 내가 생각해도 준비한 티가 나는 대답만 하고 돌아왔다.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지 못해서였는지, 두 군데 모두 아쉽게도 좋은 결과는 없었다.
그 이후에 몬모스 커피에서 바리스타 & 커피 리테일러 직무로 잡 오퍼를 받았지만, 송구스럽게도 개인 사정이 생겨 오퍼를 거절하게 됐다. 그래도 트라이얼을 하는 동안 몬모스 분들께서 너무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오퍼를 거절했을 때 내 사정을 이해해주셔서 굉장히 감사했다. 어떻게 광고 하나 없이 런던의 1등 카페가 됐는지 충분히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여차저차 바리스타 & 리테일러 오퍼를 받긴 했지만, 내 전공 분야인 디자인 직무에서 원하는 수확이 없었다는 게 아쉽다. 그래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 9개월의 시도와 도전에 이제 방점을 찍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을 하며 올리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가장 큰 이유만 밝히자면, 더 이상 런던이 내 성장의 필수 요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욕심부린 만큼 워홀 비자가 때에 맞게 나와줬고, 힘들었지만 강사 일을 구해서 돌아올 수 있었고, 돌아와서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오늘은 영국에 돌아오기 전과 후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정리했다면, 내일 포스팅에서는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다뤄보려고 한다. 영국 취업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과 내일의 포스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