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폭탄의 범인

범인을 키운 우리

by 솔빛

이틀 동안 하얀 폭탄이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큰 눈을 많이 봐오긴 했지만, 첫눈부터 이렇게 무지막지하긴 또 처음 아닌가 싶다. 날씨 때문에 휴강한 적 없다던 댄스학원 원장님의 단호함도 무색해졌고, 아이 학교 등원 시간도 두 시간이나 늦춰졌다. 안전상의 이유로 얻은 시간은 옷장 깊숙이 숨겨둔 장갑과 목도리를 찾고, 밥을 더 두둑이 챙겨 먹는 데에 쓰였다. 하교 후에 있을 눈놀이를 각오하며.


피할 수 없는 오후 눈놀이 시간이 왔다. 아이들이 폭신하게 쌓인 눈 위를 구를 때 나는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었다. 눈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은 천사고, 여기는 캐나다 어디쯤인 거 같은 착각에 잠시 황홀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당장에 손이 시려 더 이상 사진을 찍기는 무리였으며 급히 신고 나온 어그는 푹 젖어 발까지 얼어붙기 시작했다. 자꾸 더 높은 곳을 찾아 썰매를 끌고 가는 아이들이 행여나 다칠까 싶어 눈으로 좇는 것도 여간 피곤한 일이었다.

2024년 11월 28일의 눈

겨울에 해가 짧은 건 눈놀이도 적당히 하라는 의미일까. 날이 급격이 어두워지자 집에서 코코아를 내려먹자고 꼬셔 얼른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샤워를 마친 아이들은 머리 말리는 시간도 아까워 얼른 코코아를 얻어 먹으러 부엌에 왔다.


"이거 마시면서 영화나 볼까?"


엄마 입에서 '수학'이나 '영어'가 나올까 싶어 눈치를 보던 아이들은 '영화'라는 말에 환호하며 춤추고 난리를 부린다. 며칠 전 보다 만 '사운드오브뮤직'을 틀었다. 둘이 꼭 붙어 같이 노래도 부르고, 무서워 벌벌 떨기도 하고, 뽀뽀 장면에서는 서로 눈도 가려주면서 눈 오는 날 밤을 따뜻하게 즐겼다.

눈 오는 날 밤 영화 보기



그리고 오늘아침, 우리는 눈폭탄의 비밀을 알았다. 이번에도 뜨거워진 바다가 범인이었다. 얼마 전엔 동해 오징어를 북극으로 쫓아내더니 이번엔 차가운 공기와 만나 엄청난 수증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2024년 11월 29일 금요일 어린이 조선일보 1면
2024년 11월 29일 금요일 어린이 조선일보 1면

올해 길었던 더위가 갑자기 많은 눈을 내리게 하는 범인이 될 줄은 몰랐죠.



뜨거워진 바다는 길어진 여름 때문이고, 길어진 여름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지구 온난화는 우리 인간들이 매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온갖 일회용품과 전기, 가스, 물의 결과다. 그렇다. 바다가 뜨거워진 건 우리 잘못이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우리는 이틀 동안의 눈폭탄을 몸으로 눈으로 즐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린이들이 즐겼다. 어린이는 뜨거워진 바다에 아무런 책임이 없으니 즐겨 마땅하다 여긴 것일까. 역시 신은 공평하다.


거의 매일을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꽂은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가까운 길도 두 다리를 움직이는 대신 자동차 바퀴를 굴리고, 뒤처리 고민 없이 배달을 시켜 먹던 우리 어른들은 이번 눈으로 꽤나 고생들을 했다. 새 하얗게 뒤덮여 버린 도로 위에 갇혀 30분이면 갈 거리를 2시간이 걸려 도착하고, 전기를 쓸 수 없어 집 밖을 나와야 했고, 멈춰버린 새벽배송에 곤란한 아침을 보내기도 했다. 이만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미끄러운 길 위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고들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틀이었다.


호된 벌을 받고도 우린 또 커피숍에 가서 테이크아웃잔을 받아 오고, 이제 배달을 시킬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한다. 발 빠르게 염화칼슘을 도로에 뿌려주는 시의 노력에 차를 굴리는 일도 문제없다. 사실 나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인 카페 생각이 간절했다. 걷기엔 미끄러우니 차를 타고 가려했고, 나는 머그잔에 커피를 마시더라도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인 남편 커피를 테이크아웃을 해 올 요량이었다. 추운 날씨 덕에 귀차니즘이 발동해 그냥 집에서 노트북을 열고, 이 글을 쓰기를 참 잘했다 싶다.





다음엔 어떤 벌이 내려질까. 아이들이 커가는 게 두렵다. 어른에게만 내려졌던 벌, 어린이에게는 관대했던 그 벌을 이제 우리 아이들이 받게 될까 봐서다. 매번 나에게 지구가 아프니 차 타지 말고, 걸어가자고 예쁘게 말하는 아이들이지만, 일상을 들여다보면 이미 아이들도 나의 일회용품 씀씀이에 깊게 물들어 있다. 손에 뭐가 묻으면 물티슈를 북북 뽑아 쓰고, (재빨리 물티슈를 대령하는 건 나다.) 엄마 따라 커피숍에 가면 자기들도 코코아 한 잔씩을 테이크아웃한다. 오늘 시키면 내일 아침 배송이 온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다음 날 아침메뉴를 전 날 저녁 주문하자고 한다. 자체 배송가방을 이용하긴 하지만,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포장이 과한 건 어쩔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결제버튼을 누르는 건 역시 나다.


이렇게 가다간 어른에게 내려지는 자연의 벌을 미래의 어른인 우리 아이들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지금의 아이들 잘못일까. 지금의 어른인 우리가 바꿔야 한다. 별 노력을 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말을 하기엔 부끄럽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지구를 낫게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얼마 전 플라스틱 재사용 비율이 9%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보고 맥이 빠진 적이 있다. 나름 꼼꼼하게 분리수거를 해왔는데, 이 마저 그냥 태워지거나 땅 속에 묻혀 버리고 있었다니. 비닐 사용을 줄여보고자 에코백을 샀는데, 버려지는 에코백이 더 문제란다. 예쁜 텀블러를 구매하고 쓰던 텀블러를 버렸는데 텀블러를 소각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이 플라스틱 컵보다 무려 10배 이상 많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린워싱'이라는 말이 있다. 위장 환경주의라는 이 말은 환경보호를 앞세워 에코백이나 텀블러를 사은품으로 많이 나눠주는 만큼 더 치명적인 쓰레기를 늘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노력도 제대로 알고 해야 진짜 노력이다. 미약할지라도 지금 어른들이 진짜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개인의 노력이 단체의 노력으로 단체의 노력이 기업의 노력으로 기업의 노력이 한 나라의 노력으로 이어진다면 아마 미래의 어른들은 안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20년 후 눈 오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영화 '투모로우'의 장면이 현실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지금처럼 눈이 오면 밖으로 뛰어나가 하루종일 폭신한 눈을 즐기는 모습이 미래에는 옛날 이야기에나 존재하는 얘기가 될지 모른다. 집에서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영화를 즐기기는커녕 담요를 둘둘 메고 겨우 마련해 둔 캔 음식을 먹으며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썰매를 끌고 나가는 건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을지도. 20년 전 즐겼던 눈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어른이 우리 아이들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꼭 범인을 잡았으면 좋겠다. 너무 큰 범인이어서 다 같이 잡아야 하는데 다들 너무 바빠서 돌아서면 범인의 존재를 잊고만다. 매일매일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노력들이 너무 작아서 티가 안 난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뜨거운 바다를 꼭 잡길 바라는 맘으로 오늘도 작은 노력을 보태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