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긴긴밤 - 루리

[병아리 인사이트]

by 어금니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버지들이었다. 나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나의 아버지들은 모두 이름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들,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이다.

- 책 '긴긴밤' 중


뚝뚝, 눈물을 흘리며 독서를 끝마쳤다.

독서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어떠한 분명한 세상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 감은 눈 앞에 그려지는 그들의 모습 때문에 눈을 떠 보이는 이 세상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그들 중 그 누구를 떠올려도 마음이 너무 아려온다. 코뿔소를 키운 코끼리들을 떠올려도, 뿔이 뭉툭한 코뿔소 노든을 떠올려도, 다정하고 순수한 앙가부를, 치쿠의 오른쪽을 지키던 윔보를, 알이 든 양동이를 입에 꽉 문 치쿠를 떠올려도. 그리고 끝내 자신의 바다에 도착해 모든 걸 이해하게 된 펭귄을 떠올려도.

내가 다 미안했고, 내가 더 화가 났다.


마주한 그들의 세상은 너무 잔인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가슴이 터지지 않는다는 게 억울할 정도로 분노가 일렁인다. 그들은 상처투성이었다. 악몽이 두려워 잠들지 못하는 긴긴밤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하지만 그들의 세상은 사랑이 연속된다.

사랑의 연대.

코끼리들이 코뿔소에게, 코뿔소가 코뿔소에게, 펭귄이 펭귄에게, 펭귄이 알에게, 코뿔소가 펭귄에게, 코뿔소가 알에게. 그 모든 사랑을 듬뿍 머금은 알은 상처투성이지만 행복한 펭귄이 되어 자신의 바다로 간다. 그 펭귄 역시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훌륭한 펭귄이 될 것이다. 끝없는 사랑의 흐름이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살렸다. 그들은 서로에게 희망이고 살아야하는 이유였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기적을 이루었다.


우리 삶 역시 다르지 않다.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이 기적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감사하기로 한다. 내 삶에 충만하기로 한다. 사랑을 주저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로 한다.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햇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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