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우디앨런 2017 작품
<원더 휠>은 환상 속에서 머물고 싶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처음 영화가 열릴 때 우리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쨍쨍한 햇빛과 푸른 해변 앞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깊은 심도 속에서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린 그렇게 잠시나마 '낭만의 섬 코니아일랜드'를 즐길 준비를 한다.
원더 휠은 캐릭터를 통하여 주제를 파악하는 데 흥미로운 작품이다.
누군가에게 '코니아일랜드'는 완벽한 휴양지지만 지니(케이트윈슬렛)에겐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찬, 그림자가 짙게 진 낭만 없는 공간이다. 그런 지니를 낭만의 섬으로 이끌어 줄 사람은 옆에 있는 남편이 아닌 인명구조원 미키다.
지니와 미키 인물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배우, 작가를 꿈꾸는 예술가이며 희곡을 사랑하며 언젠가 이곳에서 벗어나 보라보라 섬 혹은 대학원을 가길 꿈꾼다. 즉 그들은 현실이 아닌 언젠가 현실이 될 환상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꽤나 잔혹하다. 지니는 매일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알코올중독자였던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간다. 가끔씩 연극배우 시절 액세서리를 아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지니에게 탈출구이자 환상은 미키다. 그렇다면 미키의 환상은 누구일까?
아쉽게도 미키에게 환상적인 존재는 지니 남편의 전 부인의 딸 '캐롤리나'다. (참으로 지저분한 설정이다) 갱스터 남편에게 도망쳐 나온 캐롤리나는 지니와 다르게 어리고 지니와 다르게 현실에 찌들지 않았으며 지니와 다르게 스펙터클한 삶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예술가(?) 미키에겐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여기서 우수꽝스러운 건 지니와 미키의 사이를 모르는 캐롤리나가 지니에게 연애 상담을 한다는 것이다. 유일한 환상이 깨져버리자 지니는 굉장히 히스테릭한 캐릭터로 변질된다. 매일 캐롤리나에게 화를 내며 "떠나거나 멕시코로 가버려."라는 말을 일삼고 후반부에는 찾아온 갱스터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캐롤리나를 도와주지 않는 참사를 벌이게 만든다.
그렇게 캐롤리나는 극 중 자신의 삶을 '비현실적이죠.'라고 했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지게 된다.
자 그럼 남은 환상은 무엇일까?
없다. 갈 곳 잃은 눈빛과 "빨래해야 돼요."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지니만 있을 뿐이다.
사실 지니는 전 남편과 결혼했을 때 바람피운 이력이 있다. 그 당시 상처를 줬다는 생각은 그녀를 매일매일 죄책감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 그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상하게도 그녀를 욕할 수 없다. 안정감과 일상 속에서 계속해서 그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망하고 기대하는, 그리고 좌절하는 순환을 지니를 통해 보여준다. 가장 낭만적으로 보였던 해변이 가장 쓸쓸한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장소로 쓰이는 것 또한 이런 주제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겠다.
"난 줄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인데 줄 수 없어요."라는 지니의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우디 앨런은 이러한 모습을 인정하는 동시에 지니의 아들을 통해 다소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코니아일랜드 해변' '지니' '믹키'가 지닌 환상과 '집' '양아빠'가 지닌 현실의 간극은 좀처럼 줄이기 어려워 보인다. 영화 내내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니고 사는 모든 캐릭터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들의 불장난은 우리가 좇고 있는 환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는 우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렇기에 여기서 벗어나 실재로 회기 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빨리해야 돼요."라고 '집'에서 말하는 지니와 '해변'에서 불을 지르는 아들의 장면이 붙어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욕망에 대해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쓸쓸하고도 낭만적인 코니아일랜드가 좋았다. 역겨운 감독과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