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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요 Jul 29. 2017

감독의 대한 사사로운 생각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2017 작품






'샤이 홍상수'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불륜남의 예술은 그다지 불쾌하지 않게 다가왔다.  정확히는 감흥을 못느꼈다. 이미 우리는 영화,드라마를 통하여 수없이 불륜이 미화된 컨텐츠를 보며 즐거워했고 이병헌은 연기를 잘하고 할리우드에서 인정받는다는 이유로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기를 원한다. 밴애플랙은 좋은 감독과 제작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성추문은 소리없이 묻혀버렸다. 우린 이미 법적인 잣대를 들이밀기엔 마비된 상태이다. 결국 각자의 도덕적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싫고 좋음을 판단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왜 유독 홍상수 김민희를 미워할까. 





사회를 나누는 여러 방법을 볼 때 남성적 사회와 여성적 사회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과거 남성,여성의 역할 기준에 따라 학자들이 나눈 용어입니다.) 보통 여성적사회는 도전,성공적인 것보다 포용,안정을 추구하는 사회라고 한다. 또한 새로운것에 도전하고 받아들이기 보다 사회에서 튀지않고 개성보단 비슷하게 사는 걸 중요시 여기는 사회다. 우리나라는 여성적 사회로 구분되는데 이러한 부분이 홍상수 김민희 사건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받아드리는 요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회견에서 당당히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밝히는 그들의 모습, 손을 마주잡고 레드카펫을 거니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불륜 커플은 깊은 산속, 그것도 차안에서 은밀하고 죄스럽게 있는 모습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들은 (대중의 돈을 먹고 사는 예술가임에도)니네가 뭐라든 난 내길을 간다. 마인드로 일관한다. 불륜을 옹호하자는게 아니다. (나도 불륜은 싫다.) 정당하고 멋진 일임에도, 의견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나의 색을 지워버리던 나, 또 누군가들에겐 이러한 당당한 태도가 좀 새롭게 다가온다. 어쩌면 불륜 그 자체의 대한 분노보다 잘못한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당하지 못한 태도로 살던 나 자신들의 대한 분노가 크게 터져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나만 그럴수도 있다. 



그들의 영화는 당당함을 넘어서 뻔뻔하다. 영화 이야기로 잠깐 넘어가자면 유부남 감독과 바람핀 여배우는 외국으로 떠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 혹은 자신을 동경하는 사람들 속에 쌓여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이런 말들을 주고 받는다.

"결혼을 원해서 한건 아니야. 필요해서 한거지."

"세상은 다 가짜야. 사랑 할 자격있는 사람이 어딨어." 이말은 마치 우리에게 너희가 과연 우리의 사랑에 운운할 자격이 있냐고 반문하는 것 같다.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유난히 김민희는 이곳에서 위선,가짜에 대해 논하는데 정작 그녀는 자신에게 아첨하는 위선적인 사람들 속에 쌓여 기분 좋아하는 위선적인 사람이다. 결국 자신도 위선적인 사람임을, 부족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구성이다. 결국 홍상수는 자신의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던건 아닐까? 



홍상수는 쾌락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인듯 하다.

프로이드는 법,윤리에 관련된 현실 원칙과 식욕 성욕 같이 기본적인 욕구를 중요시 여기는 쾌락 원칙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쾌락원칙을 억누르는 이유는 그것이 잘못됐다기보다 현실원칙이 더 우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그것들은 우리의 무의식에 내재된거라 가끔씩 튀어나오기도 하고 그것을 꿈에서 표출하기도한다. 쾌락, 무의식의 세계를 합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것을 꿈이라고 하는데 아마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홍상수의 영화가 좀 더 간편하게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영화에서 김민희의 식욕 설정이 괜히 나온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기존 우리의 원칙에서 벗어난 결정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던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홍상수는 가장 매력적인 감독, 김민희는 최고의 여배우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 없다. 다만 불륜이라는 꼬리표가 뒤에 붙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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