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시스턴트 생활 1

타이베이 그림여행기

by 두더지손
후미진 타이베이 골목길에서 그림 그리던 시절


사람 일은 모르는거다. 누가 알았겠어?

내가 그의 어시스턴트가 될 줄.


비구름이 엄습하는, 내가 도착한 이래 쭉 흐리던, 여행이 중반으로 접어드는 어느 날의 정오였다. 숙소 거실에 나, 저번 밤 모임 이후로 가벼운 인사는 나누는 SNS 인플루언서 춴 그리고 묵묵한 한 장기 투숙객이 있었다.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신맛이 그리워 김치 라면을 끓이던 중이었다.

춴은 슬며시 다가와 음식을 권했다. 그것은 놀랄만한 맛의 치즈케이크로, 어딘가 또 맛집을 다녀온 모양이다. 치즈케이크를 맛있게 쩝쩝대고 있는데 춴이 말했다. 자기를 도와줄 수 있냐는 거다.

당연히 예스.

그러고보니 식탁 위에 늘 놓여있던 작은 삼각대가 하나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허술한 모양새를 보고 어느 칠칠맞은 여행자가 흘리고 갔겠거니 여겼으나 춴의 물건이었다. 그는 치즈케이크를 접시 위에 올리더니 본인이 먹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달라고 했다. 휴대전화 액정이 깨져 셀프카메라 모드를 못 쓴단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나는 사뭇 진지하게 촬영에 임했다. 춴은 천연덕스럽게 카메라 렌즈 앞에 음식을 들이밀며 말했다.


“오늘은 이걸 먹어보겠어. 이 맛있는 자태를 보라지. 쩝쩝. 이건 말이야··· . ”


그는 케이크를 상큼한 표정으로 아주 먹음직스럽게 먹었다. 사실 대만어로 말해서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그런 내용일 거로 추측한다.

평소 테라스에서 줄담배를 물던 염세적인 분위기의 그 춴이 아니었다. 그는 나의 어시스트를 마음에 들어 했고 우리는 연이어 I-MEI(내가 사랑하는 이메이!)에서 나온 밀크티 시음도 촬영했다. 그는 촬영이 흡족했는지 잠시 쉬자마자 전자레인지에서 막 꺼낸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편의점표 큼직한 햄 두 덩이가 올라간 주먹밥 먹방도 찍었다. 춴이 동영상을 SNS에 올리면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달며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는 모양이었다.

망고여관 테라스에서, 춴
내 사랑 이메이

나는 좀처럼 해본 적 없는 동영상 촬영에 의외의 재미를 느꼈고 이 모든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그가 마시라고 준 밀크티는 맛이나 향, 색, 가격 모든 게 우수해 몹시 흡족했다. 소파 위에 널브러진 내게 춴은 타이베이에서 어디를 가봤냐고 물었다.

사실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간 곳이 겨우 마오콩* 과 크고 작은 서점 몇 군데밖에 없었다. 늘 그림 그린답시고 동네 골목만 헤매고 다녔으니··· .

춴은 본인과 지룽** 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기차로 30분이면 가는 곳이라며. 기차? 전철을 말하는 건가?

나는 무조건 예스.

대만인 친구가 어딜 가자고 하는데 거기가 어딘지 몰라도 당연히 가야지. 우리는 오후 4시에 숙소에서 만나 출발하기로 했다. 약속이 잡힌 후 나는 서둘러 오늘의 드로잉 목적지인 타이베이 식물원으로 향했다. 어서 그림을 그리고 돌아와야 이번 여행에서 생긴 첫 약속에 늦지 않기 때문이다.


* 차 재배로 유명한 타이베이 외곽에 자리한 산간 마을

** 남부의 가오슝과 비견되는 대만 북부의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무역 항구도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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