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밤, 비는 내리고 우리는

타이베이 그림여행기

by 두더지손


출발 전 타이베이


완화역. 우리는 재빠르게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지룽으로 갈 수 있나 보다.


춴과의 동행은 독특한 점이 있었다. 우선 그와 나, 둘 다 영어가 매우 서투르다는 점. 그래서 대화가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서로에 대해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 대화 없이 각자 볼일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춴은 끊임없이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 또는 메시지 주고받기. 나는 시시때때로 수첩에 낙서 끄적이기 또는 주변 두리번거리기.

나는 여기에서 하는 행동들이 대부분 서투른 이방인이고 가는 목적지마다 초행이니, 이 여행의 주도권을 춴에게 주었다.

말없이 춴의 행동을 보고 다음 일을 짐작하거나 그의 행동이 마치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길 잠자코 기다렸다. 평소의 나와는 무척 달랐지만 이 또한 의사소통의 한 방식이기에 전혀 불편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춴의 행동 패턴을 파악한 후에는 이 방식이 편하기까지 했다.

사실 지룽이란 곳에 왜 가는지도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다. 몇 마디 영어 단어로 유추하는 우리의 대화는 오히려 정확한 사실을 헝클어뜨렸기 때문이다.


그와의 동행은 이상하게도 흥미로웠다.






지룽행 기차 안에서 그린 드로잉들


기차를 한번 갈아타 지룽역에 다다랗다.

새까만 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차역 플랫폼은 지붕이 있으나 마나 빗발이 마구 쳐들어와 우산을 써야 할 정도였다. 출발 전 춴은 지룽은 늘 비가 온다고 말했었다. 진짜 그렇다.

표를 끊고 나오는데 같이 나오던 춴이 안 보였다. 앞뒤로 행인들이 빼곡해 놓쳤나? 하며 두리번거리니 이내 그가 보였다.

춴은 내게 작은 기차표를 한 장 내밀었다. 나는 이미 개찰구에 내고 나와서 없는 표인데 가지라고 했다. 이미 한국에선 사라진 형태(뒷면에 마그네틱 선이 하나 있는)의 귀여운 표라 기차 안에서 유심히 보는 걸 춴이 봤나 보다. 본인은 내가 못 본 새 표를 내지 않는 어떤 방법으로 개찰구를 통과한 것 같다.


춴이 쥐여준 기차표

사선으로 내리는 비를 뚫고 성큼성큼 춴을 따라 걸어갔다. 지룽은 항구도시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바다 쪽이 아닌 인파가 북적북적한 저잣거리 방향으로 향했다.

이제서야 예상이 됐다. 오늘의 먹방을 찍으러 왔구나.


<다음 주 월요일 마지막 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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