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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Aug 11. 2020

청두, 첫번째 이야기 :티베트로 가는 첫번째 관문도시

 시안에서 청두로 가는 기차 안


 새벽의 정적과 깊은 삼림(森林), 그리고 광활한 대륙의 심장부를 뚫고 수 천 명의 중국인들을 실은 육중한 기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청두역에 가까워져 갔다.

 내가 청두 기차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2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그 전날 저녁 시안에서부터 장장 17시간을 달려 나는 티베트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 도시이자 촉나라의 수도인 쓰촨성 성도 청두에 도착한 것이었다. 

 나는 12시에 기차역사 앞에서 앞으로 나의 티베트 여행에 도움을 줄 지인인 미스터 킴이라는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기차가 조금 연착 된 탓에 조금은 조급한 마음으로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달려 나갔다. 동시에 꼬리에 꼬리를 문 구렁이와 같은 거대한 열차는 엄청난 인파를 플렛폼 밖으로 토해내었고, 나는 그 거대한 인파의 흐름에 맞추어 시원하고 따사로운 11월의 청두의 공기를 흡입하며 기차역의 출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이상한 사람 미스터 킴과의 첫 만남


 청두의 공기는 늦가을답지 않게 상쾌했다. 항상 안개와 구름만 가득한 날씨인 줄 알았던 청두는 젊은 여행자인 나에게 따스한 햇살을 선사했다. 마치 환영의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청두에서 만난 햇살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유를 향한 갈망에 가득 차 있던 나의 정신과 영혼에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런 아름다운 햇살을 즐기며 내가 출구에서 미스터 김을 찾고 있을 때, 저 멀리 햇살을 등지고 온화한 미소와 함께 허름한 검은색 점퍼를 입은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순간 나는 그가 친구의 소개로 메일로만 연락을 했던 현지 한국인 헬퍼 미스터 킴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한 침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친구를 통해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신세 좀 지겠습니다.”


 내가 그에게 이렇게 첫 인사를 한 후,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도 내 손을 꽉 잡으며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 채 반가운 얼굴로 자신을 소개했다.


 “어서오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Mr. 김이라고 합니다. 편안하게 김 선생이라고 불러주시면 좋겠네요. 먼저 안개와 판다와 미인의 도시, 청두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제 전화상으로 듣기로는 한국에서부터 티베트의 라싸까지 여행을 하신다구요? 허허, 참으로 부러운 일입니다. 부러운 일이고 말구요. 젊은 날의 여행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지요. 저 역시도 젊은 날에는 그랬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이곳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이렇게 먼 곳까지 기차를 타고 오신다고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편안하고 밝은 얼굴을 한 김 선생이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행의 설렘과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던 나는 그의 환한 미소를 보자 타국에 와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이 남자의 삶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가 알려 줄 티베트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를 만난 그 자리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주변을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초리와 소음을 피하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일단 갑시다. 여기는 움직이는 사람도 많고, 조금 복잡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 집에 가서 나누도록 하고, 먼저 버스 정류장으로 가도록 합시다."

 "아, 네 선생님. 그렇게 하시죠."


 나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킨 채 가만히 김 선생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황급히 나를 앞서 역사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신선했던 청두의 첫 인상


 청두의 역사 앞은 나의 고향 한국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수많은 인파로 인해 지극히 서민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쌀자루 같은 가방이 터지도록 물건을 넣어 어깨에 메고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 처음으로 청두를 방문한 여행자들에게 숙소와 택시를 알선하는 중개인,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머나먼 고향을 찾은 대학생 혹은 청두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학생들, 방금 촌에서 올라와 물건을 팔러 온 듯한 농부, 깔끔하고 멋스러운 넥타이에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택시를 기다리는 신사, 혼란스럽게 밀어닥치는 택시, 자가용과 트럭, 호루라기를 시끄럽게 불어대며 교통정리를 하려고 애를 쓰는 젊은 교통공안까지, 나는 커다란 역사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각양각색의 중국인들의 단편적인 모습 속에서 16억이 어울려 이런 커다란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얼굴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질서도 없이 역사 앞을 빠르게 지나 다녔으며 그 시끄럽고 빠른 언어의 음색과 억양에 역사 앞은 더욱 복잡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김 선생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바싹 붙어서 걸었다.


 복잡한 역사 앞에서 내가 잠깐 관찰한 김 선생의 모습은 이랬다. 키는 그리 작지도 크지도 않은 중간 정도였고, 피부는 햇볕을 잘 못 받았던 탓인지 검게 타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건조해 보였다. 또한 오랜 중국 생활 때문이었는지 입고 있던 옷들은 거의 다 헤어져 있었고, 머리는 짧은 더벅머리에다가 하얀 운동화의 굽은 이미 많이 닳아 있었다. 처음 본 그의 전체적인 모습은 마치 중국의 뛰어난 교육과정을 마치고 어느 산골 마을에서 살다가 막 도시로 다시 내려 온 교양이 있으면서도 성실한 농부와도 같았다. 


 혼자서 이러한 나름의 판단과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의 뒤를 따라 복잡한 역사 앞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나는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 1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타국에 와서 조금씩 사라져가는 소수민족의 문화를 지키려고 애를 쓰는 한국 국적의 한 지식인의 허름한 옷차림에 가려진 어떤 고결한 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왜 이런 타국에 와서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소수민족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가 하는 의구심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가슴 속으로 파고 든 그의 연구 정신 혹은 희생정신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감탄 내지 감동이었다. 그 빛은 마치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역사(驛舍) 앞을 따뜻하게 내리쬐는 밝은 햇살 같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몰랐다. 그러나 그와 함께 있는 동안,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동안,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티베트로 떠나기 바로 전 날 내가 그에게 느꼈던 존경과 감동과 깨달음을 통해 그 빛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버스 정류장은 기차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약 한 시간 정도를 이동했다. 버스 안은 여느 중국의 대도시처럼 많은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복잡한 소음과 중국 사람들 특유의 시큼하면서도 퀘퀘한 냄새가 나의 청각과 후각을 자극했다.

  김 선생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는 시종일관 말이 없었다. 그런 그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서 지켜보던 나는 아마도 지난 10년 간 중국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던 일들을 혼자서 조용히 곱씹어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홀로 타국에 나와 산다는 것의 근원적인 외로움 같은 것들도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아직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니 나의 예상이 맞았는지 아니면 틀렸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청두의 풍경을 보고 나 역시도 지난 시간동안 수없이 돌아다녔던 중국이라는 넓은 대륙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질서한 듯 보이나 그 가운데 흘러넘치는 인간미가 존재하고 느린 듯 보이나 언제나 유쾌한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로운 중국인들, 또한 지금까지 보았던 수없이 아름답고 광활한 땅들의 기억들과 처음 중국 대륙을 밟았던 중국에 대한 막연하고도 미묘한 끌림, 그리고 그들을 향한 이유 없는 동경과 극심한 빈부의 격차에서부터 나온 안타까운 마음의 뒤섞임 같은 것들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 갔다. 순간 나는 지난 시간동안 중국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을 정처없이 돌아다녔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말았다. 과연 무엇이 나의 지난 젊음을 그렇게도 강력하게 이곳으로 계속 이끌었던 것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쉽사리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에 푹 빠져 있을 때 즈음에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버스에서 내렸다. 거리에는 활기찬 쓰촨 사람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로 가득했고, 하늘에는 눈이 부실 정도의 밝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늦가을이었지만 오히려 상쾌함마저 들었다. 김 선생의 말에 따르면 오늘은 평소의 청두에 자주 없는 맑은 날씨라고 했다. (실제로 쓰촨성을 비롯한 청두는 일년 중 절반 이상이 안개나 구름에 가려져 있다)



 청두에 사는 외국인, 미스터 킴의 가족


 우리는 대로를 벗어나 작은 길 가의 자리 잡은 조그맣고 허름한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그의 집은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도 조금 더 걸어가야 하는 제일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건물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김 선생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집은 이 아파트 6층입니다. 보통 꼭대기 층의 집값이 그나마 다른 층에 비해 싼 편이라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요. 자, 올라가시죠." 


 나는 그를 따라 좁은 중국식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한국에 살다온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아주 낡은 아파트의 계단이었다. 

 

 기차역에서부터 집까지 오는 짧은 시간동안 나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김 선생이 말을 아끼는 모습 때문이기도 했고, 나 역시도 초면서 티베트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그에게 너무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에 나는 언제나 검소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을 느끼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열심히 영위해 나가는 김 선생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그의 삶의 태도를 드러내 보여 주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더라도 자신의 일과 현재의 삶에 굉장한 만족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적어도 당시의 나는 그렇지 않았었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의 속에서 갑자기 나의 지나온 삶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불만족스러운 태도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남들이 입고 다니는 멋지고 좋은 옷을 가지고 싶었던 욕심, 안정된 직업과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지위를 따라가려는 욕망, 내 마음대로 삶을 선택하여 살아왔던 순간들, 그리고 하루하루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쉽게 불평불만을 품고 살았던 수많은 기억들이 6층 꼭대기 층에 있는 김 선생의 집을 오르는 동안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기꺼이 맞아주는 그의 태도에 편안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 때 갑자기 김 선생은 마치 자신의 집이 꼭대기 층에 있는 것이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집도 높은데다가 엘리베이터도 없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올라오게 해서 말입니다.”

 겸손한 중년의 김 선생은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계속 고개를 돌려 우리들이 높은 계단을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잘 올라오고 있는지를 살폈다. 겉치레가 아닌 진심이 느껴지는 그 말을 듣고, 나는 순간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내가 다시 그 일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것은 나의 불완전한 영혼의 소리가 김 선생의 거울같이 맑은 영혼에 부딪혀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 반향이었고, 그것이 나의 영혼을 울린 것이었다.) 도대체 나와 같은 사람에게 겉으로는 순박하고 남루하지만, 속으로는 그 마음씨가 따뜻한 이 사람이 무엇이 미안하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 미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지 않고 표현 할 줄 아는 그 순수함과 배려심이 오히려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김 선생에게 나의 마음속에 있던 생각을 그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나의 부끄러움과 아집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슴은 말하고 있었으나 머리는 그것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윽고 6층 꼭대기 층에 다다르자, 김 선생의 부인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언제나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따뜻한 법이었다.


 “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 먼 길 오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이리로 들어오세요.” 김 선생의 부인이 친절한 미소로 문을 열고 나와 나의 배낭을 받아주며 반갑게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나는 일부러 조금 밝은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부인의 모습은 김 선생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차분함과 조용함이 깃들어 있었지만, 조금은 힘이 없어 지친 모습이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는 그 모습 속에서 쉽지 않은 타국 생활의 현실을 꿋꿋이 이겨 내려는 한 여인의 강한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국을 떠나 1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두 명의 아이를 기르며(미스터킴에게는 중국에서 태어난 두 명의 자녀가 있었다) 낯선 환경에서 한 가정을 꾸려 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만은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렴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했으나 그것은 여성이 아닌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여자 아이의 어머니였기에 어쩌면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작은 거실 뒤 쪽의 나무문을 가리키며 우리들에게 말했다. "일단은 저기 작은 방에 가서 짐을 풀고 쉬도록 해요. 원래 우리 작은 애가 쓰던 방인데, 요즘은 큰 애랑 같이 잠을 자거든요. 그래서 이방을 머무시는 동안 사용하시면 될 꺼에요. 그리고 긴 기차 여행을 하느라 잘 못 씻었을 것 같은데, 샤워는 저기 욕실을 사용하시면 되요." 그녀는 현관문 바로 옆에 난 작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인의 따뜻한 배려로 우리는 먼저 작은 방에 짐을 풀고, 급하게 샤워를 한 후에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김 선생은 내가 샤워를 끝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데리고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도착하자마자 좀 쉬고 싶기도 하겠지만,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제가 티베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려면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아 조금은 빡빡하게 시간을 써야할 것 같은데 괜찮겠죠?“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저야 그러면 더욱 좋지요." 


 “그럼, 오늘은 함께 가볼 곳이 있어요. 식사는 거기 가서 하도록 합시다. 따라오세요." 그는 조금은 바쁜 듯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문을 나섰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청두의 밝고 환한 오후의 햇살을 가르며 김 선생의 뒤를 따라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섰다. 나는 식사도 하기 전에 나를 데리고 어디로 그리 급히 가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그에게 섣불리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 미스터 킴은 분명 이 젊은 여행자에게, 특별히 티베트를 여행하고 싶어 하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어떤 비밀을 꼭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아무 말 없이 나를 데리고 청두의 거리를 나섰으리라. 


‘과연 그는 무엇을 보여 주려고 저리 서두르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의문을 품은 채 잔잔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청두의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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