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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Aug 24. 2020

청두, 두번째 이야기 : 장족 거리에서

처음으로 본 티베트인


 

 고결함.


 이 세상의 고결한 꿈과 소망은 반드시 실현된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는 그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청두의 낯선 거리에서 만난 티베트인


 김 선생의 집에서 나와 큰 도로로 나와 보니 김 선생의 집은 제갈공명의 사당이 모셔진 '우호우츠武侯祠' 건너편에 있는 '서남민족대학교西南民族大学'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큰길을 빠져나와 다시 작은 골목 몇 개를 돌고 나니 곧바로 가로수가 뒤덮인 곧은 대로 하나가 나왔다. 그러자 멀리 길 건너편에서 ‘서남 민족대학’이라는 간판이 걸린 작은 문이 보였다. 나는 처음에 이곳이 중국의 여느 대학가의 후미진 골목이겠거니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거리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하게도 이 거리는 일반적인 중국의 거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지난 10여 년 간의 중국 여행을 통해 중국 내부에서도 지역과 도시의 미미한 차이가 가져다주는 분위기를 민감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거리에서 느껴지는 일반적인 중국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이 이질감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티베트의 기운이었다. 나는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 예감이 확신으로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래 이것은 분명 티베트의 기운이다.’ 내가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는 그 거리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니, 여기저기 중국의 한족과는 생김새가 확연히 다른 몇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 사람이 붉은색 라마 승복을 입고 머리를 삭발한 채 부리부리한 눈매로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이윽고 내 눈을 깊이 한 번 바라보고는 조용히 지나가 버렸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라마승과의 조우로 인해 나는 흥분과 동시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김 선생님. 저들은... 혹시?" 나는 내 앞으로 조용히 지나가는 중년의 라마승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김 선생은 자신이 우리를 청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이곳으로 데리고 나온 이유를 이 한 마디에 설명하려는 듯 뒤돌아보며 나에게 대답했다.


 "바로 티베트인이지요."


 김 선생의 대답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무런 말도 없이 길모퉁이에서 갑작스레 맞닥뜨린 티베트인들의 모습이 내가 청두에 도착하기 전까지 생각했던 그 티베트인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도시의 뒷골목에서 바라본 티베트인들은 무겁고 깊은 눈빛에 아주 조용했고, 무엇인가에 억압당한 듯 조심스레 길을 걸었다.


 “혹시 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으신가요...?” 내가 선뜻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해하자 그는 곧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알려 드리도록 하죠. 일단 식당으로 가서 식사부터 합시다. 배가 많이 고프시죠? 자, 따라오세요. 이쪽입니다.” 그는 나를 앞서 장족 거리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청두의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바로 그 사람들이 티베트 땅의 원래 주인인 '장족藏族'이었다. 이들은 내가 이번 중국 여행에서 처음으로 직접 목격한 진짜 티베트인들이었다.


 물론 나는 예전에 중국의 칭하이 성과 간쑤 성을 여행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장족을 몇 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 장족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때 본 장족의 모습과 지금 본 장족의 분위기는 너무나 달랐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목적지가 티베트이기 때문에 예전에 보았던 장족들이 좀 더 색다르게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방금 전에 눈이 마주친 장족을 생각하며 김 선생의 뒤를 따라 조용히 장족 거리를 걸었다. 곧 이해되지 않는 묘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나는 계속 길을 걸으며 장족 거리에 있는 다른 티베트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깊은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또다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장족의 눈빛은 어떤 깊은 상념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또  어떤 장족은 세상과 단절된 듯한 신비한 순수함과 때 묻지 않은 거룩함이 함께 공존하는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김 선생은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이곳이 바로 청두의 유일한 장족 거리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무리 제가 두 분께 말로 설명해봤자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 못하지요. 어떻습니까? 이제 훨씬 더 티베트에 가까워졌다는 기분이 들지 않나요?"

 나는 김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상념에 잠겼다. 


 ‘왜 이곳 청두의 티베트인들은 이리도 조용하고, 다른 중국인들과는 다른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일까? 또 이들은 어떻게 티베트가 아닌, 중국 쓰촨 성의 수도인 청두에 와서 살게 되었는가?’ 


 내가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김 선생은 나를 데리고 장족 거리 한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방금 전에 내가 느낀 이 신비한 감정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묘사해야 할까. 나는 아직까지도 거기에 맞는 적절한 단어나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김 선생이 또 어떤 이야기를 이어갈 것인가 하는 생각에 그의 얼굴을 주목했다. 



 인민폐 5원짜리 국수를 먹으며 나눈 대화

 

 그는 우리 세 사람을 위해 인민폐 5원짜리 중국식 현지 고기 라면을 주문하고는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로 길 건너편에 보이는 대학이 중국에서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설립한 민족대학 중에 하나인 서남 민족대학입니다.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진 대학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소수민족 문화를 급속히 한족화시키는 선두(先頭) 역할을 하는 곳이지요.”  


 김 선생은 나에게 이 장족 거리의 끝에 자리 잡은 서남 민족대학 후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실제로 민족 대학이라는 기관은 중국에 산재한 56개의 우수한 소수민족 학생을 대상으로 중국 공산당의 교육 철학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치며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높은 취업률을 보장해주는 중국 사회진출을 위한 발판이라 할 수 있지요.” 

 김 선생이 서남 민족대학의 후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자 때 마침 두꺼운 대학 강의 노트를 손에 든 젊은 장족 대학생 몇몇이 후문을 나서고 있었다. 

 “저길 보세요.” 그는 장족 대학생 무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옷을 입은 모양이나, 헤어스타일, 그리고 얼굴 생김새가 언뜻 보기에는 한족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생김새가 조금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길 건너편 쪽에서 우리가 있는 식당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장족 대학생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장족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장족 대학생들의 모습이 내 기억을 거슬러 올라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내 머릿속에서 마치 10년 전에 헤어져버린 오랜 친구처럼 되살아났다. 



 10년 전, 란죠우의 서북 민족대학에서 나는 대학교 교정을 바쁘게 걷고 있었다. 아마도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곧이어 저 멀리서 한 중국인 친구가 반가운 얼굴을 한 채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눈을 감고 그가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실루엣은 선명했지만 오히려 그 얼굴이 흐렸다. 나는 김 선생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가도 계속 그의 얼굴을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순간, 번쩍하고는 그가 누구였는지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내가 란죠우에서 처음으로 사귄 중국인 친구였다. 당시의 나는 중국어를 잘 몰랐다. 그리고 소수민족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었다. 단지 여행을 통해 그 학교에서 잠깐 만난 친구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생각이 난 사실인데, 그 친구의 얼굴은 다른 중국인과는 조금 달랐다. 조금은 부리부리한 눈, 짙은 초콜릿 빛 피부색, 거친 머리숱, 그리고 넓고 커다란 어깨 등등, 아주 오래전에 헤어졌던 친구이기는 했지만, 그의 얼굴은 점점 또렷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 친구가 내 앞에 서자, 그의 얼굴이 확실히 기억나 버렸다. 나는 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 선생과 친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스라치게 놀란 모습을 감추어야 했다. 왜냐하면 8년 전에 란죠우의 서북 민족대학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그 친구도 바로 장족이었던 것이다. 나는 왜 그 사실이 10년이 지나고 난 지금, 청두의 장족 거리에 와서야 다시 생각난 것인지 나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어떤 심리학 서적을 보니, 인간은 종종 이런 기억의 역행 현상을 경험한다고 들었다. 그것은 무의식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과거의 기억이 어느 순간에 더 정확하게 떠올라 흐릿했던 과거의 기억 속 편린들을 한 순간에 명확한 그림으로 다시 재구성시켜 버리는 그런 현상이다. 그 현상이 순간 나에게 일어났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의 오래된 장족 친구의 모습은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다시 눈을 크게 뜨고서 온 신경을 곤두세워 주변에 보이는 모든 영상들을 흡수하듯 면밀히 살펴보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조금씩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흥분은 곧바로 ‘여기에는 분명 또 다른 중요한 무엇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과 함께 일종의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내가 장족 거리 주변을 더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나 새로운 것들이 눈이 더 많이 띄었다. 거리 도처의 음식점과 상가는 전부 장족과 관련된 물품들을 팔고 있었고, 길거리의 대부분의 간판들이 중국어와 장족어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장족들의 모습이 점차적으로 많아졌다. 나는 마치 벌써 티베트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곧이어 나는 나의 시선을 티베트 거리에서부터 우리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작은 식당의 테이블로 옮겨 놓게 되었다.



 우리가 티베트인들의 장족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조금 허기가 져있던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중국식 고기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드디어 김 선생은 나에게 어떤 결심을 한 듯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배도 채웠고 식사도 마쳤으니 티베트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요?"

 김 선생은 내가 미리 물어보지도 않은 질문을, 그러나 내가 더욱 궁금해하는 질문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과 그 답을 이야기할 가장 적절한 타이밍, 즉 나의 가슴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뜨겁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시점까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수년간 타국에서 살아오면서 소수민족을 가르치면서 터득한 예리한 감각이었다. 나는 방금 전 나 자신이 보았던 기억의 편린과 조금 더 큰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지게 된 뜨거운 가슴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김 선생의 입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를 무척이나 기다렸다.


 "사실 지난 일 년의 시간 동안 저는 구이저우 성의 소수민족에 관한 일이 끝나고 나면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러한 방향과 대상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한 가지 마음이 제 가슴을 다시금 뛰게 만들더군요. 그것은 바로 구이저우 성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다음 목표로 장족을 위해 한 번 일해 보리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외국인이 거의 들어가지 못하는 위험한 곳이기는 해도 가슴이 시키는 일을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인생의 진리를 거스를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작년부터 이미 장족어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이 근처에 집을 구해둔 것입니다. 아무래도 티베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 청두에서 먼저 많은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렇게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김 선생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나의 얼굴 속에 일종의 환희가 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잃어버린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향한 열정과 확신 같은 것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김 선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동안 나는 그에게서 처음 역사 앞에서 보았던 바로 그 빛을 또다시 보게 되었다. 아마도 그 빛은 새로운 땅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한데 어우러진 김 선생, 그 자신만의 꿈이자, 그 꿈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열정 혹은 헌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빛이 김 선생에게 삶에 대한 무한한 평화와 환희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것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만의 꿈을 포기하고, 놓아버린 나로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고, 감히 입에도 담지 못할 만큼 평화로운 빛을, 나는 중국의 서쪽 변방인 청두의 후미진 골목에서 단돈 5원짜리 라면 한 그릇을 먹으며 확고한 인생의 신념을 가진 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김 선생을 통해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김 선생이 하는 말을 가슴이 떨리도록 집중해서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티베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침, 저도 요 며칠간은 다행히 시간이 비어서 청두로 오신다는 이야기와 티베트에 관해 알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저로서는 그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저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장족들에 대해 좀 더 빨리,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곧 쓰촨 성과 티베트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아마도 이런 정보들이 아주 유용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가 고맙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거나 예상하는 모습을 뛰어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인생의 행로에서 한 번 만나기란 그리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 선생과의 짧지만 긴장감 있고 유익한 대화를 통해 이러한 호기(好期)를 얻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김 선생은 내게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정리할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으려는 듯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자고 말했다. 

 “또 어디 다른 곳을 방문하는 건가요?” 나는 호기심과 기대감, 혹은 일종의 불안감(이러한 불안감은 김 선생의 삶의 모습에 비추어진 나 자신의 모습의 초라함과 부끄러움에서부터 기인한 감정이었으며, 나 역시도 그러한 삶의 태도와 확신을 반드시 가져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불안감이었다.)을 느끼며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자, 청두에 도착하자마자 조금은 피곤하실 테지만, 오늘은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같이 가 볼 곳이 있습니다. 일어나죠! 아마 지금 출발하면 그리 늦지는 않을 것 같군요."


 그는 곧바로 장족 거리를 빠져나와 나를 데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미로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청두의 대로를 달려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는 버스 안에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마도 우리를 데리고 다음 장소로 갔을 때 할 말을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고,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다시 자신의 가슴을 울리던 그 뜨거움을 곱씹어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티베트 거리에서 김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버스 안에서 바라본 청두의 거리는 이미 내게 전혀 새로운 땅, 낯선 이국, 더욱이 티베트의 향수와 신비를 가져다주는 신비한 통로가 되어 있었다. 그 신비와 환희에 푹 빠져 있을 때, 버스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어느 공원에서 우리를 내려다 주었다.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 나는 또다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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