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땅
최소한의 가구와 몇 벌의 옷, 그리고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다짐하며 항상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인 <전쟁과 평화>, <까르마죠프씨네 형제들>, <유리알 유희>와 같은 고전 작품들이 쌓인 책상이 있는 작은 방, 그곳이 내가 서른이 되기 전 혼자서 사는 공간이었다.
이미 짙은 가을의 낙엽들이 바람에 흩날려 땅으로 떨어지며 다양한 패턴의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었다. 먼동이 트는 아침 창가에 새하얀 서리가 맺히는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즈음에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땅이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중에 하나인 중국령(領), 서장자치구의 동 티베트 고원으로 기나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여행을 떠나 생소한 길 위에 서다 보니 나는 도보 여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어디 자신의 계획대로 되는 법이겠는가? 이러한 뒤틀림과 어긋남이 새로운 만남과 낯선 길을 내어 주는 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이자 매력이 아닐까. 그러나 실상을 말하자면 내가 도보 여행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티베트라는 길이 나를 그곳으로 불렀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내 자신에게 무언가 여러모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럴 때 사람들이 선택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바로 여행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를 잠시 떠나 좀 더 새롭고 멋진 세상을 찾아 짐을 꾸리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그런 설렘과 변화를 원하기에 여행을 선택하는 것이리라.
어쨌든 홀로 있는 시간 동안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만 막막한 상황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나는 가벼운 배낭 하나만 메고서 이곳이 아닌 어떤 곳이든 자유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여행이라는 것이 삶의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나에게 어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지금까지 너무나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나는 그 열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서른을 앞두고 한국을 떠나 좀 더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감과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휴지(休止)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이전부터 항상 꿈꿔왔던 자유롭고 특별한 여행을 위해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과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인가? 그리고 나는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나 스스로의 생각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이곳만 아니라면 세상 어디라도 좋으니 일단은 떠나자 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이왕 여행을 떠날 바에야 세상에서 가장 먼 곳, 내가 예전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땅, 지금이 아니면 결코 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곳으로 가보자!’
그곳이 바로 세계의 지붕이자, 신이 허락지 않으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인 히말라야의 티베트 고원이었다.
내가 세상의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굳이 히말라야를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중국의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중국에서 유일하게 가보지 못한 지역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땅인 시장자치구의 티베트 고원 지역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티베트 땅을 밟아보리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꿈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미국으로의 유학길이 좌절되면서 인생의 길을 잃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상과 단절된 티베트 고원이 내 삶의 새로운 방향과 깨달음을 던져 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어쨌든 내가 처음에 여행의 목적지를 티베트로 선택했던 이유는 단지 이 두 가지뿐이었다.
나는 먼저 아주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 티베트 여행의 시작을 앞두고 대학의 도서관과 인터넷을 통해 티베트와 히말라야 지역에 관한 자료를 모아 보기로 했다. 항상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지리를 조금이라도 익혀두는 것이 나의 습관 중 하나였다. 내가 티베트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대학 도서관의 책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은 대략적으로 이러한 것들이었다.
‘티베트라는 땅의 지리적 경계는 북쪽으로는 칭하이 성의 꺼얼무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에베레스트 산을 비롯한 고원의 만년설의 전설을 간직한 히말라야 고봉들을 품은 네팔과 부탄의 영역까지이고, 동으로는 쓰촨 성의 삼림지대부터 시작해 서쪽으로는 서북부 인도 파키스탄과 맞닿은 중국의 접경지대까지이다.
중국에서는 티베트를 서장자치구(西藏自治区), 티베트인을 장족(藏族)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고대에서는 창족(羌族)과 융(戎)의 영토였다. 당나라와 송나라 때는 토번(吐蕃)이라는 통일 왕국을 이루었다. 원(元) 나라 때는 선정원(宣政院)에 직속되었고, 청(清) 나라 때는 전장(前藏)·후장(后藏)·객목(喀木)·아리(阿里) 4개 부(部)로 나뉘었으며, 1663년(강희 2년)부터 티베트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1951년 중국의 종주권과 티베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였고, 1959년의 민주화 개혁운동을 거쳐 1965년 9월 9일 정식으로 자치구가 성립되었다. 면적은 120여만㎢로 중국에서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성(大省)이며 인구는 약 300만 명이다. (2010년 기준)
장족은 서장자치구 총인구의 약 94%를 차지하며, 중국 전체 장족 인구의 약 45%를 차지한다. 이들은 짱 파오[藏袍]와 니마오 [呢帽]를 전통복장으로 착용하고 수유차[酥油茶]와 쌀보리로 만든 미숫가루의 일종인 짬바[糌粑]를 즐겨 먹는다. 종교는 라마교라고도 부르는 토착신앙인 티베트 불교를 주로 믿으며, 승려 인구만 5만 명에 가깝다. 주로 반농 목축을 하며 살아가며 현재는 티베트 고원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티베트의 중심도시는 라싸로서 현재 중국의 서장자치구의 성도이다. 라싸로 들어가는 육로 길은 크게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길은 네팔에서 라싸로 차를 타고 넘어가는 방법, (두 번째부터는 전부 중국에서 들어가는 길이다.) 두 번째 길은 '칭하이 성青海省'에서 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길이고, 세 번째 길은 '윈난 성云南省'에서 214번 국도를 따라 차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제일 멀고 험한 길인 쓰촨 성에서부터 317번과 318번 국도를 따라 들어가는 단 하나의 길이다...(후략)’
그렇게 인터넷과 여러 서적을 통해 모은 티베트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찾던 중 유독 나의 눈에 띄는 내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중국의 서남부 지역의 쓰촨 성에서부터 서장자치구의 성도인 라싸까지 연결된 단 하나의 길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단 하나의 길’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게 던져준 의미는 실로 적지 않았다. 유일하다는 것은 마치 내게 그것이 풀리지 않는 인생길의 대안이자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던져 주었다. 그래서 나는 쓰촨 성에서 라싸도 들어가는 그 유일한 길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 길의 이름은 중국어로 ‘천장 공로川藏公路’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길을 쉽게 말해 ‘하늘의 길’이라고 했다.
천장 공로에 대한 내용을 좀 더 알아보니, 천장 공로는 넓은 티베트 땅 중에서도 현재 중국 영으로 분류되어 있는 쓰촨 성의 청두에서부터 시작해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서장자치구의 성도인 라싸까지 이르는 약 2000km가 조금 넘는 단 하나뿐인 길인 317번과 318번 국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는 이러한 정보를 알아낸 직후 곧바로 천장 공로를 통해 라싸로 들어갈 계획을 세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그 길의 대략적인 위치와 방향들을 지도에서 찾아보았고, 여러 블로그와 카페글, 혹은 중국 신문이나 웨이보微博를 통해 그 길에 대한 정보와 사진들을 모아보았다. 그러자 유익한 새로운 정보들이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 길을 통해 라싸로 들어간 사람이 워낙에 적었던 터라 대부분이 조금은 편파적이거나 지엽적인 내용들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히려 그러한 적은 정보와 사진 자료들이 주는 신비감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설렘에 끌려 진정으로 이 길을 통해 라싸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 생각이 내 가슴에 서서히 불을 지피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며칠 동안 천장 공로와 라싸에 대한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보았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천장 공로는 청두에서 시작해 신뚜치아오新都桥에서 천장 북로와 천장 남로로 나뉘어 있다. 천장 공로를 통해 라싸로 가려면 북로든 남로든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무수한 대설산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세차고 급하게 흐르는 무수한 강을 건너야 하며 지진, 토사, 흘러내리는 빙하, 늪지대 등 다양한 지형의 길을 지나쳐야만 한다. 또한 이 길은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과 높은 산줄기를 파내어 만든 길이 곳곳에 혼재(混在)하고 있기 때문에 그 험하기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또한 과거에는 외국인이 중국의 서장자치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외국인 여행 허가증’이라는 것이 필요하나 현재로서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민감 사항 때문에 허가증을 발급받기가 매우 까다롭고 어렵다. 그래서 만약 이 허가증조차 없으면 그 누구도 서장자치구에 발조차 들여놓을 수 없는 실정이다.
나는 내가 찾은 자료를 통해 서장자치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외국인 여행 허가증이 있어야 하고 현재로서는 이 허가증을 발급받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어떻게든 천장 공로를 통해 서장자치구와 가장 가까운 곳인 쓰촨 성의 접경도시인 빠탕巴塘까지는 어떻게든 한 번 가보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몇 주 동안 고심하며 이러한 정보를 종합해 가장 효율적인 여행 경로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예산을 짰다. 그리고 날씨와 교통편을 파악해 둔 후, 드디어 나는 야심 찬 여행 계획을 세워 티베트를 향해 길고 긴 여행길에 나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