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의 순간이었다.

두만강을 건너다

by 권즈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량강도 혜산시의 두만강 접경 지역,

20**년 12월 **일 새벽 3시 37분.


강 건너편에서 번쩍이는 불빛이 두 번 깜박였다. 그것이 신호였다. 선일은 낮에 두만강 변에서 아직 얼음이 얼지 않은 곳을 미리 봐 두었다. 얼음이 얼지는 않되 수심이 목이나 가슴까지만 깊은 곳이어야만 했다. 인민군의 야간 경계 근무가 가장 취약한 시간대는 근무 교대 후 가장 피로한 시간대인 새벽 두 시에서 네 시 사이라는 정보도 미리 전해 들었다.

해가 지고 새벽이 되기까지 기다린 선일과 선화는 비로소 강변에 인접한 인적이 드문 어두운 뒷골목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윽고 속옷 한 장만을 걸치고 검은색 비닐봉지에 벗은 옷을 조용히 담고 강변으로 향했다.

“오라버니. 나 무서운데 어찌하나? 누가 지르보는(지켜보는) 것 같소.”

“성화야. 일 없다(괜찮다). 염려 말고 이 오빠만 따라 오라.”

선일은 네 살 어린 여동생의 손을 한 손에 꼭 쥐고 몸을 낮추어 한 걸음씩 두만강으로 다가갔다.

그나마 강변에 접한 작은 언덕 뒤편에 키가 큰 갈대와 작은 나무들이 두 사람의 야윈 몸을 가려주었다. 다행히 강둑을 다니며 순찰을 도는 군관의 모습은 없었다.

먼저 선일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강물에 발을 담갔다. 발끝에서부터 전해오는 냉기는 차라리 고통이라고 해야 할 만큼 차가웠다. 그 냉기는 마치 선일과 선화가 살아내었던 지난날의 삶처럼 고통스럽고 차가웠다.

“윽!” 순간적인 고통에 선일은 한 손으로 입을 막고 간신히 물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강물에 발을 담근 순간, 선일은 자신이 죽음의 기로에 서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더 이상 뒤돌아 설 수 없는 사선의 끝이 등 뒤에 있고 자유를 가져다주는 차가운 강물의 수위는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두려움은 두려움 속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커지는 것이지 막상 그 두려움 속으로 발을 담그고 난 선일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미치도록 물이 차갑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차피 굶어 죽나 총 맞아 죽나 똑같이 죽는 거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10여 미터 안팎인 강의 중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목 위에까지 물이 차올랐다. 발 밑에 움푹 팬 구덩이를 밟은 것이다. 순간, 머리를 깨뜨릴 것 같은 냉기가 온몸을 찌르고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선일은 중심을 잃고 물살에 휩쓸려 내려갈 뻔하다가 옷을 넣어둔 검은 비닐봉지가 부표 역할을 한 덕에 겨우 중심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죽음과 삶이 또 한 번 휘청거렸다.

그는 갑자기 거기에서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 정도 깊이면 선화가 건너기 힘들 것인데...’

시퍼런 날을 세운 얼음물이 선일의 온몸을 계속적으로 휘갈겼다. 너무 차갑고 고통스러워서 폐와 심장이 쪼그라져 붙어버릴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선일은 선화가 다가올 때까지 그곳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곧 선일은 오른손을 저으며 선화에게 건너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선화는 선일과는 달리 주저하며 강을 건너지 못했다. 선일은 선화의 눈을 향해 무언의 메시지를 외쳤다.

‘선화야. 우리 더 이상 초점(시간)이 그리 없다. 어여 건너와라! 염려 말고.’

선화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달도 뜨지 않은 깊은 새벽에 살을 째는 듯한 얼음물 속에서 손을 맞잡고 죽음의 강을 건넜다.


그리고 곧바로 중국 영의 303번 국도에 세워진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탔다. 선일과 선화는 극심한 추위와 공포로 인해 몸을 심하게 떨었다. 지구 상의 그 어떤 사람이 그 어떤 민족이 이러한 공포와 압박감과 혹한을 경험해 보았을까?


나는 선일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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