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새끼 곰

탈북민 선일과의 첫 만남

by 권즈

<자네 나를 좀 도와주어야겠네>


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은 시작하고 있었다. 피터 선생님은 6년 만에 뜬금없이 내게 메일을 보내 마치 며칠 전에 헤어진 친구에게 말하듯 편안하고도 짧게 자신의 용건과 부탁만을 언급하고는 황급히 글을 끝맺었다. 나는 짧지만 간결한 정보가 담긴 메일의 내용을 읽고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메일의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보았다.


「곤명으로 가는 기차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의 열매가 곧 한국으로 간다네. 나이는 올해로 20살이고 남자일세. 이름은 여기에서 아직 언급할 수는 없지만 곧 자네에게 연락이 갈 걸세. 새로운 가지에 접붙임을 하려면 접목하는 수고가 필요한 법이지. 난 여기에서 아직 할 일이 많다네. 자네 혹시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있나? 열매라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네. 수확을 하려면 조만간 누군가가 자네에게 연락을 할 때에 그가 알려주는 곳으로 찾아가 보게. 모든 것은 자네 선택이지 나의 강요는 아닐세. 그럼 또 보자고.」


처음에 나는 열매는 뭐고 또 접목이나 수확은 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또한 그것을 그렇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다른 또래에 비해 졸업도 늦었고 취업을 위해 그리 많은 것을 준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남의 사정을 챙겨줄 만한 그럴 정신적, 감정적 여유조차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점점 들수록 가혹한 세상은 혼자 살아가기를 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 한 구석 저 밑바닥에는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유대감과 동질성에 호소하는 어떤 양심의 밝은 불꽃이 아직은 빛나고 있음을 난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며칠 후 내게 걸려온 무명의 전화를 손에 쥔 채 나는 그렇게나 망설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 양심의 밝은 빛이 승리해 그다음에 이어질 나의 삶은 크나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전화를 받았다.


어떤 낯설고도 친절한 젊은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피터 선생님의 이름을 대고 나에게 피터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간단히 용건만 말하고는 주소를 하나 불러줄 테니 받아 적으라고 했다. 주소지에 적힌 곳은 서울 근교의 신도시 거주 계획에 의해 몇 해 전에 건설된 주공아파트 단지였다. 그곳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네였다.

용건은 간단했다.

우리 기관을 통해 한국에 정착하게 된 새터민(그들은 탈북자들을 이렇게 불렀다. 그리고 앞으로 탈북자들을 만나면 나에게도 이렇게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난 탈북자나 새터민이나 그게 무슨 차이인지 또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곁에서 잘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새로운 휴대폰을 사거나 새로운 주민등록증 발급을 하거나 혹은 은해 통장 등을 만들 때 옆에서 도와주는 그런 일인 것 같았다.

나는 순간 ‘이봐요. 난 지금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이런 뒤치다꺼리를 할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다고요.’라는 말을 전화통에다 대고 내뱉을 뻔했다. 다행히 내가 이런 말을 하기 전에 그 사람은 자신의 용건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마치 나를 이런 일에 이미 준비되어 있는 사람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오래전 이긴 하지만 곤명에서 피터 선생님을 만났을 당시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여행 중이었고 모험을 항상 기다리고 있는 피터팬 같았었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그것은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타인의 영역이 아닌 내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나만의 마지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졸업을 앞두자 그런 생각은 아무런 실속도 없는 철부지들의 망상으로만 치부하고 말았던 것 같다.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럽고 쪽팔렸다.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까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피터팬이 되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주소지에 적힌 아파트를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것도 다섯 번이나 끈질기게.


그러자 곧 어두운 실내를 뚫고 한 녀석이 얼굴을 내밀었다. 마치 겨울잠을 깨고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민 새끼 곰처럼 말이다. 그 새끼 곰이 바로 선일이었다.



“누구시오?”


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선일이는 강한 조선말을 그대로 풍기며 내게 물었다.

“그게... 저... 피터 선생님 소개로 왔어요. 미리 연락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나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어색하게 내 소개를 해버렸다. 그것도 이름을 소개하는 것조차 잊고 있을 정도의 어색함으로. 그러자 선일이는 잠깐 밖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곧 다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선일이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을 보고 이유 없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나올 때까지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아파트 복도에 서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어색하던지 차라리 초인종을 누르지 말 걸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것이 나와 선일이의 어색하면서도 달갑지 않은 첫 만남이었다.

몇 분 후, 그 녀석은 후줄근한 후드 티 하나에 색 바랜 청바지에 하얀 운동화를 신고 다시 모습을 나타내었다. 어딘지 모르게 세상 구석구석을 경계하는 듯 한 눈빛, 햇볕에 그을린 것인지 아님 추운 겨울바람 탓인지 검붉게 녹이 쓴 것 같은 얼굴, 왜소하지만 조금은 살이 오른 듯한 체구.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눈에 거슬렸다.


나는 선일이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그 동네에 있는 조그만 커피 가게로 들어갔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무엇을 주문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성일이에게는 코코아 한 잔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정식으로 서로에 대해 소개를 했다.


주로 말하는 쪽은 나였다. 선일이는 마치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는지 아님 누군가로부터 말하기를 감시당하고 있는 것인지 좀체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안 그래도 시간을 쪼개 이 녀석에게 투자하고 있는데 말조차 하지 않으려 하니 속에서 답답함과 짜증이 조금씩 일어났지만 나에게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고 계속 바닥만 두리번거리는 저 어색한 새터민에게 초면에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첫 만남 때 선일이가 응시했던 그 바닥의 끝과 깊이는 한국에서 30년을 살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고통과 두려움과 아픔의 크기였던 것 같다.


첫 만남은 주로 내가 어떻게 피터 선생님을 만났으며 나이는 몇 살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학교는 어디에 다니며 전공은 무엇이며 앞으로 몇 개월간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최대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30분을 나 혼자 떠들고 나니 둘 사이에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졌고, 곧 카페의 음악 소리와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 내용까지 환하게 들릴 정도의 어색한 침묵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쪽지에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고는 혹시나 급한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선일이는 아직 연락 가능한 전화기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럼 며칠 뒤에 휴대폰을 만들러 가자는 약속을 하고는 급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났다.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무뚝뚝하던 새끼 곰과 같았던 선일은 일주일에 일 년씩 자라 버린 곰처럼 말도 많아지고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아마도 거기엔 나의 선한 양심과 좋은 인상이 큰 몫을 한 것 같았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생활에 필요한 서류들과 생활필수품을 장만했고 서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이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면서 선일이는 조심스럽게 나를 형이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왔다. 나는 당연히 그러라고 했다. 나는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불러줬으면 싶었다. 그리고 그 형이라는 말이 이 녀석에게는 그렇게도 따스한 말이었는지를 나는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선일이가 궁금했던 한국 생활에 대한 수십만 가지의 질문에 대해 답해 주기만 했지 정작 내가 궁금했던 질문을 하지 못했다. 아니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아직도 북한에서의 생활과 탈북 길의 끔찍한 스트레스로 인해 고통받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궁금했다. 선일이는 왜, 그리고 어떻게 북한을 탈출할 수 있었는지가 말이다.


따뜻한 바람이 가시고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기 시작한 날, 나는 기어이 묻고야 말았다.


"있잖아... 선일아. 한국까지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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