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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Sep 10. 2020

캉딩, 두번째 이야기 :도보 여행자들을 만나다.

여행은 유쾌하게 인생은 진지하게


 

라싸로 가는 길목 어느 숙소 앞이었다 @쏠파파


 “라싸!”

 나는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첫날밤에 만난 재미있는 그들이 라싸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몸에 희열과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순조롭게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내가 한국인인 줄 전혀 몰랐단다. 내 까무잡잡한 외모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중국어 발음 때문에. 물론 곧 국적은 드러났고 더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라싸로 가는군.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로 말이야. 신기하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운이 따르니 앞으로 일이 더 잘 풀리려나보다. 어쨌든 상황을 좀 더 살펴봐야겠어.'


 "우리는 라싸까지 걸어서 간다네. 아주 위대한 일이자, 신성한 일이지." 검은색 중절모, 사각 무테안경에 짧은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앞으로 따거라 부르겠다)가 한편으로는 비장하게 또 한편으로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세상에나 라싸까지 걸어간다니!


 캉딩에서부터 라싸까지는 적어도 2000km가 훨씬 더 넘는 거리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아무리 진짜처럼 애기해도 믿기 힘든 상황에 오히려 그 거짓말이 워낙 어이가 없는 바람에 내가 그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그런 기분이었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도대체 이 추운 겨울에 어떻게 거기까지 걸어간단 말입니까!" 내가 핀잔을 주듯 되물었다.  


 "이봐, 젊은 친구. 자넨 세상사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가지고 있구먼.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예전에 한 노승이 전쟁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간 일이 있었지. 그때 사람들이 놀라서 그 노승에게 이렇게 물었지. '어떻게 그 나이에 그토록 험준한 히말라야를 아주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 노승이 뭐라고 말했는지 아나?" 그는 잠시 대답을 기다리다가,

 

 "그 노승은 이렇게 대답했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왔지요.'라고.  정말 어이가 없으면서도 맞는 말 같아 보이지 않나?”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우리도 그 노인네처럼 한 번 걸어가 보려고 하거든. 그 노인네보다야 내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도전해 봐야 적어도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거든."


 후회라... 그래 후회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나도 후회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의 서른의 삶의 끝까지 와서 말이다.


 나는 그의 자신감에 찬 말투와 조금은 허풍에 찬 포부를 듣고 있자니 속으로 ‘이 사람 다시 봐야겠는걸. 겉으로는 유쾌하고 장난스럽긴 해도 나름의 생각이 있는 사람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거를 중심으로 그들 여행 패거리들은 루딩에서부터 시작해 아주 긴 시간을 두고서 시짱의 성도인 라싸까지 도보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거리로 치면 약 1200km이고 단순 산술로 하루에 20km씩만 걸어도 60일이니까 족히 두 달은 걸린다)  그래서 이미 루딩에서부터 캉딩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걸쳐 그 계획을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자신들은 티베트의 주인인 장족은 아니지만 많은 장족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수개월에 걸쳐 걸어간 그 길을 자신들도 역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어서 가려고 한다고 했다. 따거는 비록 자신이 종교적 수행자는 아니지만 오체투지를 하는 수행자들의 정신에서 현대인들이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자 함께 있던 일행들도 그런 그의 의견에 암묵적인 동의를 표하는 듯했다.




 라싸라는 도시...

 그리고 그곳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이라. 나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는 이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안갯속에 가려진 내 삶의 이정표와 속도를 조금이나마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따거는 말했다.

 “이미 6명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지. 그리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여행길을 '순례의 길'라고 부르고 있다네. 그리고 우리들도 바로 어제저녁에서야 겨우 이곳 캉딩에 도착했거든. 그래서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앞으로의 여행의 계획을 세우고, 정비의 시간을 가질 걸세.”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으며, 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조금 뒤처진 나머지 일행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곧바로 계획한 대로 이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계획을 말하기 전에 먼저 정식으로 서로의 이름을 소개했다. 나는 따거의 이름을 들었지만 어려운 발음의 중국 이름보다는 따거(큰 형님이라는 뜻)라는 그러한 호칭이 더욱 맘에 들어 그냥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따거는 허점 많아 보이는 어수룩한 외모와 가벼운 말투와는 다르게 베이징에 본사를 둔 어느 유수한 국유 건설사에서 중직을 맡아 일을 하고 있었고, 현재는 잠시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물론 진실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지 뭐..) 아내와 9살짜리 딸아이 하나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이제야 겨우 사십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이었다. 그러한 외모와 실제 나이에 감탄하고 놀라라하고 있던 나에게 따거는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그래서 자네는 어디로 가려고 계획 중인가?"

 "처음에는 저도 무작정 라싸로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출발을 했었죠. 그런데...”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알고 보니 외국인이 지금 시기에 라싸로 들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에요."


 나는 미끼를 던진 낚시꾼처럼 말끝을 흐린 채 누구라도 자신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어주기를 내심 기대하며 말했다. 그러자 따거는 그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책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듯이 여유로운 미소를 띠우며 내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어주었다. 마치 누군가 미리 짜 놓은 드라마 각본처럼 말이다.


 “그런 문제라면 말일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친구.” 그는 이 말을 하며 곧바로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라싸로 가는 티켓이 필요했음) 의도된 친근함을 과시했다.


 “이 나라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말이지.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나라라구. 뭐랄까? 일종의 외국인을 위한 치외법권령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내게 다 방법이 있으니 나만 믿고 우리랑 같이 가는 게 어떤가? 응?” 이렇게 말하고는 그는 지갑에서 본인과 전혀 다른 신분증을 하나 꺼냈다.


 "그건 누구 신분증이죠?" 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중국에선 말이야. 우리 같은 여행광들은 이런 신분증쯤은 예비로 한 두 개 정도는 가지고 다닌다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말이지. 그렇다고 이게 가짜냐? 그렇지 않다는 말씀! 실제로 살아있고 존재하는 한 사람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주민등록증이니 걱정하지 말게.(이 말 역시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내가 예전에 공무원으로 일할 때 준비해 둔 거니깐. 어때? 안심이 되나?"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그걸 내게 내밀었다. 그 말은 곧 내가 그 신분증을 받아들이는 즉시 그 사람이 되라는 말이었다.  


 하기야 어차피 나도 중국말도 다 알아듣고 말도 하겠다, 여행 중에는 선글라스에, 모자를 푹 눌러쓴 데다가 얼굴까지 햇볕에 시커멓게 타 버리면 누가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볼 것인가. 나는 그 순간 중국인이 되었다. 누가 봐도 레알 중국 현지인.


결국 이렇게 된다. 진정한 현지화라고 들어봤니? @쏠파파


 따거는 두 눈을 가볍게 치켜세우며 이번에는 나에게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 혼자 다니는 것보다야 우리랑 함께 다니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나는 자네만 괜찮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동의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아쉬?”라고 말하면서 바로 옆에 있던 일행을 향해 고개를 돌려 동의를 유도했다. (어차피 이 친구는 결정권도 없었지만) 그러자 아쉬도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며 “당연하지! 저야 당연히 찬성이죠.”라고 엉겁결에 대답했다.


 저 자신감에 찬 태도에는 분명 누군가를 속이려 할 때 나타나는 표정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냥 라싸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나는 일단 애써 나의 속뜻을 감추고 고민하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을 안 해봤던 문제라서 지금 당장에 뭐라고 대답을 할 수는 없겠는데요.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라싸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건 사실이에요. 중국을 여행해 본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라싸라는 도시는 꼭 한 번쯤 가보기를 꿈꾸는 도시거든요."


 나의 의도된 희미한 대답에 따거는 비장의 카드라도 꺼내 든 듯이 마지막 제안을 던졌다.

 “그럼 이렇게 하지. 만약 자네가 우리 팀이랑 같이 라싸로 간다고 결심한다면 내가 책임지고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서장으로 들어가는 허가증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주지.”


 이 제안을 듣자마자 나는 ‘드디어 걸렸구나.’ 하는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는 곧바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따거가 이미 자신의 여행 계획 속에 새로운 한국 사람을 동행하면 얻게 되는 몇 가지 유익한 점을 미리 계산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에게 피해를 입힌다거나 불이익을 끼치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나 역시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국인이 혼자 가는 것보다야 이들의 도움을 받아 간다면 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라싸까지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고, 무엇보다도 이들과 함께 길을 떠난다면 앞으로의 여행길이 더 재미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나 자신의 예감을 믿고 행동해 보기로 했다.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때로는 냉철한 이성보다는 찰나의 예감이 인생의 방향을 좌우하는 법이다.

 “좋아요.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신다면야 제가 안 갈 이유도 없죠.”


 그들은 나의 마지막 선택으로 인해 이 여행이 점점 재미있어지려 하고 있다고 말하며 나를 환영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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