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대지 위를 걷는 것이다. 물 위가 아니라 바로 이 대지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 대지는 아름답다. 그대 역시 아름답다. 사람들에게 '평화가 함께하길'이라고 말하지 말라. 단지 매 순간 평화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라.
그리고 그대가 대지 위를 걸을 때, 반드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보라.
그것은 촉촉한 대지의 입술과 입맞춤하는 것이니,
발바닥 끝의 감촉에 집중하라.
그 부드럽고 따스한 흙의 감촉이 발바닥에서부터
온 전신에 전해질 때,
그대는 이 지구라는 별이 역동적인 몸부림으로 가득 찬 큰 생명
덩어리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영혼에는 발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발이 영혼의 입술이
되어 대지와의 깊은 입맞춤을 가능케 해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현대인들이 대지와 입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신발을
벗어 두었는가?
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갈 때보다 기차를 타고 갈 때에 비행기를 타고 갔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하늘과 맞닿은 흰 구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기차를 타고 갈 때 보다 버스를 타고 갈 때에 기차를 타고 갔을 때 미처 맡아보지 못한 길가에 심겨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버스를 타고 갈 때 보다 걸어서 갈 때에 버스를 타고 갈 때에 만날 수 없는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여행에서의 참된 발견을 원한다면 목적지까지 천천히 걸어서 가라.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한순간의 의미이며, 여행의 목적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적지를 향해 지나쳐 온 모든 과정 속에 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언제나 걸어 다닌다.
쓰촨 박물관에 다녀온 후 다시 김 선생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따뜻한 저녁상을 받고, 이런저런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나는 낯선 여행지에서 맞이한 청두의 차갑고 고요한 새벽 공기가 가져다주는 신선함과 신비함 때문에, 그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티베트 땅에 가까이 가기 위해 매우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고야 말았다. 세면을 하고 짐을 정리한 후, 본격적인 티베트 여행을 위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김 선생의 집을 나섰다.
지난밤, 김 선생과의 이야기가 깊어지면서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구체적인 여행 계획에 대해 김 선생에게 자연스럽게 조언을 구하게 되었다. 초행길에 오른 여행자보다는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정보에는 더 밝은 법이다. 나는 김 선생에게 청두에서부터 어떻게 해서라도 티베트의 라싸로 가고 싶으니 그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를 좀 알려 달라고 이야기했더니 김 선생은 한편으론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는, 또 한편으론 조금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티베트의 현지 사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티베트인과 중국 정부 간의 유혈 사태에 따른 티베트 자치구에 외국인 출입이 제한되었다고 들었어요. 원래 여행자는 티베트로 들어가는 허가증을 따로 발급받아야 하지만 그것도 지금의 현실상 확실치가 않아요. 그래서 올 해만 해도 라싸에 있던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허가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왔지요. 추방당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겁니다. 아마 티베트로 접근할수록 그런 분위기가 더욱 심해지고 민감해질 것입니다. 그래도 버스를 타고 쓰촨 성과 티베트의 변경인 빠탕까지는 별 탈 없이 갈 수 있으니 먼저 그곳까지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릴게요. 청두에서부터 티베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버스를 타고 8시간을 달려 고원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도시인 캉딩康定으로 가야 합니다. 캉딩은 저도 벌써 몇 번이나 다녀왔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캉딩은 해발이 거의 4000m에 가까운 티베트로 들어가는 318번 국도상의 첫 출발지이기 때문에 고산병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고 가야 할 겁니다. 그래서 만약 처음 그곳에 도착하고 나거든 며칠을 캉딩에서 쉬고 난 후에 다시 길을 나서는 것이 곧바로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먼저 여기에서 캉딩으로 가려면 저희 집 근처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하면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빠탕까지는 어떻게든 가실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저도 뭐라 장담을 해드릴 수가 없군요."
나는 티베트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나 외국인 출입금지란 말을 처음 접하고 걱정과 불안감을 조금 느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비록 시장자치구까지는 못 들어가게 될지라도 빠탕까지는 어떻게든 반드시 가보리라는 용기와 자신감이 갑자기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전 날 나는 이러한 계획과 결심을 세우고 난 후, 다음날 아침에 김 선생의 집을 나서려는 순간 김 선생의 부인이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곧 식탁에서 작은 가방에 담긴 김밥과 과일을 챙겨주셨다. 그녀는 티베트를 향해 길을 나서는 젊은 여행자를 위해 새벽부터 일찍이 일어나 한국식 김밥을 싸고 여러 신선한 과일들을 준비한 것이었다. 이제 곧 길 위에 서게 될 나는 김 선생 부인의 그 배려와 따뜻한 마음씨에서 뭔가 가슴이 먹먹해짐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그 작은 선물을 배낭 속에 조심스럽게 집어넣고 부인에게는 감사히 잘 먹겠다는 말을 남기고 김 선생의 집을 나섰다.
김 선생은 나를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친히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디 몸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축복을 빌어 주었다.
나는 그렇게 김 선생 가정의 도움과 관심 속에서 집을 나서 거의 정오가 다 되었을 때, ‘신난 먼新南门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두의 신난먼 시외버스정류장에는 쓰촨 성의 여러 지역으로 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터미널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내가 터미널 안에 유난히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다가 시계를 보고 그날이 토요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알고 보니 주말에는 청두에서 쓰촨 성의 여러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는 학생들과 도시의 노동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나는 매표소에서 30분 정도 줄을 서서 캉딩으로 가는 버스표를 사고 대합실에 앉아 어떻게 하면 라싸까지 갈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외국인이 허가증 없이 티베트로 들어가려고 시도한다면, 그것은 필시 위험한 일인 데다가 발각될 경우 엄청난 벌금과 함께 강제 추방될 것이 분명했다. 허가증을 발급하려니 현재 내가 가진 시간과 비용이 충분치 않은 데다가 그것도 현재로서는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기에 조금 고민이 되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도 어떤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 버스에 오르기 전에 일단 서장자치구로 들어가는 쓰촨 성의 가장 서쪽 지역인 빠탕巴塘까지는 어떻게든 가보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오후 한 시가 되자 버스에서 먹을 간단한 간식거리와 물 한 병을 사서는 캉딩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터미널은 실지로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고원으로의 여행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한기가 몰려온 듯 나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 말았다. 그러한 이상한 한기에 내가 몸을 떨고 있을 때, 버스는 이미 터미널을 빠져나간 후였다.
캉딩康定에서부터 해발은 4000m에 가깝게 높아졌다.
나는 처음부터 티베트의 라싸까지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법적 허가(티베트 여행자 허가서)를 발급받고 많은 비용을 들이면 외국인들에게 길을 열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서장자치구 내에서 잇달아 발생한 여러 유혈사태와 라마승들의 분신자살 사건으로 인해 지금은 그 어떤 외국인들의 출입을 불허한 상태였다. 따라서 우리는 쓰촨 성과 서장자치구의 경계지역인 빠탕巴塘까지만이라도 반드시 가보리라 생각하고 무작정 길을 떠나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새로운 길은 길 위에 먼저 서봐야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후 1시가 넘어 청두를 출발한 버스는 야안雅安, 루딩泸定을 지나 크고 작은 휴게소를 몇 번이나 들러 쉬다 가다를 반복한 끝에 무려 8시간이나 걸려 밤 9시 즈음에 캉딩 현의 작은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캉딩으로 가는 8시간 동안 시시각각 변화하는 티베트 고원의 초입의 풍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왜냐하면 높게 솟은 설산, 구불구불 산을 휘감는 길, 거침없이 흐르는 세찬 강, 하늘을 가릴 듯 빽빽하게 자란 원시림들이 지금껏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곧바로 오늘 하룻밤을 묵을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 주변에는 자신의 여관에서 쉬고 가라며 손짓하는 몇몇 호객꾼들이 보였다.
캉딩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느낀 것은 청두에서는 느끼지 못한 굉장히 추운 고원의 산 기운이었다. 12월의 청두의 기후는 그렇게 춥지 않은, 약간 서늘한 정도였기 때문에 분명 이곳의 공기가 내게는 더욱 춥게 느껴졌을 것이다. 곧 고원의 맑고 찬 공기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내 입에서는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곧장 미리 알아봐 둔 근처의 숙소를 찾아갔다. 이미 날도 어두워졌고 기온도 많이 내려갔기 때문에 어서 숙소로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오후 한 시에 버스를 타고 저녁 9시에 캉딩에 도착했으니 거의 8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는 좀체 경험할 수 없었던 긴 버스 여행에 피곤함을 느끼며 하루 종일 버스에 앉아 있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거의 1km 정도였다. 마침 같은 방향으로 가는 한 아주머니를 만나 함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옷차림이나 행색을 보니 이 동네에 사는 주민인 것 같았다. 나는 이곳이 초행길이라 숙소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중에 그 아주머니가 그 숙소의 위치를 알고 있다기에 우리는 조용히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조용히 길을 걸으며 어둠에 휩싸인 고원의 마을을 살펴보았다. 흐린 가로등 불빛 아래 길 옆으로는 험준한 산들이 둘러 싸여 있는 듯했고, 몇몇 허름한 건물들이 한기를 간직한 채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며 어두침침하게 보였다. 작은 마을의 늦은 밤 길거리의 풍경이란, 내겐 사뭇 낯설게만 느껴졌다. 곧바로 나는 직감적으로 이 마을에 사람이 그다지 많이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인기척이 드문 스산함이 느껴졌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잠시 멈추고 잠깐 동안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세상과 점차적으로 단절되어 가는 그런 기분 말이다.
“젊은이, 처음 여기 오면 조심해야 할 것이 많다오. 이런 고원은 처음이지?” 입김을 내뿜으며 바쁜 걸음을 가던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네. 전 이런 고원은 처음이에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춥군요.” 내가 아주머니에게 답했다.
“지금은 밤이라서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꽤 춥게 느껴질게 야.”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아주머니 그런데, 그 조심해야 한다는 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얼른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아 그거? 고산병이라고 혹시 들어봤나? 아마 한두 번 정도는 들어봤을 텐데. 그리고 이런 고원에 오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를 리가 있나?”
나는 아주머니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왜냐하면 예전에 고산병이라는 단어를 몇 번 들어서만 알고 있었지 그 병이 정확히 무엇인지 솔직히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사실은 고산병이라는 말을 몇 번 들어보기는 했지만, 단지 조심해야 한다고만 들어서요. 그렇게 심한 병인가요?”
아주머니는 내 말의 속뜻을 언뜻 알아차렸다는 듯 나에게 많은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아주머니는 처음으로 고원에 오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산병에 걸릴 위험이 많으니 항상 물을 많이 마시고 길을 걸을 때는 천천히 걸으라고 당부했다. 또한 처음 며칠 동안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고원에 사는 평범한 아주머니답지 않게 아주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 주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혈류량이 증가하고 혈속이 빨라져서 기압이 낮은 이곳 공기에 산소가 많지 않아 폐에서 그만큼 많은 양의 산소를 공급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쉽게 고산병에 걸린다고 했다. 일리가 있으면서도 놀라운 이유였다.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이 어찌 그것도 모르고 고원으로 여행을 왔느냐는 핀잔을 내비 취기보다는 고원에 첫발을 내디딘 한 이방인이 이제야 뭔가를 이해하겠다는 어리숙한 표정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숙소에서 지친 몸을 녹여줄 샤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곧바로 포기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아주머니가 말했다.
“저기 저 모퉁이 돌면 바로 그 숙소라네. 나는 집이 여기 바로 옆이니깐, 내 할 일은 다 한 것 같은데, 좋은 여행 되길 바라네 젊은이. 잘 가시게.”
그 인사를 끝으로 아주머니는 곧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주머니의 말처럼 길이 끝나가는 모퉁이 한쪽에 어두침침한 숙소가 나타났다. 길을 밝혀주던 가로등은 이미 저 멀리서부터 끊겨 있었고, 숙소 주위에 짙은 어두움과 스산함만이 감돌았다. 곧바로 무거운 적막감이 아무 말 없이 걷고 있던 나에게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