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거리의 노인
나는 일 때문에 자주 상하이를 간다.
그럴 때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홀로 잠을 청할 때면 자연스레 여행 캐리어에서 꺼내 놓은 톨스토이의 저작들을 집어 든다. 그렇게 습관처럼 잠자리에 들기 전 톨스토이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마치 그의 세계 속에 나의 정신이 녹아드는 느낌이다.
소위 이야기란, 그것을 단순한 이야기로만 받아들인다면 아무런 진리의 빛도 볼 수 없는 여러 사건의 진행 과정이 될 뿐이지만, 만약 그 속에 숨겨진 빛과 사랑의 흔적들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이야기를 넘어 삶이 될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보고 그 사람이 한 생애를 통해 깨달은 바를 듣고 있노라면 나의 삶 역시 한 권의 단편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든 짧은 만남은 단편으로만 남겠지만 그 짧은 만남이 지속된다면 수십 권의 책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장편이 되겠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이야기 속 미카엘은 이 질문의 답을 발견할 때마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단 세 번을 웃었다. 세몬의 아내가 헐벗은 자신에게 저녁을 내어주고 입을 옷을 주었을 때, 그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했다. 사람은 내부에는 사랑이 존재한다.
한 사나이가 찾아와 장화를 지어 달라고 했을 때 그는 장화 대신 슬리퍼를 지어 그의 죽음을 미리 보았고, 그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했다.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바로 자신의 죽음이다. 그 죽음의 때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만 안다.
엄마가 없는 쌍둥이를 키운 한 부인을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바로 '사랑'으로 산다.
로렌스 형제도 톨스토이도 루이스도 이 사실을 알았다. 사람의 내부에는 사랑이라는 것이-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랑 자체가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할 줄 아는 방법을 조금씩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존재하고 그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일을 끝내고 나는 상하이 외탄 거리 뒷골목에 위치한 어느 조용한 식당에서 혼자 저녁 식사를 했다. 어느 정도 밥을 다 먹고나서 나는 유리창 너머로 현란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인 어둑한 거리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누군가 내가 있는 창가로 다가오더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한 노인이었다. 한 손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잘 알 수 없는 누더기 자루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비닐에 싸인 빈 병과 PT 병을 들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식당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분명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나는 불현듯 톨스토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식탁 위에 남은 음식을 보았다.
또 다시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았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종업원을 불러 남은 음식을 싸 달라고 하니 바쁜 듯 못 들은 체하는 것 같았다. 순간 가슴이 미워져 오는 듯했다. 한 노인은 그날 먹을 것이 없어 저렇게 길가에 서서 식당 안을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모습과 바로 길 건너의 와이탄에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즐겁게 사진을 찍어대며 도시의 야경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대비되어 알 수 없는 울분과 안타까움이 솟아났다. 그것은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한 나의 아버지가 떠오른 것.
황급히 식당 문을 열고 나서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노인이 내게도 다가왔다. 나도 그 노인에게로 다가가 음식 봉지와 함께 직원 몰래 챙겨둔 젓가락을 건넸다. 그 노인은 나의 손을 꼭 잡으며 연신 고맙다고만 했다. 나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마냥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 노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완전하게 그분을 사랑하고자 갈급해야 합니다.
그것은 영원의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이 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을 지닌 사람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지닌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법을 깨달은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덕목을 연습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17세기의 로렌스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