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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Oct 23. 2021

캉딩, 마지막 이야기 : 도보 여행을 시작하다.

캉딩을 벗어나다

 


 도보여행의 첫날


 오전 9시, 우리는 높은 고원으로 끝없이 이어진 하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티베트 고원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고, 공기는 폐가 시리도록 시원하고 맑았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맑고 시원한 고원의 공기였던가. 항상 도시의 소음과 퀴퀴한 공해 속에 살다가 이렇듯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 속에 첫걸음을 내디디니 몸과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안에 누적된 인간사의 모든 더러운 것과 흐려진 것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청두에서부터 시작된 318번 국도는 캉딩의 크고 작은 마을들 주변으로 높이 솟은 고봉들 사이로 좁게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도로를 달리는 차와 부딪히지 않도록 도로변에 일자로 줄을 지어 등에는 등산가방과 침낭, 목에는 작은 수건을 두른 채 걸어갔다. 나 역시도 배낭에서 작은 수건 하나를 꺼내 이마와 목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길을 걸었다. 곧 내리쬐는 태양빛과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의 무게로 인해 숨이 차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 앞에 앞서 걸어가던 아쉬는 미처 손수건을 준비하지 못했던지 뒷목의 머리카락이 땀으로 흥건히 졌었는데도 마냥 땀을 흘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이봐, 아쉬. 내가 손수건이 하나 더 있는데, 빌려줄까? 안 그랬다간 자네가 라싸에 도착하기도 전에 길 위에서 땀으로 목욕이라도 할 분위긴데?" 나는 웃으며 거친 숨을 내쉬는 아쉬의 등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아쉬는 환하게 웃으며 나의 친절에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는 손수건을 받아 들고는 잠깐 손수건을 훑어보고는 머쓱한 듯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는 다시 나를 앞서 길을 걸었다. 나는 그런 모습에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앞뒤에 선 다른 일행들은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깨끗한 고원의 태양이 가져다주는 생기를 힘입어 쉴 새 없이 떠들고 웃으며 길을 걸었다.   



 도보의 첫 느낌


 처음으로 차동차나 열차가 아닌 직접 내 발로 밟아 본 티베트 땅의 느낌은 뭐랄까? 새롭고 신비로우며 신선했다. 마치 내가 살아 숨 쉬는 대지와 입맞춤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가는 가벼운 바람과도 같았다. 

 뒤돌아보니 그랬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듯 자유롭고 가볍게 땅을 밟아본 기억이 없다. 걷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편하고 빠른 현대의 여러 이동수단을 마다하고 가장 원시적인 이동수단이다. 또한 가장 시대 편향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러한 시대 편향적인 걷기를 통해 나는 쉴 틈 없이 달려온 나의 삶을 한 발짝 물러나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마지막으로 땅을 마주하며 직접 길을 걸어 본 적이 언제인지를 떠올려보았다. 아마 군대에서의 행군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무거운 군장을 메고 자발적이지도 않은 의무감에 휩싸인 채 나 자신의 한계와 싸웠던 전투적인 걷기, 사회에 나가서는 다시는 이런 미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며 이를 꽉 깨물며 걸었던 흐릿한 기억들, 그것이 나의 마지막 걷기였다.


 그 이후로 나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들어와 살면서 자연스럽게 더 빠르고 더 편안하고 더 멋진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추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자동차나 비행기, 혹은 더 빠른 휴대폰과 여러 기계 장비들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장 빠르게,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더 정확하게 얻는 것, 그것으로 주식을 하거나 부동산을 일구어 자산 증식에만 몰두한 인간들.


 과학 기술의 혁명이니, 문명의 진보니, IT 기술의 승리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그 속도의 경쟁에서 실제로 나는 잘 견뎌내지 못했던지 아니면 잘 맞지 않았던 지 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포장된 아스팔트를 뚫고 힘겹게 피어난 한 송이 꽃도 볼 수 없을 만큼 바쁘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이성적이나 가슴은 식어버린 냉철한 동물이 되어 자연과 세상이 인간과 하나 되는 일에는 모두들 등을 돌려버렸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제야 비로소 고요한 고원의 길 위에서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을 발견해가는 나를 돌아보니 나 역시도 그러한 무의식 속에서 살아왔다는 불편한 진실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향기 없고 생기 없는, 숨 쉬는 유기체 말이다. 그들은 바로 나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곳에서 진실한 땅을 밟으며 그러한 나 자신에 대한 후회를 발견했고, 다시금 길 위에 선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바꾸었던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자연이 인간을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깨달음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 길 위에서 앞으로 내가 살아내야만 하는 나만의 어떤 길을 찾아야만 한다.


  


 중국의 천장 공로


  여기에서 나는 우리가 끝없이 걸었던 318번 국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위험성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고자 한다. 318번 국도는 청두에서 시작해 시장의 라싸까지 이어진 촨장川藏공로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거의 2000km가 넘는 거리에 여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라싸까지 간다고 한다. 그러나 겨울에는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이곳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도 적을뿐더러 도보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캉딩의 숙소를 출발해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는 나는 그 어떤 사람도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단지 동 티베트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는 티베트인들이 전부였다.


  또한 천장 공로는 라싸로 가는 칭장青藏(칭하이 성에서 티베트로 가는 길) 공로, 운장云藏공로와는 달리 길이 가장 좁고 험하며, 높기로 소문난 길이다. 여름이면 계곡 위로 가파른 절벽을 깎아 만든 흙길 위로 폭우가 내리면 토사가 산 위에서부터 흘러내리고 심하면 차가 달리던 길이 무너져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간다고 한다. 길은 거의 대부분이 왕복 2차선이므로 큰 화물차 한 대가 지나가면 반대편에서 오는 화물차가 조심스럽게 속도를 줄이고 접근해야만 한다. 길이 이토록 좁기 때문에 도보로 갈 때에는 무조건 한 줄로 길게 늘어져서 걸어야 하고 혹시나 길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서 다가오는 차에 치일 위험이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도 잘 모른 채 처음에는 그들을 따라 무작정 길을 걸어가기로 했던 것이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걸어갔다. 등에 짊어진 짐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한 손에는 수통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사탕이나 간식거리를 들고 갔기 때문에 아주 순조로운 출발을 하였다.


 태양의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기온이 조금씩 올라갔다. 사람들은 캉딩에서부터 시작되는 오르막길에 조금씩 지쳐가지 시작했고, 아침의 추운 기온에 대비해 여러 겹 껴입은 옷들이 점점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캉딩의 시내 중심을 지나갈 때 즈음에 제일 앞에서 걷던 씨아오찌엔이 말했다.


"여기에서 모두들 잠시 좀 쉬었다가 가죠."

"그래 내 생각도 여기서 잠시 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네." 따거가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속으로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휴식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씨아오찌엔은 이러한 여행을 많이 해보았던지 항상 앞장서서 의견을 내고 팀의 강약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를 휴식하는 동안 씨아오찌엔이 다시 모두를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는 걷는 동안 기온이 많이 상승할 것 같으니 모두들 두꺼운 외투는 미리 벗어두고 배낭에 결속시키고 걷는 게 좋을 거야."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둘 외투를 벗어 배낭에 결속시키기 시작했다.


 "자. 이제 물도 한 잔 마시면서 쉬었으니 다시 길을 가도록 하지." 그의 힘찬 목소리가 길 위에 퍼졌다.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다시 한 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고원의 뜨거운 태양을 직접 맞으며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마에 다시 땀방울이 맺혔다. 사람들은 쉬는 동안에도 계속 위에 껴입은 옷들을 벗어 배낭에 결속시키기를 반복했고 최대한 가볍게 옷을 갈아입었다. 또한 선글라스를 꺼내어 강한 태양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했고, 얼굴이나 팔 같이 드러난 신체 부위에는 선크림을 발랐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러한 선크림을 바르는 것도 무색할 정도로 피부가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다시 길 위에서 휴식하며 수통에 담아 온 물을 마시고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거리를 지나던 많은 티베트인들이 우리의 행렬에 관심을 보였다. 내 생각에는 지금 같은 계절에 우리처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적지 않은 인원이 함께 움직이는 것도 그들의 주목을 끌 만했다. 따거는 넉살 좋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질문에 유쾌하게 대답을 해주었고, 그들은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이라고 하며 낯선 여행자들의 길을 축복해 주었다. 어디를 가나 티베트 인들은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에게 축복을 빌어주었다. 그것이 티베트인들의 전통이자 따뜻한 마음씨였다. 그리고 이들은 따뜻한 차나 잠시 쉴 수 있는 자리도 처음 보는 이방인들에게 서슴없이 내어주는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캉딩의 초입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한 시간 정도를 걸으니 캉딩의 거의 모든 시가지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전날 저녁에는 어두워 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천천히 길을 걷는 동안 눈에 많이 띄었다.


 캉딩은 양 옆으로 높이 솟은 산맥 사이의 좁은 협곡 사이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다. 협곡을 따라 길게 늘어선 건물들이 협곡과 강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었으며, 그리 높은 건물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시의 입구에서부터 라싸로 향하는 방향으로는 계속적으로 오르막길이 이어져 있었고, 길도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굽이 길의 연속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곳에서부터 해발고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시가지에는 신식 건물들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거리 곳곳에 중국인 공안들과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멀리 높은 산들 위에 더 높은 고봉들은 만년설로 덮여 있어 그 새하얀 색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가장 높은 곳에는 맑고 푸른 하늘, 그 아래에는 흰 눈을 담은 고봉이, 그 아래에는 눈이 쌓이지 않은 회색 산의 살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가장 아래로는 울창한 침엽수림이 빼곡한 진초록의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그러한 산들 바로 아래로 난 협곡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나있는 길을 따라 우리는 걷기와 쉬기를 계속 반복했다.


 길을 걷는 동안 고산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을 많이 마시고 자주 쉬어주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만약 이러한 암묵적인 법칙을 어기고 조금만 무리해서 걸으면 그 사람은 분명 며칠간 고생할 것이 뻔했다. 다시 말해 고산병은 곧 고도와의 싸움이었다.


 다시 도보가 시작되었다. 처음 몇 시간 동안의 분위기와는 달리 모두들 일렬로 줄을 지어 묵묵히 길을 걸었다. 아마도 맑은 하늘 아래 세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길을 걸어간다는 위대하고 새로운 경험에 모두들 정신을 놓고 그 아름다움 속에 빠져 있었음이 틀림없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리고 묵묵히 길을 걸으며 각자가 가지고 온 풀지 못한 생각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고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하지 않았으리라.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지 간에 자신만의 풀리지 않은 삶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적어도 하루에 수 십 번씩은 묻고 대답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내가 지금껏 걸어온 인생의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앞으로 걸어갈 그 길이 정말 맞는지 아닌지를 항상 나 자신에게 되물어 보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눈을 들어 무심코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내게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그 많은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참 잘 왔구나. 하지만 사실 너를 위한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지금 네가 걷는 그 길이 바로 너의 새로운 길이니까.'라고 말이다.


 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가에 촉촉한 무엇이 고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눈물인지 이마에서 흘러내려 고인 땀인지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단지 거친 숨을 내쉬며 끝없이 계속 이렇게 걷고만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세상의 모든 지친 청춘들에게, 세상의 모든 어두운 구석진 곳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순수함을 잃어버린 중년들에게 오늘부터 나와 함께 이러한 길을 함께 걷는 것이 어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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