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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Oct 23. 2021

저뚜어탕춘 이야기 : 티베트 온천을 가다.

야밤에 온천에서 혼탕을

 


 길 위의 숙소

 민가를 벗어나자마자 자연은 우리에게 태곳적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세계의 지붕, 하늘로 올라가는 바람의 길, 구름이 걸려 넘어가지 못하는 히말라야 산맥까지, 나는 그 장관에 넋을 잃고야 말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잠시 멈추어 주변의 경치 속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면 이러한 풍경과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댔고, 또 어떤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먼 산을 그저 바라보기도 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연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자 신비였다.


 "자! 여기서 잠시 쉬고 가자고. 전부 조금 지친 것 같은데 물이라고 한 잔 하고. 바람도 좀 쐬고..." 따거가 말했다.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고, 이미 몇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왔기 때문에 많이 지쳐 있었다. 거기다 고원의 희박한 공기에 모두가 적응하기에는 이틀의 시간이 그리 충분치가 않았다.


 따거는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버린 사람들을 향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보통 이런 고원지대에서는 한 시간을 걸으면 적어도 이십 분 정도는 쉬어줘야만 호흡이 차지 않는다고. 그리고 좀 과하다 싶은 정도로 항상 물도 많이 마셔야 하구. 체내에 수분 공급이 충분치 않을 시에는 혈액의 농도가 짙어져서 폐는 더 많은 산소를 요구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조금만 걸어도 몸이 지치고 숨이 차게 되는 법이라고.”


 그는 고원의 트래킹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신나게 떠들고 있는 그를 보면서 저렇게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게 더 숨이 차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나의 염려와는 달리 쾌활하게 웃으며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말이야,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느냐면 말이지. 난 완전히 지쳐 있었다고. 일도 하나도 재미가 없고. 사는 게 그렇잖아. 안 그래? 왜 다들 난 그런 적 없는데 라는 그런 표정들이야? 응? 나만 그런가. 허허. 어쨌든 짐을 다 싸놓고 아내한테 이렇게 이야기했지. '여보, 나 잠시 여행을 좀 갔다 올까 하는데, 당분간 찾지 말구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알았지?' 그러고는 배낭을 울러 메고 바로 야안으로 와버렸지. 그 뭐랄까. 예전부터 일생 중에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여행 중에 하나가 티베트 여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TV에서 이슬람 신자들이 메카로 향해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서 아 나도 꼭 저런 순례 여행을 한 번 해 봐야겠다. 뭐 그런 생각 있잖아. 알지 무슨 말인지?" 그는 나를 돌아보고는 자신의 말에 동조해 달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일은 안 하셔도 생계에는 지장 없으세요?" 내가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일? 이게 내 일인데 뭔 걱정이야."

 "따거는 돈이 꽤나 많은 가 봐요. 이렇게 생각을 즉각 행동에 옮기시는 걸 보니. 뭐든 생각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게 쉽지 안거든요."

 "생각하고 행동하면 뭐든 늦는 법이지. 일단 움직이고 생각해도 인생은 늦지 않아. 이봐, 형제(兄弟 친한 동성을 부를 때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임) 나만 믿으라고. 내가 이래 봬도 이쪽 방면에는 도가 튼 사람이라고."


 "그럼요. 믿죠. 믿어야죠 당연히. 따거의 말을 믿고 여기까지 와 버려서 이젠 돌아가지도 못한다고요."

 나는 그렇게 호탕하게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그의 말에 완전한 신뢰를 가질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웃게 하고, 무언가 희망적이면서도 포부에 가득 찬 그의 희극적인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배낭을 울러 매고 길을 나섰다. 배낭을 울러 맨 어깨 죽지가 점점 아려왔다. 그리고 걸음이 더 할수록 배낭이 더욱 무거워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후 5시가 되자 해가 서산을 향해 기울어졌다. 고원의 공기와 온도는 변화가 심한 편이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뜨거운 태양빛으로 인해 영상 10도 이상까지 올라갔지만 햇볕이 약해지고 석양이 질 때 즈음이며 온도는 곧바로 영하로 떨어졌다. 이러한 급격한 일교차로 추위는 조금 더 빨리, 그리고 더욱 깊숙이 옷깃 속으로 파고들었다. 또한 주변의 높은 산 때문에 다른 평지보다도 해가 조금 더 일찍 졌다.  


 해가 지는 티베트 설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몇 차례 더 걷다 쉬기를 반복하다가 한 마을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때 이미 해는 서산으로 지고 말았다.

 마을의 이름은 '져뚜어탕춘折多塘村'이었다. 주변에 있는 높은 산의 이름이 져뚜어탕산이라 마을 이름이 져뚜어탕춘이었다. 마을이라고 해봐야 길을 따라 드문 드문 늘어선 민가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이러한 마을이라도 있는 것이 참 다행이었다. 따거는 때마침 지나가는 마을 사람에게 숙소로 묵을만한 곳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가 조금만 더 가면 일반 티베트 민가를 확장해 객잔을 운영하는 집이 하나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에 말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 보니 정말 길 옆에 이 층으로 된 작은 객잔 건물이 하나 있었다.



 해발 4000m 히말라야 온천의 신비


 한 티베트인 가정이 운영하는 이 작은 객잔은 첫날 길에서 만난 숙소 치고는 꽤 괜찮은 시설이었다. 비록 따뜻한 물이 없고, 일행 모두가 한 방을 써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는 했지만 따뜻한 저녁 식사와 다음날 아침을 제공해 준다는 말에 우리는 다른 곳을 더 둘러보지 않고 바로 그곳에다가 무거운 짐을 풀어 버렸다. 모두가 첫날의 긴 일정에 지쳐있었던 것이다. 걷는 일에는 항상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나도 지쳐 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하루 동안 15km 이상은 걸은 것 같았다.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모두들 여장을 풀고는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몹시 피곤해서 저녁을 먹으로 나가기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 기분 좋은 피로감이었다. 몸에 쌓여 있던 그 무엇인가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 듯한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피로도 잊어버린 채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고원의 따가운 햇볕에 구릿빛으로 그을린 전형적인 티베트인이었던 친절한 주인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자신의 집을 소개했다. 실내는 나름 현대식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모두가 함께 잠을 자는 침대가 딸린 큰 방, 커다란 TV와 탁자와 소파가 있는 거실, 그리고 건너편 건물에 마련된 식당과 창고, 자신들이 묵고 있는 이층까지 친절하게 소개하시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멀리서 오신다고 다들 고생이 많으셨어요. 일단 저녁을 준비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은데, 원한다면 집 근처에 있는 천연 온천에 한 번 갔다 오는 것도 좋을 꺼에요. 천연 온천이라 오늘 피로가 싹 풀릴꺼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자주 거기서 온천욕을 즐기고 있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아무도 없을꺼요."


 "온천이요? “ 아쉬가 피로에 쌓여 있는 몸을 일으키며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그 온천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죠?"  

 "저기 바로 길을 건너 보이는 산을 조금만 올라가다 보면 작은 오솔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 산등성이 하나만 넘으면 바로 보일 거요. 물이 아주 끝내 준다오."

 주인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키며 가는 길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곧바로 사람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가르쳐 장소로 온천욕을 할 준비를 하고서는 숙소를 나섰다. 천연 온천은 주인아주머니의 말처럼 숙소에서 바로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런 고원에 무슨 온천이 있겠는가 하며 반신반의하며 길을 따라나섰지만 30분 정도 산을 오르고 나니 내 눈앞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진짜 온천이 나타나서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4000m도 넘는 고원의 산 중턱에 이런 온천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자연의 신비는 참으로 놀라웠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지고 사위는 어둠에 휩싸여서 은은한 달빛이 히말라야 산지를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다.

 멀리서 온천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미 우리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다. 바로 주변에 살고 있는 장족 할머니 두 분이셨다. 멀리서 한눈에 보아도 두 분은 옷을 다 벗고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온천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자들이 두 분의 온천욕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에 여자들은 먼저 온천으로 내려가 옷을 벗고 남자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저녁이라 아무것도 안 보이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지친 피로를 풀기 위해 함께 들어가는 게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도.


 얼마가 지났을까. 두 분의 장족 아주머니는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지나 다시 마을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들은 곧장 온천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따뜻한 물에 지친 몸을 녹였다. 유황이 가득한 온천물이 우윳빛으로 흐려서인지 달빛의 은은한 불빛에 시야가 어두워서였는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걸친 옷을 다 벗고 발 끝에서부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온천의 바로 옆 산 기슧에는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지만 온천 주위에는 열기 때문인지 눈이 녹아 있었다. 그래서 온천 밖으로 나가면 온도는 영하의 혹한이었고 온천 안에 있으면 따뜻한 천국이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이런 고원에 온천이라니 자연은 언제나 인간의 예상 밖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먼. 허허. 이러다 밤새도록 여기 있겠는걸."  중절모가 너스레를 떨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신선도 이런 노름은 못할걸요. 신선이 사는 곳은 우리가 있는 고원보다 낮은 곳에 살고 있을 테니깐 말이에요."

 "그럼, 우리가 신선보다 더 수준이 높은 건가?"

 "신선이지... 여기 있으면 이게 신선이지, 아무렴."


 그렇게 이런저런 농담에, 장난에, 게임에 온천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어두운 고원의 하늘 위로 밝은 보름달이 떠올랐다.


 "저것 봐요. 달이랑 별이에요. 어머, 저렇게나 밝다니. 왜 도시의 집에서는 별이 저렇게나 많은 걸 몰랐을까?"

 여자 일행 중 한 명이 맑고 투명한 티베트의 밤하늘에 반한 듯이 감탄에 젖어 말했다.


 정말 그랬다. 검은 하늘에 누가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흩뿌려 놓은 것 같이 별들이 수없이 많았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렇게나 많은 별들을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서 별들이 더 밝고 많이 보였는지도 모른다. 


 주변의 설산들은 저 아래에서 은은한 달빛에 젖어 온통 은빛으로 출렁거렸고, 사람들의 머리카락에서는 새하얀 고드름이 살짝 얼어서 흰 서리가 끼어있었다. 그러나 물속에서 편안하게 쭉 뻗은 몸은 따뜻한 물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상상해보라. 인적 드문 고원의 온천에 하얀 눈이 둘러싼 작은 물웅덩이에 달은 평화롭게 비추이고 별은 하늘에서 쏟아질 듯 빛나는 정말 아름다운 그 밤을. 정말로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모든 잊을 수 없는 여행이 그렇듯, 여행은 끝나고 나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렇게 온천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푸짐한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먼저 수유차를 내어주셨다. 거기에다가 장족들의 주식인 짬빠를 수유차에 섞어 마시라고 하면서 커다란 그릇에 설탕과 함께 사람들에게 내어놓았다. 그 맛은 우리나라의 미숫가루와 비슷했다. 곡식을 갈아서 만든 가루를 우유에 넣어 먹는 바로 그 맛이었다. 나는 미숫가루와 비슷한 수유차를 몇 잔이나 더 마셨고, 곧바로 저녁 식사가 나왔다.  


 하얀 쌀밥에, 무를 넣고 끓인 야크 고기 국, 그리고 야채를 볶아 만든 반찬, 그리고 감자와 야크 고기를 같이 넣어 볶은 것이 전부였지만 허기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날, 밥을 네 공기나 먹었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나는 그날 식사다운 밥을 한 끼도 못 먹었기 때문에 배가 부르도록 그렇게 밥을 먹어야만 했다.


 배가 부르고 이부자리는 따뜻했고 몸은 개운했다. 잠자리에 눕자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에 나는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 고원의 깊은 계곡 물소리는 유난히도 내게 들려왔다. 점점 몸과 마음이 히말라야의 대자연 속에서 정화되고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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