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찬란한 고원의 아침 태양이 떠올랐다. 잠에서 깨어날 때면 나는 항상 여기가 과연 어디일까 하는 혼란을 느끼곤 한다. 때론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지금 눈을 뜨면 한국의 따뜻한 내 집의 포근한 침대 위에서 잠을 깨지는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진 채 막상 자리에서 일어나 보면 어느새 딱딱하고 추운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나 자신의 현실을 나는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이곳은 여전히 티베트였다. 해발이 4000m가 넘는 세계의 지붕이었다.
매일 아침잠에서 깰 때면 이러한 현실 감각을 되찾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한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것은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따거와 씨아오찌엔이 쓴소리를 하며 중국어로 던진 농담들이었다. 잠결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중국어라는 외국어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이곳이 중국이자 티베트임을 나는 또다시 느끼게 된다.
다시 짐을 정리하고 따뜻한 수유차를 몇 잔 마시고 난 후에 다음 마을에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길 위에 다시 섰다. 저 멀리 산을 넘어 구불구불하게 나있는 길이 보였다. 그 길 끝에는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산인 까오얼쓰高尔寺산이 있었다. 해발 4412m였다. 산이라기보다는 가장 높은 고갯길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우리는 하루 종일 길을 걸어갔지만 산 정상에는 다다를 수가 없었다. 길이 너무나 멀고 높았기 때문에 하루 만에 저 산을 넘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었다. 만약 저녁이 되어도 저 산을 넘지 못하면 겨울철의 기온과 밤이 되었을 때의 추위가 합쳐지면서 실외에서 잠을 자는 것이 꽤나 위험한 일이 된다. 거기에서 설상가상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해발 고도 4000m가 넘어가자 세찬 바람의 추위와 피로로 인해 고산 반응이 또다시 일어났다. 처음에는 물을 많이 마시고 천천히 길을 걸어간다면 괜찮겠다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들의 증세가 심해져서 더 이상 도보로 가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모두 잠시 쉬면서 서로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 이 속도로 계속 걸어가면 아마도 오늘 중에는 이 산을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계속 길을 가면 이 추운 산중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것이고 고산 반응이 있는 사람들은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으니 더 이상 도보로 가는 것은 힘들 것 같군 그래, 자네들 생각은 어때?"
제일 뒤에서 고산 반응을 일으켜 쓰러진 찡찡(언제나 자기주장이 강한 상해 여자)을 부축하며 길을 가던 따거가 말했다.
"무조건 도보로 걸어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늘 내로 저 산을 넘어갈 수도 없을 것 같고 하니 도보로 계속 가는 것은 조금 힘들 것 같아 보이긴 하는데..."팀의 리더인 씨아오찌엔아 말했다.
그렇게 말하자 은연중에 모두들 그 말에 동의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픈 몸 앞에 장사가 없다. 여행을 처음 나설 때의 그 패기와 열정은 온 데 간데없고 여기서 무슨 큰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때에 인간 문명에서 떨어져 나와 거대한 자연의 장벽 앞에서 어쩔 수 없어하는 사람의 나약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차도 없고 따뜻한 거처가 없이 자연 앞에 인간이 던져지면 어쩔 수 없이 인간은 그 자연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럼, 다들 이렇게 하지. 먼저 우리가 9명이니깐 세 팀으로 나누어서 길을 가다가 지나가는 차량을 잡아서 다음 마을인 야지앙에 가는 걸로. 그중에 먼저 도착하는 팀이 그곳에서 숙소를 알아보고 각 팀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그리고 우선적으로 고산 반응이 있는 사람들부터 차를 타고 가자구. 그다음은 여자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는 남자들이 가는 걸로. 곧 해가 지려고 하니깐 어서 빨리 움직여 보자고. 그러면 아마 오늘 저녁 중으로는 야지앙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많은 여행을 다녀 보았던 그가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모두들 그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찡찡과 화화(절강에서 온 귀여운 여자), 그리고 시아오쭈(씨아먼 출신의 대학생)가 한 팀을 이루어 가장 먼저 출발했고, 그다음은 슈에란雪兰(광시에서 온 20살의 당차지만 숫기 없는 여자아이), 라오쥐老具(장난기 가득한 분위기 메이커), 씨아오찌엔(상해 출신의 행동파 리더)이 한 팀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따거大哥, 아쉬阿旭(시커먼 피부의 조그마한 광동인 친구)가 한 팀이 되어 제일 마지막에 출발했다.
선두에 출발한 사람들은 모두 고산 반응 때문에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얼굴이 붓고 입술이 점점 푸른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체온이 이미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거의 몇십 분에 한 두 대 씩만 있었고, 대부분이 큰 화물차였다. 보통 청두에서부터 라싸까지 짐을 운반하는 대형 트럭들은 모두 앞에 세 자리가 있는데 운전을 밤낮으로 교대로 하기 때문에 두 명의 운전기사가 타고 한 자리가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머지 승용차는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는 차량이 많기 때문에 많은 짐들을 싣고 다니다. 따라서 세 명으로 이루어진 한 팀이 모두 한 차량에 타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세 명이 한 차량에 타지 못할 경우 급한 대로 한 사람씩이라도 먼저 화물차를 타고 야지앙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따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가장 먼저 길을 가고 있던 팀이 운 좋게도 모두 한 차량에 올라타고서 야지앙으로 가고 있다고 전해왔다. 야지앙을 지나 다른 도시로 가는 대형 화물차였는데 운전기사가 두 사람이었고 운전석 뒤에 있는 보통 잠을 자기 위해 마련해 놓은 공간에 두 사람이 타고 그 앞좌석에 한 사람이 타고서 함께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팀이 가장 먼저 야지앙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다른 팀들을 기다리기로 하고 다른 팀들도 어서 차를 잡아 타기 위해 노력을 했다.
오르막은 계속되고 있었다. 오히려 고도가 높아질수록 경사는 더욱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산 정상은 보이지도 않았다. 산으로 난 도로가 이렇게나 길고 높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고개가 기껏 해봐야 문경새재나 추풍령 정도니 거기의 몇 배나 되는 티베트 고원을 어찌 비교하랴?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자 나는 배낭에서 더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그래도 고원의 차가운 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점점 체온이 떨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나에게도 고산 반응이 점점 오는 듯했다. 지나가는 차를 잡아보려 엄지손가락을 계속 들어 보았지만 대부분의 차량은 자리가 없는지 아님 낯선 사람과 동행하기가 어려웠던지 미안하다는 듯 오른손을 흔들며 우리들 앞을 쌩하며 지나가 버렸다.
그날은 길을 떠난 이 후로 가장 힘든 날이었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하루 종일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추운 오르막길을 올랐고, 해발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고산 반응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걷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 군 시절 때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의 군 생활은 강원도의 최전방 중에 하나였던 인제의 산골짜기에서 이러한 추운 날씨 속에서 행군의 연속이었는데, 며칠 동안 30kg이나 되는 군장을 메고 40km가 넘는 산길을 매일같이 걷곤 했었다. 길을 가다가 나는 수십 번도 더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만 그 길 위를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조건 속에서 수많은 다른 전우들이 함께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 나는 만약 나 혼자 먼저 그 길을 걸어가고 싶지 않다고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단지 나 하나만의 포기가 아니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포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힘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앞에서 뒤에서 함께 묵묵히 길을 걷고 있었던 동료들을 바라보며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손발이 꽁꽁 얼어가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계속 걸어갔었다.
그래서 나는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을 보았다. 국적도, 언어도,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환경도, 이 길을 선택하고 집을 떠나왔던 이유도 모두 다르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점,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나와 함께 이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결코 이 길을 포기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나의 정신은 점점 몽롱해져만 갔다. 더 이상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고 어깨에 멘 무거운 배낭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감각도 없이 생각도 없이 오로지 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 길을 걷고 있을 때 즈음에, 뒤에서 따거가 소리쳤다.
"저기 승용차가 한 대 오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잡아보자고. 여기서 보니깐 뒷좌석이 비어있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마치자마자, 따거는 오른손을 들어 그 차를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냥 우리를 스쳐 지나갔던 다른 차들과는 다르게 하얀색 중국식 코란도는 우리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창문이 열리더니 대학생처럼 보이는 연인 중에 참하게 생긴 여학생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여행하시나 봐요? 어디까지 가세요?"
"우리는 바로 다음 마을인 야지앙까지 가는데, 지금 날도 어두워져가고 같이 가는 친구들이 고산 반응 때문에 몸도 안 좋아지고 있어서 그런데 야지앙까지 같이 갈 수 있을까요?"
따거의 호소하는 듯하면서도 다급한 말에 그 친구는 흔쾌히 그러라고 이야기하고는 차에서 내려 우리의 짐을 실을 수 있도록 트렁크를 열어 주었다. 나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짐을 싣고 얼른 차에 탑승했다.
차 안의 공기는 차가운 바깥공기와는 달리 아주 따뜻하고 향기로웠다. 마치 포근한 작은 집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남자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야지앙을 지나 쓰촨 성의 가장 마지막 도시인 리탕을 거쳐 거기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윈난 성으로 간다고 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정말 연인이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얼마간 하다가 지금은 다른 일을 구하기 전에 함께 여행을 왔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중국에서 가장 미인이 많다는 충칭 사람답게 굉장히 하얗고 예쁜 얼굴의 조금은 통통한 체격을 지닌 전형적인 미인상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니에샨펑聂山棚'이었고, 그의 여자 친구의 이름은 '리원李雯'이었다. 딱 보아도 두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을 사귄 연인 같아 보였다. 안 그래도 두 사람은 이곳이 초행길이고 심심했던 차에 우리를 만나 함께 길을 가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우리 역시 차를 얻어 타는 입장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오직 감사하고 기쁜 마음뿐이었다.
차를 타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꽁꽁 얼어 있던 내 몸은 점점 녹기 시작했고 몽롱해져 간 정신도 다시 돌아왔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반 시간 정도 달려 까오얼쓰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을 오르고 있었을 때는 이미 태양이 높은 산 뒤로 넘어가버려 어둑어둑했지만 산 정상에 서고 보니 산 서편으로는 태양이 넓은 고원의 대지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까오얼쓰산은 그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었기 때문에 산 정상에 서보니 정말 경이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왔던 길들 과 마을들이 수많은 설봉들 사이로 간간히 보였고, 세상의 지붕에서 땅 아래를 바라보듯이 발밑으로는 시선이 닿는 지평선까지 크고 작은 산들이 이어져 있었다.
산의 정상에는 여느 티베트의 다른 산처럼 티베트어로 '옴마니밧메움'이라는 글자가 흰 돌로 쓰여 있었고 각양각색의 타르초가 하얀 불탑을 중심으로 세찬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티베트인들이 높은 건물이나 산 위에 이러한 타르초나 룽다를 걸어둔 이유는 깃발에 적어둔 경문과 소원들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서 세상 끝까지 멀리 펴지고자 하는 염원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세찬 바람소리는 그들의 소원을 담고서 고원을 더욱 요란하게 울리는 듯했다.
하늘의 구름들은 멀리 보이는 높은 설봉에 걸려 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해가 지는 석양은 그러한 산맥들과 대지들을 아름답게 비추었다. 정말 세상의 지붕에 올라선 기분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내가 발로 서본 적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고 있었다. 아마도 세상의 진정한 평화가 임하길 바라는 티베트인들의 염원대로 하늘의 바람은 그들의 소원을 멀리 세상 끝으로 날려 보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에게 물들지 않은 이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삶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모두 알리려는 듯이 말이다.
산꼭대기에서의 바람은 너무나도 차가웠기 때문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고 곧바로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바라본 그 찰나의 감흥을 나는 평생토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