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떠남에 이유라는 것이 필요하다면
만약 누군가가 작은 배낭 하나, 먼지 낀 카메라 하나,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가슴이 문득 설레어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에게 여행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물론 이런 것들 말고도 누군가는 낡은 사진 한 장, 멋진 영화의 한 장면, 머나먼 타국에서 지인이 보내준 엽서 한 장 등등, 이런 것들에 가슴이 설레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설렘은 곧 여행으로의 초대이므로 그 동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영혼이 살아있고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초대의 순간을 절대로, 절대로 거절해서는 안 된다.
내가 길지 않은 생을 조금 살다 보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너무나 많이, 그리고 너무나 자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실수가 반복되고 또 다른 실패로 이어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둥지를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게 되는 선택을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자신-그 전에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 안에 숨겨진 더 자기 다운 자아-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모든 여행자들의 소원이 마치 자신의 전유물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은 어찌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자아의 부름에 대한 자연스러운 응답이며 다양한 것들이 얽히고설킨 인생의 일부이자 때로는 삶 전체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부름에 대한 반응으로 나만의 길을 떠나게 되었고 그 평범하고 자유로운 삶의 발자취를 이곳에 잠시 가두어 보려고 한다.
불교의 수행법 중에 ‘운수행(雲水行)’이라는 수행법이 있다.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암자에서 안거기(安居期)를 거친 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특별한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구름이 흘러가듯 물이 흘러가듯 세상의 곳곳을 다니며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수행법이다.
나는 비록 불교도는 아니지만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이러한 운수행이 한 번쯤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해놓고 일정을 짜고, 예산을 측정하고, 또 들르는 곳마다 어디에서 묵을지 또 무엇을 먹을지를 정해놓고 출발하는 틀에 박힌 그런 현대인의 ‘여행술(術)’이 아닌 온전히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줄 자신의 새로운 자아와 인생의 행복에 관한 이치를 발견하기 위한 운수행과 같은 ‘여행론(論)’ 말이다.
이 여행은 때로 어떤 사람에게는 수행이나 순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더 넓은 의미로는 인생의 한 절기를 살아낸 다양한 사람들의 간결하고도 명확한 정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인생을 꽤 오래 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삶을 더욱 복잡하게 보지 않고 아주 단순하고 간결하게 자신의 삶을 정리해 내곤 했다. 그것은 나에겐 없는 놀라운 능력이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노인들과 장인들과 현자들의 공통점이자 젊은 사람들이 도저히 가지기 힘든 어떤 특별함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한 사람이 다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넓고 다양하며 깊기 때문에 그 끝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다만 이번에 새로운 길을 나섬으로 지극히 적은 세상의 일부를 이곳에 옮겨 두려는 시도를 해 볼 뿐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삶과 행복의 이치를 한 권의 책으로 담는다는 것은 거의가 아니라 완전히 불가능한 일임을 나는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이번 여행길에서 보고 듣고 만나고 느낀 것들을 그대로 적어 나갈 생각이다. 나는 단지 구름이 하늘을 방향 없이 흩어가듯, 물이 땅을 자유롭게 흘러가듯 이것을 내 발걸음의 지도로 삼아 세상 구석구석을 두루 다니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넓은 세상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구름과 높은 골짜기에서 넓은 바다까지 두루 다닌 긴 강을 품고 있는 대자연 속에 있다는 것도 꼭 말해 두고 싶다. 우리네 인간은 자연에서부터 와서 순리대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런 자연의 일부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위대함은 아무래도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할 때만 인간으로서의 위대함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지는 것 같다. 자연을 넘어선 인간, 자연에도 속하지 못하고 혹은 자연에도 미치지 못한 인간들은 저속하거나 교만하며 때로는 비윤리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무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연에게 ‘비인간적’으로 각인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크다. 인간은 ‘비인간적’ 일 때가 아니라 ‘인간적일’ 때에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내 개인적인 한 가지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소중한 한 사람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그 시절에는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을 언젠가는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그런 아련함이 있지 않은가? 지금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힐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만약 나의 여행이 그 한 사람만을 만나기 위한 길이 된다면 그것은 목표를 정해두고 떠나는 여타의 여행술에 불과해지고 말 것이며 그리 자유로운 발걸음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내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짧지 않은 나의 인생에서 그 사람이 내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지 완전히 깨닫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가 내게 던져준 인생의 화두를 밝히는 데 있어서 그가 내게 있어 어떤 존재이며 어떠한 이름으로 존재했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언젠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은 필경 내가 어느 정도의 삶을 살아내고 난 후의 일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긴긴 겨울과 같은 안거기를 지나 이제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운수행자가 되어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