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한 네 가지 질문
어린 시절 내가 자라고 살아온 도시(대부분의 현대화, 문명화된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이기는 하겠지만)는 다소 복잡하고 무엇이든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언제나 그 누구와도 진실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복잡한 도시의 삶은 모든 개개인이 오직 자신의 섬 속에서만 홀로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길을 나선다는 것은 홀로 있는 자신의 조그마한 섬에서 떠나 다양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드넓은 육지로 다시 돌아가는 일종의 회귀 본능, 혹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깨끗한 산골의 계곡 물속에 잠들어 있는 자신의 본성을 찾아 넓은 바다에서 육지로 돌아오는 연어의 마지막 여행과도 같은 의미였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섬에서만큼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한 인생과 행복에 관한 네 가지 질문과 그에 따른 부제를 적은 작은 수첩을 챙겨 기나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4월이 꽃피는 완연한 봄이었다.
나는 그 누구나 젊은 시절 꼭 한 번쯤은 꿈꿔봤던 무전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현대 사회의 황금만능주의와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찬 개인의 욕심으로부터 나는 언제나 탈피하고 싶은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언제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또 읽었다. 또한 소유로부터의 자유로움은 비움으로부터 온다고 말했던 한 노승의 '무소유' 정신을 이번 여행을 통해 한 번 실천해 보자고 한 것도 새로운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나는 예전부터 언제나 가벼운 배낭 하나만 메고 무전(無錢)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 곳곳을 다니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꽃이 피는 지금이 그 길을 나설 가장 좋은 적기이다. 과연 화사한 햇살에 향기를 내뿜는 완연한 봄의 꽃과 나무들을 보고 길을 나서고 싶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꽃이 피는 그런 바람이 불면 누구나가 길을 나서고 싶어 하는 충동에 휩싸이게 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내가 길을 떠나기 위해서 나에게 어떤 계기 같은 것이 특별히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인들은 주변에 갑자기 누군가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길에 오른다고 한다면 그것은 필시 어떤 계기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으레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여행이 어떤 정당한 계기와 이유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여행을 출발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여행뿐만 아니라 타인의 여행에서 단지 ‘여행의 이유’를 찾지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는 잘 묻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도 않는 세상 속에서 자라왔기에 내가 떠나려는 이 ‘어떤 여행의 이유가 없는 여행’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그들은 모든 인생의 순서와 절차를 정보 통신 산업사회의 현대화와 기계화와 제도화가 만들어 낸 어떤 틀-그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틀- 안에서만 보려고 한다. 가령 그들은 좋은 학교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을 마련한 후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것을 소위 말해 좋은 인생이자 ‘성공한 삶’이라는 이상한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여행이라는 것은 잠시 그 틀을 벗어나게 해주는 숨구멍이며 탈출구이자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도피처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삶이요 인생이라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만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삶이나 여행은 목적과 목표가 중요한 것이지 그것 자체가 인간에게 던져주는 근본적인 의미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좀 떠나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모든 사람이 내게 한결 같이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어디로 가는데? 무엇 때문에 가는데? 일은 어떻게 하고? 갔다가 언제 돌아오는 건데?’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도시의 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목적과 목표가 가득한 의문형의 말들을 쏟아 내었고, 나는 여행의 계기에 대해서 정당하게 요구하는 그들에게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 나가야 할지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단지 나는 그들에게 ‘여행을 좀 떠나야 할 것 같거든.’이라고만 말해 주었다. 만약 그들에게 운수행과 여행의 행복이 어쩌고 저쩌고, 무전으로 무소유를 경험하러 간다느니 라는 말을 했더라면 분명 그들에게 더 많은 물음표들을 던져 줄 것이 뻔했다.
그러던 중 평소에 나와 마음이 잘 통하는 한 친구-비록 이 친구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현대 도시인이기는 하나 그는 다른 도시의 친구들보다 여행의 목적보다는 여행의 의미와 여행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친구였다-가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는 ‘너, 나와 함께 서울 근교로 잠깐 여행을 떠나지 않을래? 나는 너무 지쳤고 잠시 쉼이 필요하거든. 그리고 지금은 봄이니 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날이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참으로 잘 되었구나.’라고 말하고는 이것을 도시의 친구들에게 전해 줄 내 여행의 이유와 계기로 삼기로 했다.
여행의 계기라는 것은 앞서 내가 말했듯이 나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여행의 일부이며 제 시기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을 뿐, 그 본질은 언제나 동일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의 계기와 이유를 묻는 도시의 사람들이 그것을 요구했기에 나는 그 계기와 이유를 타인의 계기를 잠시 도용(盜用)하고자 했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떠난 이유가 ‘나는 일에 지쳤으며 잠시 쉬기 위해서죠.’라는 일반적인 명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실상을 말하자면 이것은 순 거짓말이었으며 도시인들의 물음에 대한 한 도시인의 피상적인 대답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좋아. 나도 지금 일에 지쳤고 잠시 쉬어갈 여행이 꼭 필요한 시기거든.’이라고 대답하고는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해 버렸다.
나는 친구와 여행을 떠나기로 한 주말이 다가오기 전, 어쩌면 내게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는 길을 위해 지금까지 도시에서의 모든 삶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미련 없이 떠날 필요가 있었다. 만약 내가 돌아갈 집, 내 여행의 최종 반환점을 마련해 두고 떠난다면 나 스스로가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혹여나 내가 여행의 노상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 여행을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예 돌아갈 집을 없애 버린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여행 중에 내가 다시 살아갈 길을 반드시 찾아야만 할 것이고,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을 것이며 도중에 여행을 포기할 수도 없는 절박한 이유를 가져야만 할 것이었다. 어디서든 다시 자신의 둥지를 틀 수 있는 새와 같은 자유로움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의 둥지를 비워야만 했다. 이것이 내가 발견한 여행론에 관한 첫 번째 깨달음이었다.
*행복한 여행은 어떤 여행의 목적을 비우는 자유로움에 있다.
최종 목적지가 없을 때 모든 기착지가 최종 목적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자가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만 각각의 노정에서 보고 듣고 만나고 느끼고 배운 모든 사소한 것들이 아주 소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게 주어진 도시에서의 마지막 주말을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거처의 흔적을 없애는데 기꺼이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먼저 내가 도시에서 살아오면서 사서 모으고 소유했던 모든 물건들을 처분했다. 다행히 지방에 사시는 한 지인이 나의 짐을 잠시 동안 맡아 주시기로 하셨기에 나는 나의 물건들을 지인이 사는 집으로 보내버렸다. 물론 그 짐 안에는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모든 종류의 신용카드(어차피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별로 없었다)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나에게 있어 지금껏 물질과 돈의 풍요로움이 가져다준 제한된 자유로부터의 석방을 의미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이 작은 카드가 인간의 손에 쥐어진 순간, 그는 어디에나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어떤 옷이든 살 수 있는 신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인간이 만든 신용카드가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아이러니로부터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진정한 여행의 자유는 모든 정형화된 수단과 목적지로부터의 탈피에 있는 것이다.
그날 밤, 모든 것을 정리하고 텅 빈 단칸방에 누워 마지막 밤을 지새울 때 내 손에 남은 것은 것이라곤 교통카드 가 되는 직불카드 한 장과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정말 필요한 몇 가지 물건이 든 배낭 하나뿐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생전 처음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비워버렸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나는 얇은 침낭 하나를 덮고 배낭을 베개 삼아 화려하고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의 마지막 밤을 청했다. 내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만함이 밀려왔다. 그것은 ‘자유로움’이었다. 내가 이를 감히 ‘텅 빈 충만’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 누워 속이 충만한 상태로 도시에서의 마지막 밤을 너무나도 평온하게 보냈다.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기 시작한 토요일 아침, 나는 일찍 잠에서 깨어나 마지막 하나 남은 큰 박스 짐을 부치고 전날 미리 싸 둔 가벼운 배낭 하나만을 울러 메고서 복잡한 서울의 도심을 가볍게 나섰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에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고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런 4월의 봄이었다.
오전 11시나 되었을까? 나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도심의 복잡한 지하철 안에 있었다. 이렇듯 나의 여행의 첫 기점이 복잡한 주말 오전의 도심 지하철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함께 하룻밤을 보낼 친구를 만나 한강변에 자리 잡은 한 야영장으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친구는 우리 두 사람 손이 버거울 정도로 많은 장비들과 짐을 준비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미 꽤나 여러 차례 짧은 여행과 야영을 자주 다닌 듯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 첫째로 그의 철저한 준비성에 한 번 놀랬고, 둘째로 내가 길을 나서면서 챙겨 온 단출한 짐에 비해 꽤나 화려하고 많은 그의 짐에 또 한 번 더 놀랬다. 나는 그가 건네준 짐을 받아 들고는 속으로 ‘무언가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내가 길을 나서며 짊어진 짐에 되려 속박을 당하게 생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애써 준비한 그의 마음 씀씀이를 생각해 그러한 생각을 직접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에게 ‘여봐 친구, 적어도 오늘은 자네 덕택으로 노상에서 얼어 죽거나 배고파 굶어 죽지는 않겠네, 그려.’라고 말하고는 허허 웃어버리고 말았다. 나도 웃고 그도 웃었다.
우리는 야영장에 미리 예약해 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서기로 했다. 출발에 앞서 친구는 먼저 함께 떠나는 여행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누군가를 기다리던 한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알고 보니 조선족 아주머니였다. 친구는 내게 이 동네가 중국인들과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외국인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많이 밟혔다. 나는 이미 도시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들을 보거나 만나도 별 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오늘따라 그들의 입장과 삶이 너무나 다르게 내게로 다가왔다. 이는 그들 역시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으로 먼 길을 떠나 온 일종의 여행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도 역시 나처럼 여행자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어주고 멀리 살아져 가는 그 조선족 아주머니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낯섦과 삶의 무게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도심의 지하철 역사 안에는 언제나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 나 역시도 그중에 한 명이고, 나와 함께 가는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두 사람은 복잡한 지하철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커다란 배낭과 야영 장비를 한 짐씩이나 지고 도심의 전철을 탔다. 커다란 짐을 들고 들어가니 실내가 더욱 좁게만 느껴졌다. 우리 두 사람이 전철 안으로 한 발 들어가자 사람들은 한 켠으로 비켜서서 우리들에게 길을 터 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길을 터 주었던 것은 전철 안이 복잡해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친구가 한 손에 들고 있던 나무가 든 큰 가방에서 툭 튀어나온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와 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친구는 야영장에서 쓸 땔감까지 챙겨서 길을 나선 모양이다.
작금의 도시 현대인들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도구가 되어버린 도끼와 톱은 친구가 이번 기회에 새로 산 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하나를 구해 왔는지는 잘 몰라도 그 날이 하나도 상하지 않아 오히려 번쩍번쩍 빛까지 발하고 있었다. 그런 원시적인 도구들을 도심의 지하철 안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은 나무를 잘라 불을 때고 밥을 지어먹고 살던 옛 선조들의 삶이었다. 나무를 떼고 밥을 지어먹던 그들의 삶이 조금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의 삶은 밥을 해 먹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연으로 들어가 나무를 잘라 땔감을 구해오고 직접 불을 지피는 그 모습이 현대인의 취식(取食) 문화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며 자연에 가까운 모습인 것이다. 오히려 내게는 현대인들의 취식(取食) 문화가 한편으로는 좀 더 간결하고 깔끔하며 기계화되기는 했어도 자연친화적이거나 인간적인 따뜻한 면모는 예전의 그들에 비해 다소 떨어진 듯한 그런 느낌을 준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벽촌(僻村)이나 인적이 드문 산촌, 혹은 뱃길로만 길이 닿는 작은 군도(群島)에 가보면 여전히 아궁이에 군불을 때 가며 밥을 짓고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을 먹일 여물을 쑤는 부락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물론 좋은 기계와 제품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더욱 윤택하고 풍요롭고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나 다만 내가 염려스러운 것은 평생 가스레인지의 푸르뎅뎅한 불만 보고 살아온 현대인들이 추운 겨울날 아궁이에 앉아 설익은 밥을 뜸 들이며 바라본 군불이 탁탁 소리를 내는 그런 평화로움과 따뜻함과 같은 그런 것들을 과연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다.
생각해보라. 자연에서 자란 뭇 나무들은 살아생전에 각양각색의 과실과 잎을 자연과 인간에게 선사하고 그 생을 다한 후에도 자신의 몸을 태워서 우리 인간에게 자신의 온기를 나누어 주는데 이제는 그 자리를 가스와 전기 불이 대신하고 있으니 그러한 온기에 대한 깊은 감사를 느낄 기회가 우리 도회지 사람들에게는 점점 사라져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현대의 도시인들은 우리들의 부모 이전 세대가 잃어버린 자연에서의 삶을 되찾고자 틈이 나는 대로 야영이니 캠핑이니 자연 체험 학습이니 하는 이름으로 이런 온기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온기를 도시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그 누구도 밥을 짓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때는 그런 투박한 수고를 하지 않는다. 단지 가스나 전기 레인지의 버튼을 교양 있게 누를 뿐이다. 나 역시도 항상 그래 왔었지만 이제는 왠지 탁탁 소리가 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따뜻한 불티를 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일까. 이제 곧 그러한 불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자못 흐뭇해지고 말았다. 해가 지고 첫 별이 떠오르는 봄의 초저녁에 따뜻한 불티가 하늘로 오르는 것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나를 상상할 때 그것이 나에게 참으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순간, 나는 인간은 어떤 특별함과 큰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주 보잘것없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얼른 나의 수첩을 꺼내 행복론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것.
우리는 전철역에서 내린 후, 거기에서 일산으로 향하는 광역버스를 타고서 목적지인 한강의 어느 야영지의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는 우리처럼 하룻밤 야영을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마침 우리와 함께 버스에서 내리던 젊은 남녀 무리가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 역시 조선족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들떠있고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타국의 평범한 일상과 정경들이 낯선 여행자들에게는 언제나 그런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우리는 야영장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언덕길을 올랐다.
길을 따라 300m 정도를 올라가 보니 야영장의 공영주차장이 보였다.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고, 야영장으로 이동하는 전동차 승차 구 주변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따스한 봄날의 주말을 맞이해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전에 우리네 선조들이 잃어버린 자연을 찾고 그 속에서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신선함을 느끼고자 이곳으로 온 것이리라.
주차장에서 야영장이 있는 장소까지는 가지고 온 짐을 손수레에 싣고 직접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약 1km 정도나 되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산속의 봄 길을 걸어 올라갔다. 길가에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민 노란 개나리와 분홍 진달래,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봄의 얼굴들이 서로 앞 다투어 피어 있었다. 호젓한 꽃길이 이어진 길은 야영장으로 곧바로 이어져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봄볕이 내리쬐는 산길을 오르는 일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다. 그래서 쉬다가 가기를 몇 번 반복한 후에야 우리는 야영장의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주말을 맞이한 야영장에는 이미 가족 단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자리를 잡고 식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도심 안에 이렇게 한적하고 멋진 야영장이 있다니 이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친구가 말하길 이곳은 원래 골프장이었던 곳을 캠핑장으로 바꾸어 개장을 해서 그런지 잔디가 넓고 시설이 좋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거기다가 이 야영장은 주변 가까우 곳에 위치에 전기 코드와 수돗가, 샤워장 편의점, 카페까지 갖추고 있어서 도심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인기가 있는 곳이라는 말도 했다. 게다가 친구는 이 야영장을 빌리기 위해 미리 적지 않은 비용까지 지불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서 ‘이제는 자연 속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돈까지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장비를 쓰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이더니 이제는 그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다시 새로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쨌든 야영장의 분위기나 시설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처음 길을 나설 때에는 그저 길에서 비를 피하고 추위를 막아줄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감사할 생각이었는데 야영장의 최신 시설과 친구가 가지고 온 깔끔한 텐트를 펼쳐놓고 보자 ‘이것은 내게 너무 과분한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이왕에 좋은 야영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한 일이니 나는 맘 놓고 지금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완성된 텐트를 바라보고 ‘이것이 오늘 하루 내가 이슬을 피할 처소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비로소 내가 집을 떠나 조금은 특별한 길에 올랐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이 텐트는 단순한 2인용 텐트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묵을 나의 집이자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하나의 신세계이자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는 아름다운 우주가 되리라.
우리 두 사람은 텐트를 하루의 집으로 삼아 한가한 오후의 시간을 즐겼다.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가지고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꺼내서 읽었고, 친구는 텐트에 누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한참을 있다 보니 야영장 주변에 노란 나비들이 한가롭게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어찌나 곱고 우아하던지 그 날갯짓 소리까지 듣고 싶을 정도였다. 그 전에는 나비나 꽃에는 전혀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내가 이토록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날고 있는 작은 나비의 움직임에도 이토록 경탄을 하고 있다니 나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고는 나비 이외에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숲과 나무와 잔디와 새소리 같은 것들에 훨씬 더 많은 관심과 시선을 쏟으며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더욱 여행답게 하는 것이 야외에서 먹는 다양한 음식이다. 저녁이 되자 슬슬 몰려오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나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작은 버너에 불을 올리고 밥을 짓고 미리 가져온 오리고기, 삼겹살을 이용해 먹음직한 찬거리를 만들었다. 특별히 국을 끓일만한 재료들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컵라면 하나를 얻어 그것을 국 대신 먹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미리 준비한 긴 쇠꼬챙이에 각양각색의 고기를 굽기 좋게 끼우고 파인애플과 햄도 추가로 구웠다. 그러는 사이 친구는 자신의 커다란 가방에서 각종 접시와 식기들, 심지어는 개인용 수저 받침대와 식탁보까지 꺼내는 것이었다. 나는 놀랬다. 야외에서 먹는 음식이라야 허기만 달래면 그만인 것이지 무슨 저런 준비와 꼼꼼함과 세련됨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만든 음식과 친구가 준비한 소품들이 한데 어우러지자 제법 그럴듯한 밥상이 차려졌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우리는 서로의 여행-나는 긴 여행을, 친구는 하루 동안의 짧은 여행을-을 축하하며 만찬을 나누었다.
여유로운 시간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야영장의 저녁이 점점 깊어져만 갔다. 나는 서산으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지켜보며 이유 없이 밀려오는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곧 내가 행복감에 젖어들었기 때문이다.
밤이 점점 깊어졌다. 야영장의 사위는 더욱 조용하고 농익어 갔다. 가족 단위로 캠핑장을 찾은 사람들은 모닥불 주위에 모여 준비해 온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즐겁게 캠핑장 주변을 뛰어놀며 노는 아이들, 캔 맥주와 다양한 과일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연인들의 마주 잡은 손, 묵묵히 고기를 굽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들 전부가 내게는 참으로 평화롭고 여유롭게 보였다.
저녁 10시가 되자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바로 샤워장으로 갔다. 그런데 뜨거운 물이 단수가 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이미 뜨거운 물을 다 사용한 것인지 차가운 물만 나왔다. 나는 꽤 오랜만에 냉수 샤워를 했다. 두 현대인들은 언제나 따뜻한 물로 몸을 씻다 보니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봄인데도 불과하고 적응이 되질 않았다. 둘이서 작은 샤워실 안에서 소리를 내어가며 샤워를 끝마치니 나 스스로가 점점 야생과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샤워를 마치자 나는 차갑게 식은 몸을 어서 빨리 따뜻한 침낭 안으로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따뜻한 텐트 안으로 돌아오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느낌으로는 집보다 더 집 같은 텐트였다.
텐트 안 침낭 속에 누워 남은 간식을 먹고 우리는 자신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먼 길을 떠날 준비는 다 된 거야?” 친구가 누운 채로 내게 물었다.
“준비랄 것도 없지. 단지 길을 따라 계속 걷기만 하면 되니까.” 나 역시 자리에 누워 구멍이 뚫린 텐트의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전부터 항상 느꼈던 것인데 너는 항상 바람과 같구나.”
“내가?” 내가 놀란 듯이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응,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처음 길을 나설 때에 운수행이라는 수행법을 언급하면서 구름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다니고 싶었다고 이미 서두에 말했었다. 그런데 친구에게서 내가 항상 바람과 같았다는 말을 들으니 뭔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상(狀)이 이미 내게 있다니 이는 또 무슨 말인가.’ 하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반문이 이 질문에 넌지시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심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부터 들었던 생각인데. 난 네가 이쯤 갔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막상 내가 그곳에 가보면 넌 그 자리에 없고 또다시 저 멀리 가버리곤 했지. 언제나 한 곳에 있지 않았었잖아, 넌. 마치 바람처럼.”
“내가 그랬었나?” 나는 그가 하는 말이 정말 그러한가를 생각해 보았다. 어찌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그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를 것 같아.”
“어떻게?”
“여행의 목적지도 없고 돌아올 집도 이제는 없어져 버렸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친구는 내가 단지 하루 동안만 그와 여행을 같이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지 내가 살 집을 처분하고 가진 모든 소유를 정리해버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굳이 전화 통화로 내가 어떠한 길을 떠나게 되었는지 미리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지금까지 내가 앞서 말한 생각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차분히 나누게 되었다. 그는 도시에 살고 있는 여행자였기 때문에.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에 나는 친구에게 네 가지 질문이 적힌 수첩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나의 이번 여행의 나침반이자 지도이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친구는 내가 적은 질문을 유심히 살피더니 ‘꽤나 흥미가 가는 질문들이군. 만약 나중에 너의 긴 여행이 끝이 나면 그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내게도 꼭 알려줘. 왜냐면 거기에 나도 풀지 못한 질문이 몇 개 있는 것 같거든.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나면 가장 먼저 나를 찾아와 주겠다고 꼭 약속해 줄 수 있겠어?’이라고 말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수첩을 돌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응, 그러리라 약속하지.’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마지막 대답과 미소에 담긴 뜻을 언 듯 알아차렸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똑같은 이유 때문에 불행하고 똑같은 시기에 방황하고 똑같은 누군가의 존재로 인해 행복해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풀고자 한 질문들이 다만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공통의 질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나는 곧 나의 이번 여행에 대한 행복감과 자부심마저 들었다. 친구 역시 나의 부름에 대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도 언젠가 이러한 길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의 여행을 응원해주고 축복해주었다. 그의 따뜻한 배려와 마음씨에 나는 감사함을 느낀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마치 나를 자신의 먼 미래처럼 보고서 나의 여행을 그렇게 축복해 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긴 대화가 끝이 나자 친구가 잠시 밤바람을 쐬러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커다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나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여행지에서 여행자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부터 자유했다. 나는 그를 따라 곧장 어두운 야영장을 나섰다. 깊은 밤의 크고 시원한 강이 강변을 따라 난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멀리서 커다란 다리들과 이름을 잘 알 수 없는 작은 섬들이 보였다. 강변의 도로에는 성냥갑만 한 차들이 경주를 하듯 빠른 속도로 달리는 모습도 보았다. 높이서 바라보니 그것조차 그리 빨라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도 없는 도시의 야심한 밤에 이러한 야경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비밀의 화원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진작에 알지 못했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밤이 깊어가는 도심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행복한 여행이란 무엇인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인생의 실수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진실한 사랑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밤이 점점 더 깊어지자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별들도 하늘에서 총총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찌나 고요하던지 그 별들이 우리들의 이야기 소리를 조용히 귀 기울여 듣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진지하면서도 인간적으로, 그리고 기쁘게 웃으며 서로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밤이 더욱 깊어만 갔다.
다음날, 우리는 잠을 푹 자고 오전 9시쯤에 일어났다. 주변에 햇볕을 가릴만한 건물이나 키 높은 나무가 없었기에 텐트로 내리쬐는 아침 햇살에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텐트 장에서 가까운 세면장에서 간단하게 얼굴을 씻고 어제 남은 음식으로 아침을 해 먹었다. 간단한 아침을 챙겨 먹은 후 바로 우리 두 사람은 텐트를 접고 철수 준비를 했다. 오전 12시까지 자리를 비워 주어야만 바로 다음 사람들이 이곳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오후의 일정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시간에 쫓기지는 않되 그러나 여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조금 서둘러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야영장을 내려갈 때는 강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난 샛길을 통해 바로 내려갔다. 비록 처음보다 짐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배낭의 무게가 가볍지만은 않았다. 내려오는 샛길 옆으로 노란색 개나리, 하얀색 벚꽃, 분홍색 진달래, 옅은 푸른색 새순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따뜻한 봄바람에 꽃향기가 내게로 날아왔다. 정말 완연한 봄이 온 천지를 덮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렇게 그 꽃내음이 가득한 봄바람에 흠뻑 취해 4월의 어느 날엔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 바람이 내게 마치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너희들은 나처럼 길을 나서게 되어 있지.’라고 웃으며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웃으며 그 바람의 소리를 듣고서 좀 더 봄에 가까운 남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야영장을 나가면서 앞으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