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현대인들과의 마지막 작별인사
내가 정든 도시를 떠나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고자 나를 보자고 했다. 아마도 나와 함께 캠핑을 했던 친구가 나 몰래 다른 친구들에게 따로 연락을 해두었으리라.
그들 중 한 친구가 내게 연락이 와서는 ‘여기, 우리가 자주 가던 강변 공원에 모두들 모여 있어. 이리로 어서 오라고. 전부 네가 왜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지 궁금해한다고. 어서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사실 여행을 떠나는 길에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에게는 여행의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만나기 전에 그들의 의문을 풀어줄 확실한 여행의 이유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하룻밤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들에게도 나의 진심을 전하고 이번 여행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틀림없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나눌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봄날의 주말 오후는 누구나 집을 나서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가벼운 배낭을 메고 도착한 한강 강변의 공원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텐트를 치고 여유롭게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연인, 조그마한 아이의 두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젊은 부부, 커다란 광장에 모여 다양한 길거리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 등등 살아있는 활력으로 넘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은 보며 ‘행복은 여기에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내가 친구들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 멀리서 다가가자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를 환영해주었다. 서로 짧지만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은 그나마 한적한 곳에 미리 준비한 돗자리를 깔고 푸짐한 음식을 펼쳐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와 어묵, 기름에 잘 튀겨진 치킨 세트, 그리고 시원한 음료수가 먹음직스럽게 준비되어 있었다. 시원한 날씨와 한가로운 시간과 맛있는 음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서 행복함이 내게 밀려들었다.
한참을 서로에 대한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내게 갑자기 왜 하필 지금 여행을 떠나는 것이냐고 물었다. 또 이번에는 갔다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항상 내가 길을 떠났다가 얼마 뒤에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보아왔던 터라 이번에도 역시 그러한 여행 이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현대의 대도시 시민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질문도 역시 지극히 도시적이며 틀 안에 갇힌 색깔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떠날 수 없을 것만 같거든. 사람들은 언제나 ‘내일 가야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떠나야지, 이번 일만 마무리하고 갈 생각이야’라고 말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알게 되었어. 그것은 언제나 실현되지 않은 상태로 또 다른 내일과 다음 기회를 만들어 낸다는 거지.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저지르는 변명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색깔을 찾아서 길을 떠나기로 한 거야.”
그러자 어떤 친구들은 너는 아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느니 어쩌면 현실을 도피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느니 아니면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 두려워 불확실한 미래에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아니냐는 식의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출발하는 시점이라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행이 끝나고 나면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나의 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오기를 빌어주었다.
한 친구는 내게 어디를 향해서 갈 것이냐고도 물어보았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것은 없으며 단지 따뜻한 남쪽을 향해 계속 걸어갈 것이라고만 대답해 주었다. 친구들은 의아해하며 왜 그래야만 하고 또 무엇 때문에 그러려고 하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그 순간 친구들이 정말로 나의 의도가 궁금해서 묻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여행을 떠났던 다른 현대인들을 향해 던졌던 질문을 동일하게 나에게 하는 것인지 언 듯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다시 한번 나의 여행의 이유에 대한 말을 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들에게 나의 여행에 대한 피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여행의 의미와 자유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갑자기 할 말을 잃은 채 나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도대체 이 친구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태도였고, 또 다른 하나는 진작부터 자신의 내면에서 말하고 싶었던 말을 나를 통해 듣고 있다는 놀라움과 동시에 나의 이야기 속에 담긴 자유로움이었다.
그리고는 나의 수첩에 적힌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내용을 보여 주었다. 역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그 문장들을 조용히 읽고만 있을 뿐이었다. 아마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수 만 가지의 생각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묻고 싶고 자신만이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애써 내가 만든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서둘러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자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도시민들이 여행을 시작하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 누구도 여행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만 묻고 생각하지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여행의 의미를 위한 길을 나서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 느낌인지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래 본 적이 없었기에 이것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친구들은 나에게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렇게 도시의 친구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헤어지고 나니 막상 오늘 밤 잠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돈이 있었다면 어디서든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무일푼의 무전 여행자가 되기로 결정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자 오후의 한강 강변 공원의 바람이 좀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것은 다만 나만의 느낌이었는지 아니면 해가 지고 있어서 날씨가 진짜 차가워지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서산으로 사라져 가는 해가 마치 내 희망의 빛과 같았다. 단지 이틀 전 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밤 따뜻한 이불속에서 온기를 느끼며 편안함 잠을 청하던 도시인이었지만 막상 무전 여행자가 되고 보니 먹을 것과 잘 곳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문득 예전에 류시화 씨의 책에서 보았던 여행자를 위한 조언 하나가 생각났다.
‘세상 전체가 너의 집이다.’
그렇구나. 세상 전체가 나의 집이라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오늘 묵을 곳을 찾아봐야겠다. 그래서 나는 얼른 전화기를 꺼내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나의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혹시나 오늘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지를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다행히 한 친구가 나를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주었다. 대학 시절 함께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K는 현재 육군 장교로 복무 중에 있다. 얼마 전에 아름다운 신부를 얻어 결혼을 하고 근처에 신혼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K는 전화로 내게 말하길 예전부터 나를 보고 싶기도 했고 나라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기쁘기도 하고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 전체가 정말 나의 집이구나 라는 생각이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적어도 여행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생각만큼 그렇게 복잡하거나 힘든 곳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K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는 바로 전철을 타고서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