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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an 04. 2022

새로운 나사렛의 땅

 가장 좋은 글은 가장 진실한 글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기 고백이 담긴 진실한 글은 때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울리게 된다. 그때 공명의 순간이 찾아든다.


 나는 이제부터 남의 시선을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앞으로의 삶을 소망하고 갈망하기 위해, 소박하지만 진실하게 글 쓰는 자로 남기 위해 삶을 쓴다. 


   며칠 전에 여전히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2021년이라는 숫자의 한 해가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제주에 발을 들여놓은지 벌써 횟수로 치면 4년째가 되었다. 처음 큰 딸아이의 두 돌을 맞이해 우리 가족은 세 명은 SUV 한 대에 단란한 짐을 꾸려 배를 타고 이 섬에 한 달 살기를 하기 위해 입도했었다. 한 달 반 동안 제주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시간이 남을 때마다 우리 세 식구가 살만한 연세 집을 보러 다녔고, 그렇게 작은 아파트 하나에 세를 주고 1년간 살아 보기로 했다. 



 어느 해 5월의 햇살이 따뜻해지려고 할 때 즈음, 우리 부부는 항몽유적지의 조용한 정자에 올라 한없이 평화로운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시골 마을의 경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느닷없이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아직도 둘째 가졌으면 좋겠어?"


 언제나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던 아내가 이렇게 말을 먼저 꺼냈다는 것은 그만큼 몇 날 며칠을 심사숙고해 본 결과였다는 것을 잘 아는 나로서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나야 항상 둘뿐만이 아니라 셋까지도 생각하고 있지. 그렇지만 당신한테 그걸 강요할 순 없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냥... 이제 나이도 있고, 또 더 늦어지면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게 더 이상 어려워질 것 같아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번 노력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그녀는 먼바다의 찰랑거리는 파도를 응시하듯 내가 아니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거짓말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다른 새로운 생명을 맡겨주셨다. 



    


 그렇게 우리에게 소중한 쌍둥이가 찾아왔다. 결과적으로 그때의 아내의 결정으로 우리는 둘이 아닌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쌍둥이를 임신한 몸으로 더 넓고 쾌적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8월의 더운 열기를 뚫고 이 집 저 집을 알아보다가 복층이 딸리 20평대 집에 전세를 얻었다. 아무래도 신생아를 키워내야 하는 집이기에 일단은 깨끗하고 따뜻해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아이들이 더 크게 되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복층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8월의 제주는 신구간이 아니라 선택의 폭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나름 만족하며 전셋집을 계약하고 인천 집을 정리한 후 곧바로 제주로 이사했다.

 

 그 집에서 지금까지 세 아이를 키우며 두 번째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언제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싶었지만 별안간 아이들이 훌쩍 자란 모습을 발견하고 나의 생각과 인식에 상관없이 아이들의 시간은 참 잘도 흘러가는구나 싶었다. 


쌍둥이가 태어난 2020년 1월에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서울 명동의 유명 여행사 과장으로 일해왔지만 코로나의 장기화로 2020년 말에 직장을 잃었다. 물론 세 아이 덕분으로 3년 간의 육아 휴직을 사용해 직장을 어떻게든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퇴사를 결정하고 아내와 함께 제주에서 힘겹지만 행복한 육아를 선택했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나와 아내 단 둘이서 밤에 잠을 쪼개가며 지난 2년 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쌍둥이와 4살 터울의 큰 아이까지 세 아이들을 키워왔다. 나와 아내를 위한 시간은 가질 수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떼를 쓰고, 부모의 손길을 요구하는 세 아이들을 키워내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야 돌보미 선생님도 오시고 큰 아이도 어린이집에 잘 다녀주어서 한숨을 돌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지난 2년간 일을 그만두고 온전히 육아를 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당장에 직장을 구해보기도 했으나 코로나가 길어지는 상황 속에서 여행사 경력을 가지고 다시 여행사 쪽에 취업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과 제빵 자격증도 취득해보고 이런저런 다른 직장을 알아보았지만 제주에서는 30대 후반에 몸으로 뛰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결국 아내도 아주 오랫동안 쉬었던 병원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나는 배송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며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제주에 와서 배송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물론 계속 이런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지만 쌍둥이가 곧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런 삶을 유지해할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좋은 것은 일을 하면서 아이들로부터 해방되어 나름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이토록 인간의 삶에 필요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전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름 기도의 시간도 가진다. 그리고 점심시간부터 오후 동안 일을 하고 돌아와 저녁 시간에 아내가 일하러 나가는 사이에 나는 혼자서 온전히 세 아이를 돌본다. 아직은 아무것도 몰라 그냥 하루 종일 먹고, 놀고 잠만 자는 세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에 문득 내가 어디쯤까지 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 성탄절에 들었던 동방박사와 요셉의 가족 이야기가 떠올랐다.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베들레헴에서 떠나 이집트로 피신한 요셉의 가족, 그리고 후에 다시 꿈에 현몽한 주의 사자의 지시에 따라 베들레헴이 아니라 전혀 생소한 이스라엘의 북쪽 땅이었던 갈릴리 땅 나사렛 촌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장하게 된다. 


 어쩌면 주께서 우리에게 쌍둥이를 보내시고 코로나를 피해 그나마 육지보다 안전한 이곳으로 우리를 피신하게 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어떤 인연도 없는 무지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온전히 가족의 따뜻한 품 안에서 다시 삶의 싹이 움트는 그런 봄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여전히 삶이 쉽지 않고 녹록지 않은 상황들의 연속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길고 어두운 삶의 터널을 힘겹게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사랑하는 나의 살붙이들이 있고, 또 남아 있는 생이 있기에 나는 계속 전진하여 이곳 제주도 갈릴리에서의 삶을 끝없이 이어갈 것이다. 내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삶의 의지와 사랑이 꺼져가기 전까지 말이다.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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