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이상과 현실 부부의 괴리
'가을 저녁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 하나에도
나는 온 우주에 깃든 신의 섭리와 광대하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옛 일기장을 뒤척이다 발견한 이 한 구절에 갑자기 먹먹해진 밤을 어찌할 바를 몰라 나는 글을 쓴다.
이러한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이었고, 꿈이 많았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새벽과 밤잠을 아껴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었다. 더 말해서 무얼 하랴? 가진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살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하루 중 유일하게 내가 글을 쓰며 '나의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세 아이가 모두 깊이 잠이든 밤이 전부가 되었다. 행여 잠든 아이들 중에 하나라도 깰까 봐 거실의 어두운 간접등에 의지해 조용히 자판을 두들기고, 까치발을 들고 걸으며, 이어폰을 끼고서 음악을 듣는다. 솔직히 말해 이 글을 쓰는 동안도 벌써 30분 간격으로 세 아이 모두가 한 번씩 깨는 바람에 다시 잠을 재우고 글을 쓰고 있다. (쌍둥이는 태어나서 19개월이 된 지금까지 내가 재우고 있고, 6살 된 큰 딸은 4살 때부터 나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나에 대한 애착이 엄마보다 더 커져버렸다. 그렇다고 아내의 육아와 헌신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아내는 그 누구보다 세 아이들을 사랑하며 지금도 혼신을 다해 헌신 중이다. 다만 나와 함께 육아를 하다가 생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세 아이의 아빠가 되어 온전한 글 한 편 적어 내려갈 수 없는 여유조차 아직은 없지만(육아에 참여하는 모든 부모들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때의 그 시절이 사무치도록 아주 그립지는 않다. 다만 가끔 혼자 잔잔하게 울렁거리는 일정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이호테우 해변을 걷다가,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바다를 내다볼 때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향이 진한 커피 한 잔을 혼자 마실 때나 가끔씩 그리울 뿐이다. 굳이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시간은 1년 중 우리 부부가 거의 가질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없을 뿐이다.
젊은 날의 이상과 세 아이 부모의 현실적인 괴리는 사뭇 굉장히 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일 때문에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를 떠돌아다니며 돈을 버느라 젊은 날에 꿈꿔왔던 이상을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쌍둥이가 태어나고 한 동안은 육아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시체가 되어 체력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세 아이들이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두 간극은 조금씩 매워져 나갔다. 시간과 체력의 한계를 넘나드는 분주한 세 아이 육아 전쟁에서는 나에 대한 생각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 가득하다. 한 녀석을 씻기고 있으면 그 틈을 타 한 녀석은 식탁에 올라가 그릇을 집어던지고, 한 녀석은 TV 협탁에서 슈퍼맨처럼 뛰어내리고 있다. 나와 아내의 손 네 개도 모자랄 판이다. 이러한 상황이 하루 종일 반복되기에 '생각'이라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쌍둥이 중 한 녀석이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고, 또 한 녀석은 엄마~아빠~라는 불투명한 발음으로 소리를 내뱉고, 큰 딸은 '노란색이랑 파란색이 섞이면 초록색이 되는 거 아빠 알아?'라고 나를 똘망똘망 쳐다보며 말을 할 때, 나는 그 바쁜 육아의 시간 속에서 그 짧은 찰나에 젊은 날 나의 이상 속 섭리를 발견하고야 만다. 아이가 어제보다 더 자랐음을 발견하는 그 모든 순간이 사실 신의 기적이자 섭리였음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이러한 발견이 많을수록 젊은 날의 이상과 부모의 현실적 괴리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쌍둥이가 뛰어다니고 큰 딸도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육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조금 생겼지만 여전히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각기 다른 세 아이들의 시시각각 성장하는 다양한 모습과 해맑은 웃음, 천사처럼 곤히 잠들어 있는 귀여운 얼굴, 부드러운 볼살과 통통한 엉덩이 살의 따스한 감촉, 진심으로 내 품으로 달려와 와락 안기는 조그마한 우리 아이들이 있기에 제주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현실 부부의 현재 삶은 아주 아주 아주 행복하다는 것.
그것이면 되었다.
젊은 시절의 그 어떤 개똥철학이든, 복잡한 전공지식이든, 정교한 전문기술이든, 대단한 재력이든 그 어떤 것들도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