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팡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즈 Sep 12. 2021

가을 저녁 나부끼는 낙엽 하나에도

젊은 날의 이상과 현실 부부의 괴리

'가을 저녁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 하나에도

나는 온 우주에 깃든 신의 섭리와 광대하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옛 일기장을 뒤척이다 발견한 이 한 구절에 갑자기 먹먹해진 밤을 어찌할 바를 몰라 나는 글을 쓴다.

 이러한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이었고, 꿈이 많았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새벽과 밤잠을 아껴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었다. 더 말해서 무얼 하랴? 가진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것처럼 살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하루 중 유일하게 내가 글을 쓰며 '나의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세 아이가 모두 깊이 잠이든 밤이 전부가 되었다. 행여 잠든 아이들 중에 하나라도 깰까 봐 거실의 어두운 간접등에 의지해 조용히 자판을 두들기고, 까치발을 들고 걸으며, 이어폰을 끼고서 음악을 듣는다. 솔직히 말해 이 글을 쓰는 동안도 벌써 30분 간격으로 세 아이 모두가 한 번씩 깨는 바람에 다시 잠을 재우고 글을 쓰고 있다. (쌍둥이는 태어나서 19개월이 된 지금까지 내가 재우고 있고, 6살 된 큰 딸은 4살 때부터 나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나에 대한 애착이 엄마보다 더 커져버렸다. 그렇다고 아내의 육아와 헌신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아내는 그 누구보다 세 아이들을 사랑하며 지금도 혼신을 다해 헌신 중이다. 다만 나와 함께 육아를 하다가 생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세 아이의 아빠가 되어 온전한 글 한 편 적어 내려갈 수 없는 여유조차 아직은 없지만(육아에 참여하는 모든 부모들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때의 그 시절이 사무치도록 아주 그립지는 않다. 다만 가끔 혼자 잔잔하게 울렁거리는 일정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이호테우 해변을 걷다가,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바다를 내다볼 때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향이 진한 커피 한 잔을 혼자 마실 때나 가끔씩 그리울 뿐이다. 굳이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시간은 1년 중 우리 부부가 거의 가질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없을 뿐이다.


 젊은 날의 이상과 세 아이 부모의 현실적인 괴리는 사뭇 굉장히 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일 때문에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를 떠돌아다니며 돈을 버느라 젊은 날에 꿈꿔왔던 이상을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쌍둥이가 태어나고 한 동안은 육아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시체가 되어 체력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세 아이들이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두 간극은 조금씩 매워져 나갔다. 시간과 체력의 한계를 넘나드는 분주한 세 아이 육아 전쟁에서는 나에 대한 생각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 가득하다. 한 녀석을 씻기고 있으면 그 틈을 타 한 녀석은 식탁에 올라가 그릇을 집어던지고, 한 녀석은 TV 협탁에서 슈퍼맨처럼 뛰어내리고 있다. 나와 아내의 손 네 개도 모자랄 판이다. 이러한 상황이 하루 종일 반복되기에 '생각'이라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쌍둥이 중 한 녀석이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고, 또 한 녀석은 엄마~아빠~라는 불투명한 발음으로 소리를 내뱉고, 큰 딸은 '노란색이랑 파란색이 섞이면 초록색이 되는 거 아빠 알아?'라고 나를 똘망똘망 쳐다보며 말을 할 때, 나는 그 바쁜 육아의 시간 속에서 그 짧은 찰나에 젊은 날 나의 이상 속 섭리를 발견하고야 만다. 아이가 어제보다 더 자랐음을 발견하는 그 모든 순간이 사실 신의 기적이자 섭리였음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이러한 발견이 많을수록 젊은 날의 이상과 부모의 현실적 괴리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쌍둥이가 뛰어다니고 큰 딸도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육체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조금 생겼지만 여전히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각기 다른 세 아이들의 시시각각 성장하는 다양한 모습과 해맑은 웃음, 천사처럼 곤히 잠들어 있는 귀여운 얼굴, 부드러운 볼살과 통통한 엉덩이 살의 따스한 감촉, 진심으로 내 품으로 달려와 와락 안기는 조그마한 우리 아이들이 있기에 제주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현실 부부의 현재 삶은 아주 아주 아주 행복하다는 것.


 그것이면 되었다.

 젊은 시절의 그 어떤 개똥철학이든, 복잡한 전공지식이든, 정교한 전문기술이든, 대단한 재력이든 그 어떤 것들도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자유를 잃었지만 사랑을 얻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